의창군 (이광)

의창군 이광(義昌君 李珖, 1589년 1월 ~ 1645년 10월 15일)은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선조(宣祖)의 여덟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인빈 김씨(仁嬪 金氏)이다. 이름은 광(珖), 자는 장중(藏中), 호는 기천(杞泉), 시호는 경헌(敬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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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군
義昌君
지위
조선 선조의 왕자
이름
이광(李珖)
시호 경헌(敬憲)
신상정보
출생일 1589년 1월 (음력)
사망일 1645년 10월 15일 (56세) (음력)
부친 선조
모친 인빈 김씨
배우자 양천군부인 허씨
자녀 양자 창림군(昌臨君)

생애편집

1589년(선조 22년) 1월, 선조와 귀인 김씨(인빈 김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서쪽으로 피난할 때, 의창군은 나이가 어려 유모가 품에 안고 산골짜기로 숨어지냈다.

1597년(선조 30년) 의창군(義昌君)에 봉해졌으며, 1603년(선조 36년) 4월 17일 이초참판 허성(許筬)의 딸인 양천군부인(陽川郡夫人) 허씨와 혼인하였는데, 허성의 아내가 병에 걸려 위중해지자 선조가 명을 내려 혼례 날짜를 앞당겨 진행하였다.[1]

1608년(광해군 즉위) 유영경의 옥사 직후 정운원종공신 1등(定運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광해군의 패륜을 못내 한탄하다가 1618년(광해군 10) 모반죄로 주살된 허균의 사건에 연좌되어 훈작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1623년(인조 1)에 인조반정으로 다시 풀려나와 종친으로써 인조의 총애를 받았다.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하여 양자로 창림군(경창군의 서장남)을 후사하였고 이후 양손자로는 영춘군(정원대원군의 차남이자 인조의 동생인 능원대군의 4남)을 후사하였으며 양증손자로는 복창군(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차남)을 후사하다가 다시 숭선군(인조의 서장남)을 양손자로 후사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1. 선조실록》 161권, 선조 36년(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 4월 17일 (계묘)
    의창군이 이조 참판 허성의 딸을 아내로 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