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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창군 이정(福昌君 李楨, 1641년 11월 ~ 1680년 5월 24일)은 조선 중기의 왕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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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창군
福昌君
지위
군(君)
이름
이정
李楨
신상정보
출생일 1641년 11월
출생지 조선 한성부
사망일 1680년 5월 24일 (40세)
사망지 조선 경기도 교동군 교동도에서 사사됨.
부친 영춘군 이정(양부)
인평대군 이요(생부)
모친 복천부부인 동복 오씨(생모)
배우자 군부인 창원 황씨
자녀 의원군 이혁(양장자)
완원군 이식(양차자)
기타 친인척 복녕군(형)
복선군(아우)
복평군(아우)
인조(친할아버지)
창림군(양할아버지)
능원대군(친종조할아버지)
능창대군(친종조할아버지)
정원대원군 원종(친증조할아버지)
신성군(큰종증조할아버지)
임해군(큰종증조할아버지)
광해군(큰종증조할아버지)
의창군(작은종증조할아버지)
경창군(작은종증조할아버지)
영창대군(작은종증조할아버지)
평운군(재종조할아버지)
소현세자(동복 큰아버지)
효종(동복 큰아버지)
효명옹주(이복 고모)
숭선군(이복 작은아버지)
낙선군(이복 작은아버지)
숙신공주(사촌 누나)
의순공주(사촌 누나)
경선군(사촌 형)
숙안공주(사촌 누나)
숙명공주(사촌 누나)
경완군(사촌 형)
현종(사촌 형)
경안군(사촌 남동생)
동평군(사촌 남동생)
명선공주(5촌 조카딸)
숙종(5촌 조카)
명혜공주(6촌 조카딸)
명안공주(5촌 조카딸)
종교 유교(성리학)

목차

이력편집

인조의 아들인 인평대군의 차남으로 왕실의 종친으로서 숙종의 신임을 받았으나, 허견의 옥사 때 동생 복선군이 역모를 꾀했다는 명목으로 사사될 때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휘는 정(楨),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어머니는 복천부부인 오씨이다.

생애편집

1649년에 복창군(福昌君)으로 책봉된 그는 1662년 숭헌대부(崇憲大夫)에 가자되고[1] 일찍이 진하 겸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2] 임금의 가까운 종친으로서 세력을 떨쳤다. 내수사에 바치는 공물을 빼앗은 일로 파직되거나[3] 형제들과 사냥을 나가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등[4] 종친으로서 위세를 부린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다.[5]

1674년 숙종이 즉위하자 사은사 겸 동지사로 임명되어 청에 다녀왔다.[6] 같은 해에 명성왕후의 아버지 김우명이 차자를 올려 복창군이 복선군과 함께 궁중의 나인과 간통하여 자식까지 갖게 되었다고 고발하였다.[7] 그러나 복창군, 복선군 및 나인들이 모두 혐의를 인정하지 않자 숙종이 "남의 말을 믿고 골육의 지친(至親)이 헤아릴 수 없는 처지에 빠지게 하여 부끄럽다"며 놓아주게 하였는데[8] 명성왕후가 나서서 복창군 등의 일은 명백한 사실이며 숙종이 어려서 몰랐을 뿐이라고 하며 처벌을 주장하였다.[9] 이로 인해 복창군은 영암에 유배되었고,[10] 동생 복선군과 연루된 나인들도 각각 유배되었으나 남인들의 비호와 숙종의 애정으로 몇 달만에 풀려나 서용되었다.[9]

1680년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은 조정에서 남인을 몰아내기 위하여 복선군이 남인인 허견 등 몇 명의 추대를 받고 역모를 꾀한다는 고변을 하였다.[11] 복창군은 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국문을 받았고 동생들과 함께 유배되었는데 이때 형제들이 서로 연락을 하지 못하도록 복창군은 거제에, 복선군은 진도에, 복평군은 교동도에 각각 안치되었다.[12] 이 사건으로 복창군은 동생 복선군과 함께 사사되었고 관련된 사람들 중 60여명이 유배, 50여명이 삭탈관직되었다.[12] 이때 유배된 사람 가운데에는 희빈 장씨의 오촌 당숙으로 복창군 형제의 심복[13] 이었던 장현도 있었다.

사후편집

복창군의 딸은 이 사건으로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혼자 살게 되었는데 숙종이 내수사에 명해 먹을거리를 내리게 하였다.[14] 복창군은 죽은 형 복녕군의 아들 이혁을 양자로 삼았으나[15] 죄가 연좌되지 않도록 파양시켰다[16]. 이후 1689년에 관작이 신원됨에 따라,[17] 양자 이식으로 하여금 복창군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18]

가족 관계편집

각주편집

  1. 《조선왕조실록》 현종 5권, 3년(1662 임인 / 청 강희(康熙) 1년) 2월 14일(무오) 1번째기사
  2. 《조선왕조실록》 현종 14권, 9년(1668 무신 / 청 강희(康熙) 7년) 5월 18일(을묘) 1번째기사
  3. 《조선왕조실록》 현종 11권, 6년(1665 을사 / 청 강희(康熙) 4년) 12월 30일(신사) 2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 현종 14권, 9년(1668 무신 / 청 강희(康熙) 7년) 2월 22일(신묘) 1번째기사
  5. 《조선왕조실록》 현종 19권, 12년(1671 신해 / 청 강희(康熙) 10년) 7월 17일(병인) 1번째기사
  6. 《조선왕조실록》 숙종 1권, 즉위년(1674 갑인 / 청 강희(康熙) 13년) 11월 7일(병인) 1번째기사
  7. 《조선왕조실록》 숙종 3권, 1년(1675 을묘 / 청 강희(康熙) 14년) 3월 12일(경오) 3번째기사
  8. 《조선왕조실록》 숙종 3권, 1년(1675 을묘 / 청 강희(康熙) 14년) 3월 13일(신미) 2번째기사
  9. 이한우, 《왜 조선은 정도전을 버렸는가》 21세기 북스, 2009, p.178, ISBN 9788950918941
  10. 《조선왕조실록》 숙종 3권, 1년(1675 을묘 / 청 강희(康熙) 14년) 3월 15일(계유) 3번째기사
  11. 이덕일, 《윤휴와 침묵의 제국》 다산초당, 2011, p.377, ISBN 9788963705712
  12.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3》 한길사, 2001, p.136~p.137, ISBN 9788935651528
  13. 《조선왕조실록》 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
  14. 《조선왕조실록》 숙종 14권, 9년(1683 계해 / 청 강희(康熙) 22년) 윤6월 23일(계해) 1번째기사
  15. 《조선왕조실록》 숙종 14권, 9년(1683년) 윤6월 23일 1번째 기사
  16. 《조선왕조실록》 숙종 9권, 6년(1680년) 4월 28일 2번째 기사
  17. 《조선왕조실록》 숙종 21권,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7월 18일(임자) 2번째기사
  18. 《조선왕조실록》 숙종 21권, 15년(1689년) 10월 5일 2번째 기사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