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리 군기》(Слово о плъку Игорєвѣ)는 고대 러시아 문학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꼽히는 서사시이다. <이고리 무용담>, <이고리 원정기>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오랜 동안 묻혀 있었으나 18세기 말에 발견되어 1800년에 간행되었다. 여기에서 읊은 것은 남러시아 제공(諸公) 가운데의 한 사람인 이고리가 그 무렵 더욱 빈번하게 러시아를 침범한 폴러베츠족(族) 정벌을 위해 일족을 이끌고 스테프로 출전한 원정이다. 광야의 한복판에서 적군과 조우(遭遇)한 이고리군(軍)은 최초의 싸움에서는 혁혁한 승리를 거두나 다음날에는 전력을 가다듬은 폴러베츠족에게 크게 패하여 이고리와 그 아들은 포로가 된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이고리는 감시의 눈을 피해서 러시아로 탈출하고 폴러베츠족 수령의 딸을 아내 삼은 아들도 가족을 이끌고 불원 조국에 귀환한다. 이 사건 자체는 연대기에도 기록되어 있으나 <이고리 군기>의 작자는 사건의 단순한 기록에 중점을 둔 연대기와는 아주 다른 수법을 써서 이고리의 원정을 묘사하고 있다.

작자는 우선 전설적인 음유시인(吟遊詩人) 보얀을 회상하여 그 시재(詩才)를 찬양하고 광야에서의 격전을 왕년에 있었던 러시아 제공의 회전(會戰)에 비교, 이고리의 패전과 러시아 민중의 재난을 초래한 원인이 된 제공간(諸公間)의 내분을 비난하고 있다. ‘루시의 땅을 위해 이고리의 마음의 상처에 보답하기 위해’ 분기할 것을 촉구하는 부르짖음은 이 작품에 독특한 절박감을 불어 넣고 있다. 이에 뒤이어 이고리의 아내 야러슬라브나가 바람과 드네프르강(江)과 태양을 향해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고 남편의 구원을 원하는 서정적 장면이 묘사된다. “두견새로 변하여 도나우강을 훨훨 날아가자 옷소매를 물에 적시어서 내 낭군님

상처의 피를 씻기 위해서”라는 기원은 마침내 보람이 있어 이고리 공은 루시의 땅에 돌아오게 되고 이고리 공과 병사들에 대한 축복의 말과 함께 이야기는 끝난다.

<이고리 군기>의 작자는 불명이다. 이고리공의 수행원 중의 한 사람이 아니면 당시의 음유시인에 의한 것으로도 생각되는데 고도의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깊은 교양을 지닌 시인인 것만은 확실하다. 또 이 작품이 성립된 정확한 연대도 뚜렷하지 않다. 다만 이고리와 그 아들의 귀국이 작품 가운데 나오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 2년 후인 1187년 경에 저술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너무나 걸출한 데다가, 더욱이 핵심이 되는 사본이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후세의 위작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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