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장군)

● 이봉수(李鳳壽) 장군

1573년(선조 6)∼1634년(인조 12).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로(德老), 호(號)는 석계(石溪),

아버지는 호조참판(戶曹參判-從二品)에 추증된 동명(東明)이고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 경서(慶瑞)의 따님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성웅으로 만든 7명의 영웅들이 있었다.

석계 이봉수(石溪 李鳳壽) 장군이 그중 한분이다.

석계 이봉수 장군은 어렸을 적부터 활을 쏘고 말을 타며 또 병법인 팔진법을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이순신 장군을 찾아가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왜군을 무찌르는 계책을 알림으로

전란에 참여하게 되었고, 화약(염초=질산)을 제조하는 기술을 발휘하여 화포로서 왜선을 제압할 수 있었다.

(염초는 오늘날로 보면 질산칼륨이다) 전라좌수영에서 화약만드는 제조기술의 책임자였다.


또한 그는 중요한 나룻 터에 철쇄를 비치하고 높은 봉우리에 망대를 설치하였으며,

그가 이순신장군에게 제안하였던 8진법(학익진, 장사진, 일자진, 등등)으로

옥포(玉浦), 당포(唐浦), 석포(石浦), 사량포(蛇梁浦) 등지의 해전에서 연달아 왜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후 판관에 임명되고, 뒤에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책록 되었다. 

1634년 62세의 나이로 졸하니 이듬해 형조참판(刑曹參判-從二品)에 추증되었다


[참고자료]

1. 묘소의 소재지

원래 묘소는 전남 장흥군 장평면 와곡에 있었는데, 장흥군 행정당국이 2004년 주변

40만평이 넘는 27홀 짜리 장평 골프장 인허가를 내면서 부득히 전남 보성군 조성면

은곡리 사초마을 선영으로 이장하여, 매년 음력 10월 15일 제향을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