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야구인)

이상윤 (李相潤, 1960년 12월 21일 ~ )은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투수였다. 우투우타로,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의 주역으로[1] 베스트 10에 우완 투수로 뽑힌 해태 타이거즈 초창기의 최고 에이스였다.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당시 시속 145km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제구력도 뛰어나 선동열이 입단하기 전까지 해태의 초대에이스였으며 본인이 다닌 동신중학교 측에서 이 학교와 같은 재단인 동신고등학교 진학을 원했으나[2] 광주일고 진학을 선택했고 이 과정에서 동신고가 강력하게 반발하여 동신고 야구부는 1975년 말 해체됐으며 중학교 때 포수, 고등학교 1학년 때 3루수로 활약했지만[3] 고등학교 2학년 때 강한 어깨를 인정받아[4] 투수로 전향했다.

이상윤
Lee Sang-Yun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0년 12월 21일(1960-12-21)(63세)
출신지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신장 182cm
체중 88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82년
드래프트 순위 1983년 2차 지명 (해태 타이거즈)
첫 출장 KBO / 1982년 4월 15일
광주MBC전 선발 등판
마지막 경기 KBO / 1989년 4월 19일
광주태평양전 선발 등판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1983년 해태 타이거즈 첫 우승 당시 20승(13선발승)을 거두고도, 장명부(30승)(28선발승)에게 밀려 2위를 하였는데[5] 전반기의 오버페이스, 후반기의 체력조절도 하나의 이유였으며(장명부(28선발승) 김시진(14선발승)에 이어 선발승 3위) 이 해의 무리 탓인지 팔을 보호하기 위해 오른팔에 깁스를 하여[6] 다음 해에 10승(4선발승)으로 추락했고 1985년에는 아예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역대 20승 투수 중 다승부분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는 이상윤이 유일하며 이후 1986년 10선발승으로 재기에 성공하여 80년대 초중반 김용남과 함께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투수에 올랐고, 1989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는데 1987년에는 무릎수술[7] 후유증과 팔꿈치 부상[8]에 시달려 2승(모두 선발)으로 추락했으나 1988년 시즌에는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며 16승(13선발승으로 윤학길과 선발승 공동 2위) 6패, 평균자책 2.89를 기록하며 선동렬(16승(9선발승) 5패)과 함께 쌍두마차로 해태의 통합우승 및 3연패에 크게 기여했다.


그 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해태 타이거즈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다가 2001년부터 같은 팀(후반기부터 KIA)에서 수석코치를 맡았으며[9] 2000년 말 3년 계약으로 부임했던 김성한 감독이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2002년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시즌 후 2년 재계약하자[10] 투수코치로 복귀했다. 하지만, 김성한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2004년 시즌 중 도중하차한 데다 같은 해 말 유남호 감독이 부임하면서 생긴 개편에 따라 팀을 떠나[11]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으나 2군 운영에 변화를 주기 위한 삼성 측의 판단 아래 2005년 말 팀을 떠났으며[12] 현재는 광주에서 마트사업을 하고 있다.

학교 편집

지도자 경력 편집

통산 기록 편집

한국시리즈 우승 4차례- 1983, 1986, 1987, 1988

연도 소속 평균 자책 경기 승리 패전 세이브 이닝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1982 해태 3.88 23 7 5 0 102 87 64 58 51 44
1983 2.67 46 20 10 6 229 1/3 181 99 178 83 68
1984 2.85 40 10 13 8 211 2/3 186 83 128 75 67
1985 10.80 2 0 2 0 5 9 3 2 6 6
1986 2.97 21 10 5 0 115 91 54 47 45 38
1987 4.93 12 2 4 0 42 46 20 13 26 23
1988 2.89 30 16 6 0 137 98 79 55 56 44
1989 16.20 1 0 1 0 1 2/3 4 2 1 3 3
통산 8시즌 3.13 175 65 46 14 843 2/3 702 404 482 345 293

참고 문서 편집

'천하무적' 해태타이거즈 '올드보이'들의 현주소/신동아(050113)|작성자 energy

각주 편집

  1. 김성태 (2004년 9월 5일). “타이거즈 첫 20승 에이스 이상윤, 그저 그런 2인자였다?[타이거즈 열전]”. 스포츠한국.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2. “無斷缺席(무단결석)들어除籍(제적) 光州(광주)동신中(중) 李相潤(이상윤)군에”. 동아일보. 1975년 12월 11일.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3. “昨年(작년)까지 三壘手(삼루수)‥‥첫투수로 10회延長戰(연장전)서 決勝(결승)홈런날려”. 조선일보. 1977년 6월 14일. 2020년 10월 27일에 확인함. 
  4. 김성태 (2004년 9월 5일). “타이거즈 첫 20승 에이스 이상윤, 그저 그런 2인자였다?[타이거즈 열전]”. 스포츠한국.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5. 김성태 (2004년 9월 5일). “타이거즈 첫 20승 에이스 이상윤, 그저 그런 2인자였다?[타이거즈 열전]”. 스포츠한국.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6. 김종건 전문기자 (2012년 6월 12일). “[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김응룡은 왜 우승 주축들을 내쳤나…”. 스포츠동아.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7. '87프로야구 絕對强者(절대강자)는 없다”. 동아일보. 1987년 3월 3일.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8. “프로야구 靑龍(청룡),호랑이에 설욕…3위 되찾아”. 동아일보. 1987년 5월 4일.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9. 유해길 (2000년 11월 1일). “[프로야구]해태, 대폭적 물갈이 전망”. 세계일보.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10. “<프로야구소식> 박관용 국회의장, KS1차전 시구”. 연합뉴스. 2003년 10월 16일.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11. “<프로야구소식> 기아, 계약해지 코치진 확정”. 연합뉴스. 2004년 10월 14일.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12. 안승호 (2005년 10월 23일). “삼성 ‘젊은 피’ 키운다”. 경향신문. 202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