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대한민국의 야구인

선동열(본명 : 선동렬 宣銅烈[1], 1963년 1월 10일~)은 대한민국의 야구인이다. 한국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일본 프로 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투수로 활동하였다. 이후 주니치 드래건스(2003)와 삼성 라이온즈(2004, 수석 코치)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2005~2010), KIA 타이거즈 감독(2012~2014)을 맡았다. 그리고 2017년부터 2018년까지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감독을 지냈다.

선동열
Sun Dong-Yeol
KIA 타이거즈 No.18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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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KIA 타이거즈 감독).jpg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3년 1월 10일(1963-01-10)(59세)
출신지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도산리 원도산마을 7
신장 184 cm
체중 97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85년
드래프트 순위 1985년 1차 3순위(해태 타이거즈)
첫 출장 KBO / 1985년 7월 2일
대구삼성전 선발
NPB / 1996년 4월 5일
히로시마도요카프전 구원
마지막 경기 KBO / 1995년 9월 26일
광주롯데전 구원
NPB / 1999년 10월 27일
나고야 돔다이에전 구원
획득 타이틀
  • 1986년, 1989년~1990년 KBO 정규 시즌 MVP
  • 1986년, 1988년~1991년, 1993년 KBO 골든 글러브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1984년
월드컵 1982년, 1984년
대륙간컵 1983년
아시아선수권 1983년, 1985년
월드컵 U18 1981 뉴어크

1996년 선동열의 등번호 18번은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에서 영구 결번되었다. 별명으로는 국보, 무등산 폭격기 등이 있다.

선수 시절편집

한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해태 타이거즈 시절편집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로 손꼽힌다. 선발투수로서 두 번, 마무리 투수로서 한번의 규정이닝을 채우며 통산 3번의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해인 95년 당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구속인 155km/h의 패스트볼과 수준급 슬라이더를 던지던 투수였다.

고려대를 졸업 후 85년 후기리그부터 출전하여 95년까지 총 11시즌이 못 미치는 기간의 국내 프로리그 경력 중 7번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6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총 3회의 정규시즌 MVP와 6회의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통산 sWAR 101.29을 기록하여 전무후무한 수치를 보여준다. 한국프로야구에서 활약 당시 불펜에 나와 몸만 풀고 있어도 상대팀은 위축되었고 실제 등판하면 상대팀 응원 관중들도 경기 끝났다며 경기장을 나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위력을 떨치던 투수였다.

그의 일본 진출 후 해태와 삼성에서 선발과 마무리를 통해 KBO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하나로 성장한 임창용이 한국프로야구 18시즌 통산 sWAR이 54.70인 것으로 볼 때 선동열이 얼마나 리그를 압도하는 투수였는지 알 수 있다.

커리어 하이 시즌은 1986년의 262.2이닝을 던져 24승과 0.99의 평균자책점에 sWAR는 무려 14.89이었다. sWAR 10이상을 기록했던 해가 6회나 되는데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투수로서 10이상을 두 번 이상 기록한 투수는 선동열이 유일하다.

93년과 95년에는 팀이 점수가 앞서면 7회부터 나와 9회까지 마무리하는 경우가 빈번했음에도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정도로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92년 어깨부상을 겪고 마무리로 변신하여, 93년도 49경기 출장하며 126.1이닝을 던져 마무리투수임에도 규정이닝을 채워 0.7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엽기적인 기록을 세우며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따는데도 모두가 그러려니 하였다.

94년 박찬호가 미국에 진출하자 박탈감에 빠지며 부진했으나 95년도 48경기 출장에 109.1이닝을 던져 0.49라는 밑기 어려운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그 당시 선동열과 같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선수는 구대성, 이상훈, 양준혁, 이종범 등이다. 추후 구대성, 이상훈은 일본프로야구를 거쳐 미국프로야구인 MLB로도 진출한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편집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편집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일본에 진출해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그는 한국 프로 야구 선수 중 일본에 진출한 최초의 선수였다.[2] 1997년에 각종 신기록들을 세웠다. 개인 최다 세이브인 38세이브를 기록해 사사키 가즈히로와 함께 세이브 공동 1위(구원 2위)를 차지했다. 1999년에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끈 후 1999년 11월 22일에 은퇴를 선언했다.[3]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은퇴 후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은 그는 2000년KBO의 홍보위원으로 위촉됐으며,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으로 활동했다. 2003년 시즌 후 김인식의 후임으로 두산 베어스가 그에게 감독직을 제의했으나 조건에 이견을 보여 협상이 결렬됐다.[4] 협상이 결렬된 두산 베어스는 당시 배터리코치였던 김경문을 후임 감독으로 내정했다.[5] 이후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부름을 받아 라이벌 팀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부임해 본격적으로 KBO 리그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6] 2004년 한국시리즈 이후 선수단 인사에서 김응용이 구단 사장으로 보직이 바뀌자 11월 9일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승격됐다. 부임하자마자 박진만, 심정수를 FA로 영입해 호화 멤버진을 구축했으며, 이때 삼성 라이온즈는 "레알 삼성"으로 불렸다. 감독으로 부임한 첫 시즌인 2005년 정규 리그 1위(74승 48패 4무)를 차지했고 정규 리그 2위 두산 베어스를 4연승으로 스윕해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정규 리그 3위였던 한화 이글스를 4승 1무 1패로 꺾고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09년에는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나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별다른 전술 대처없이 무기력하게 4연패로 스윕당하며 준우승을 기록했다. 때마침 삼성그룹의 조직 개편이 겹치면서 구단 사장과 단장이 전부 바뀌자 그 해 말 당시 작전코치였던 류중일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물러나 구단의 운영 위원으로 활동했다.[7]2011년 10월 18일 조범현의 후임으로 친정 팀 KIA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등번호는 자신의 영구 결번 18번이 아닌 90번을 달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2012년 시즌 5위, 2013년 시즌 8위, 2014년 시즌 8위로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그럼에도 KIA 타이거즈와 2년 재계약에 성공하며 엄청난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으나 팬들의 안 좋은 여론이 일었고, 결정적으로 당시 경찰청 입대를 선언한 내야수 안치홍에게 임의 탈퇴를 공시하겠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 재계약을 발표한 지 6일 만인 2014년 10월 25일 사퇴했다.[8] 그의 후임으로는 김기태가 선임됐다. 이후에는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활동했고, 2017년 7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전임 감독으로 선임됐다.

논란편집

가수 데뷔편집

그는 1994년 같은 팀 선수였던 이종범과 가수 양수경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Two & One을 결성하여 앨범을 내기도 했다.[10]

등번호편집

출신 학교편집

통산 기록편집





































4














W
H
I
P
1985 해태 23 7 4 .636 1.70 25 3 1 0 8 0 111.0 74 2 20 4 103 3 0 3 30 21 424 0.85
1986 24 24 6 .800 0.99 39 22 19 8 6 0 262.2 153 2 52 5 214 7 2 3 38 29 972 0.78
1987 25 14 2 .875 0.89 31 11 7 4 6 0 162.0 89 2 47 1 144 3 1 1 21 16 604 0.84
1988 26 16 5 .762 1.21 31 12 9 1 10 0 178.1 116 3 35 0 200 7 1 0 29 24 674 0.85
1989 27 21 3 .875 1.17 36 12 8 6 8 0 169.0 82 2 48 0 198 7 1 4 27 22 618 0.77
1990 28 22 6 .786 1.13 35 16 8 6 4 0 190.1 121 1 50 1 189 8 0 5 35 24 724 0.90
1991 29 19 4 .826 1.55 35 22 12 3 6 0 203.0 135 8 25 0 210 8 1 1 42 35 761 0.79
1992 30 2 0 1.000 0.28 11 2 1 1 8 0 32.2 20 0 10 0 42 2 0 1 1 1 119 0.92
1993 31 10 3 .769 0.78 49 1 0 0 31 0 126.1 48 2 20 0 164 6 0 0 11 11 433 0.54
1994 32 6 4 .600 2.73 27 8 3 0 12 0 102.1 81 5 21 0 94 8 2 3 31 31 404 1.00
1995 33 5 3 .625 0.49 48 0 0 0 33 0 109.1 49 1 14 3 140 3 0 6 9 6 381 0.58
1996 주니치 34 5 1 .833 5.50 38 1 0 0 3 0 54.0 62 4 22 3 67 3 0 1 35 33 248 1.56
1997 35 1 1 .500 1.28 43 0 0 0 38 0 63.1 36 0 12 0 69 1 1 0 9 9 232 0.76
1998 36 3 0 1.000 1.48 42 0 0 0 29 0 48.2 31 4 11 0 58 0 0 1 8 8 187 0.86
1999 37 1 2 .333 2.61 39 0 0 0 28 0 31.0 31 1 10 1 34 0 0 4 9 9 131 1.32
KBO 통산 : 11년 146 40 .785 1.20 367 109 68 29 132 0 1647.0 968 28 342 14 1698 62 8 27 274 220 6114 0.80
NPB 통산 : 4년 10 4 .714 2.70 162 1 0 0 98 0 197.0 160 9 55 4 228 4 1 6 61 59 798 1.09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빨간 글씨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기록

주요 기록편집

KBO 리그 기록편집

주요 수상 기록 (각종 타이틀 외)

  • 정규 시즌 MVP 3회 (1986, 1989, 1990)
  • 선발 올스타 출전 9회 (투수 부분 최다 및 최다 연속 기록 (9년- 1986~1994))
  • 골든 글러브 6회 (투수 부분 최다 및 최다 연속 기록)
    • 투수 (1986, 1988, 1989, 1990, 1991, 1993)
  • 1986 (방어율 1위,승리 1위, 선발승 1위, 구원승 공동 3위,탈삼진 1위, WHIP 1위, 피안타율 1위, 세이브 4위)
    • 24승(17선발승) 6패 6세이브, 방어율 0.99, WHIP 0.78, 탈삼진 214개, 피홈런 2개
  • 1987 (방어율 1위,승리 4위, 구원승 공동 1위,탈삼진 2위, WHIP 1위, 피안타율 1위, 세이브 3위)
    • 14승(5선발승) 2패 6세이브, 방어율 0.89, WHIP 0.84, 탈삼진 144개, 피홈런 2개
  • 1988 (방어율 1위,승리 2위, 선발승 공동 4위, 구원승 공동 2위,탈삼진 1위, WHIP 1위, 피안타율 1위, 세이브 4위)
    • 16승(9선발승) 5패 10세이브, 방어율 1.21, WHIP 0.85, 탈삼진 200개, 피홈런 3개
  • 1989 (방어율 1위,승리 1위, 선발승 9위, 구원승 1위, 탈삼진 1위, WHIP 1위, 피안타율 1위, 세이브 4위)
    • 21승(9선발승) 3패 8세이브, 방어율 1.17, WHIP 0.77, 탈삼진 198개, 피홈런 2개
  • 1990 (방어율 1위,승리 1위, 선발승 공동 4위, 구원승 공동 1위,탈삼진 1위, WHIP 1위, 피안타율 2위)
    • 22승(11선발승) 6패 4세이브, 방어율 1.13, WHIP 0.90, 탈삼진 189개, 피홈런 1개
  • 1991 (방어율 1위,승리 1위, 선발승 공동 2위, 구원승 공동 9위,탈삼진 1위, WHIP 1위, 피안타율 2위)
    • 19승(15선발승) 4패 6세이브, 방어율 1.55, WHIP 0.79, 탈삼진 210개, 피홈런 8개 (최다홈런허용)
  • 1992 (부상으로 11게임 등판, 세이브 6위- *92시즌후부터 전업마무리로 전환*)
    • 2승(모두 선발) 8세이브, 방어율 0.28, WHIP 0.28, 피홈런 0개
  • 1993 (방어율 1위,세이브 1위, 구원승 공동 1위,WHIP 1위, 피안타율 1위, 탈삼진 2위, 승리 15위)
    • 10승(모두 구원) 3패 31세이브, 방어율 0.78, WHIP 0.54, 탈삼진 164개, 피홈런 2개
  • 1994 (최악시즌 (부상으로 27경기, 유일한 KBO리그 방어율 2점, 윕 1점 이상시즌) 세이브 5위, 탈삼진 15위)
    • 6승(5선발) 4패 12세이브, 방어율 2.73, WHIP 1.22, 탈삼진 94개, 피홈런 5개
  • 1995 (세이브 1위, 구원승 공동 6위, 탈삼진 6위 (정규이닝수부족: 109이닝))
    • 5승(모두 구원) 3패 33세이브, 방어율 0.49, WHIP 0.58, 탈삼진 140개, 피홈런 1개
  • 최저 평균자책점(1985,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3)
  • 최다 승리(1986, 1989, 1990, 1991)
  • 최다 선발승(1986년 17선발승)
  • 최다 탈삼진(1986, 1988, 1989, 1990, 1991)[11]
  • 최다 세이브포인트(1993, 1995)
  • 한 경기 최다 투구수(1987.5.16 사직 232개, 상대팀 롯데 투수 최동원 209개 15회 2:2)
  • 최고 승률부분 등 나머지 카테고리는 추후 삽입.

최소 500이닝이상기준 (선동렬 통산 1,647이닝)

  • 역대 통산 최저 방어율 (1.20)
  • 역대 통산 최저 WHIP (0.80)
  • 역대 통산 최다승 4위 (146승 (1,647이닝- 비고: 역대 최다승 5위내 모두 통산 2100이닝이상))
  • 역대 통산 1000이닝 이상 투수 최소패 1위 (40패- 비고: 역대 최다승 5위내 모두 통산 110패이상, 3명은 120패이상)
  • 역대 통산 최다 탈삼진 3위 (1,698개 (11년)- 비고: 역대 통산 탈삼진 5위내 모두 15년 이상)
  • 역대 통산 최다 세이브 8위 (132개 (전업 마무리 시즌- 1993-1995 (3년))
  • 역대 통산 최소 피홈런 1위 (통산 28개- 비고: 역대 최다승 5위내 모두 통산 210개이상 허용)
  • 역대 통산 최소 자책점 1위 (통산 220점- 비고: 역대 최다승 10위내 모두 통산 600점이상 허용 (김시진제외- 547점))
  • 역대 통산 최소 볼넷 허용 1위 (통산 342개- 비고: 역대 최다승 5위내 모두 통산 650개이상 허용)
  • 역대 최다 연속 무실점 이닝(49⅓이닝(1위, 1986년 8월부터 1987년 4월), 46⅓이닝(2위,(1995년))
  • 역대 최다 연속 선발 무실점 이닝(역대 2위, 37이닝·1986~1987년) (* 1위는 서재응의 44이닝, 2012년)
  • 역대 최다 평균자책점 타이틀 (8회)
  • 역대 최다 연속 평균자책점 타이틀 (7회- 1985~1991)
  • 역대 최다 다승왕 타이틀 (4회)
  • 역대 최다 연속 다승왕 타이틀 (3회- 1989~1991)
  • 역대 최다 탈삼진 타이틀 (5회)
  • 역대 최다 연속 탈삼진 타이틀 (4회- 1988-1991)
  • 역대 최다 20승 이상 시즌 (3회)
  • 역대 최다 완봉승 (29회, 비고 2위: 윤학길 & 정민철 각 20회)
  • 역대 최다 연속 타석 무피홈런- 1989. 5.9~1990. 9.25 (1,186타석)
  • 역대 최다 연속 투구 이닝 무피홈런- 1989. 5.9~1990. 9.25 (319이닝)
  • 역대 최다 특정팀 상대 연승- 1988. 8.11~1995. 9.26 (대 롯데전 20연승 만 7년 1개월)

일본 프로 야구 기록편집

  • 10승 4패, 98세이브
  • 1999년 주니치 드래건스 소속 - 팀 우승
  • 일본 프로 야구 개인 통산 세이브 부문 24위의 기록, 1997 시즌 외국인 세이브부문 1위
  • 1997년 1승, 38세이브(당시 일본 신기록) 기록 구원 2위, 세이브 성공률 1위

평균자책점편집

KBO 리그에서 뛰던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1시즌 동안 1994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평균자책점이 2점대로 올라간 적이 없을 만큼 압도적인 구위를 유지했다. 규정 이닝을 채운 0점대 평균자책점 시즌만 3차례(1986·1987·1993)였다.

국제대회 성적편집

연도 장소 대회명 비고
1981년   미국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3-0, 0.38 ERA (3 G, 24.0 IP, 1 ER, 36 K)
방어율왕,MVP
1982년   대한민국 야구 월드컵   3-0, 0.31 ERA (4 G, 29.0 IP, 1 ER, 30 K)
MVP, 올스타 (P), 다승왕
1983년   대한민국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1-0, 1.17 ERA (2 G, 15.1 IP, 2 ER, 3 R)
1983년   벨기에 대륙간컵 5 방어율왕,올스타 (P)
1984년   미국 1984년 하계 올림픽 4 1-1, 0.56 ERA (3 G, 16.0 IP, 1 ER, 10 K)
1984년   쿠바 야구 월드컵 5 1-1, 0.00 ERA (4 G, 17.1 IP, 0 ER, 20 K)
방어율
1985년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그를 연기한 배우들편집

각주편집

  1. “宣銅烈, 3경기 연속 구원승”. 연합뉴스. 1996년 7월 18일. 2017년 1월 11일에 확인함. 
  2. 연합 (1997년 12월 3일). “<프로야구> 프로야구 해외진출사에 큰 획”. 연합뉴스. 2021년 8월 19일에 확인함. 
  3. 선동열, 은퇴 공식 선언 - 연합뉴스
  4. 프로야구 두산, 선동열 영입 포기 - 연합뉴스
  5. 두산, 김경문 신임 감독과 계약 - 연합뉴스
  6. 선동열, 삼성 투수코치 계약 - 연합뉴스
  7. '좋은 성적 내고도 경질된 프로야구 감독' 역대 베스트 5 - 스포츠조선
  8. 선동열 안치홍 사태 후폭풍, 감독 재계약 6일만에 사퇴..임의탈퇴 협박? - 서울신문
  9. “선동열 감독, 오지환 때문에 국정감사 불려가나?”. 《매일경제》. 2018년 9월 28일에 확인함. 
  10. 김진 (2009년 11월 26일). '특급 쌕쌕이' 이종범, 과자-앨범 제작 에피소드 공개!”. 아츠뉴스. 2009년 11월 28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1. 단, 1992년까지는 공식 시상 대상이 아니었다.

외부 링크편집

스포츠 직위
이전
김응용
제12대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04년 11월 9일 ~ 2010년 12월 30일
이후
류중일
이전
조범현
제7대 KIA 타이거즈 감독
2011년 10월 18일 ~ 2014년 10월 25일
이후
김기태
이전
김인식
대한민국 국가 대표 야구단 감독
2017년 ~ 2018년
이후
김경문
수상
이전
김시진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86년
이후
김시진
이전
김시진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88년 ~ 1991년
이후
염종석
이전
염종석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93년
이후
정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