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 (1373년)

이예(李藝, 1373년 ~ 1445년 3월 31일(음력 2월 23일))는 조선 초의 무신이자 문신이며 외교관이다. 본관은 학성 이씨. 아호는 학파(鶴坡). 시호는 충숙(忠肅)이며, 학성 이씨의 시조이다. 그의 선대는 고려조의 명문 귀족이었으나 고려조의 충절을 지켜 낙향하였고, 그의 가문 구성원들이 조선건국에 반하였기 때문에 중인 계급으로 강등되었음으로 그는 중인 계급에 속하는 아전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을 통한 포로석방의 공훈으로 아전의 역이 면제되고 벼슬길에 올라 그를 비롯한 그의 가문 구성원들은 양반이 되었고 그는 사대부의 반열에 올라 정2품에 해당되는 관직인 동지중추원사의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으며, 유고로 《학파실기(鶴坡實紀)》가 있다.

생애편집

1397년 1월 31일 3천명의 왜구들이 울주포[3] 에 침입하여 군수 이은(李殷) 등을 사로잡아 돌아갔다.[4] 다른 관리들이 모두 도망가 숨은데 비해 이예는 자진해 군수를 따라가 끝까지 보필해 해적들을 감복시켰다. 후일 조선에서 파견한 통신사의 중재로 1397년 2월 이예는 군수와 함께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왔다. 조정에서는 이예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아전의 역(役)을 면제하고 벼슬을 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예는 중인 계층의 아전 신분에서 벗어나 사대부 양반으로서의 전문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다. 8세 때(1380년, 우왕 6년) 해적에게 잡혀간 어머니를 찾기 위해 조정에 청해 1400년 회례사(回禮使) 윤명(尹銘)의 수행원으로 대마도에 갔으나 찾지 못했다.[5]

처음으로 사절의 책임을 맡은 것은 1401년(태종1년)으로, 보빙사로 일기도에 파견되었다. 1406년 일본 회례관(日本回禮官)으로 파견되어, 납치되었던 남녀 70여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6] 1416년 1월 27일 유구국(현재의 오키나와)으로 가서, 왜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가 유구국으로 팔려간 백성을 데려오기 위해 유구국으로 파견되었다.[7] 그는 유구국에서 44인을 데리고, 같은 해 7월 23일 귀국하였다.[8]

1418년 4월 24일 태종 18년 대마도 수호 종정무가 사망하자, 조의 사절로 대마도에 파견되어 , , 종이를 부의하여 그의 충성을 후사하였다. 종정무는 치세 기간 도적을 금제하여, 변경을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특별히 이예를 파견한 것이다.[9]

... 上曰: “不知之人, 不可以遣, 玆用命汝以送, 勿憚煩數。” 遂賜笠靴。 禮曹參議柳季聞答石見州長濱(因番守)〔因幡守〕(이하 생략) [10]

1443년 세종 25년 왜적이 변방에 도적질하여 사람과 물건을 약탈해 갔으므로 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서 찾아오려 하니, 이예가 자청하여 대마도 체찰사(對馬島體察使)로 파견되었다. 이것이 마지막 사행(使行)이었다. 28세 나던 1400년에서 71세 나던 1443년까지 44년간 40여회 일본[11] 에 임금의 사절로 파견되었다. 그 중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사행(使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13회에 달한다[12]. 조선왕조실록에는 44년간의 사행에서 이예가 쇄환해온 조선인 포로의 수가 667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업적편집

일본인의 조선 입국 허가와 관련한 문인제도와 양국의 교역조건을 규정한 계해약조를 정약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종의 명으로 대장경을 일본에 전달하고 조선에 자전(自轉) 물레방아를 도입하였으며 일본식 상가제도의 시행을 건의하는 등 양국 문화 및 경제의 교류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사탕수수의 재배와 보급, 또한 민간에 의한 광물채취자유화와 이에 대한 과세, 화통 및 완구의 재료를 동철에서 무쇠로 변경, 외국 조선기술의 도입 등을 건의한 바 있다.[13]

평가편집

1910년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으로부터 충숙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005년 2월에 문화관광부이 달의 문화 인물로 선정했다. 2010년에는 외교통상부가 올해의 외교 인물에 선정하였다.

8세때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빼앗긴 사연속에서도 일본과 조선과의 평화와 우호관계를 위해 일평생을 헌신했던 이예선생의 삶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영화편집

2013년 6월 1일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 영화 '이예'(감독 이누이 히로아키(乾弘明), 주연 윤태영, 내레이션 고미야 에쓰코(小宮悦子)가 도쿄 시내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각주편집

  1. 蔚山群吏
  2. 일선 행정기록을 맡은 지방 관아의 직책
  3. 현재의 울산광역시이다.
  4. 『태조실록』 태조 6년(1397년) 1월 3일 2번째 기사
  5. 『세종실록』, 세종 27년(1445) 2월 23일 2번째 기사
  6. 『태종실록』, 태종 6년(1406) 윤 7월 3일 5번째 기사
  7. 『태종실록』, 태종 16년(1416) 1월 27일 4번째 기사
  8. 『태종실록』, 태종 16년(1416) 7월 23일 기사
  9. 『태종실록』, 태종 18년(1418) 4월 24일 2번째 기사
  10. 세종실록, 세종 8년(1426) 2월 12일 1번째 기사
  11. 대마도-일기도 포함
  12. 일본 국왕에 6회, 대마도-일기도-유구국에 7회
  13. 『세종실록』 세종 11년(1429) 12월 3일 5번째 기사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