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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화 (1935년)

이재화(李在華, 1935년 ~)은 헌법재판관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이재화
李在華
대한민국의 헌법재판관
임기 1993년 12월 30일 ~ 1999년 12월 29일
전임 이시윤
후임 김영일
대한민국의 제27대 대구고등법원장
임기 1993년 10월 15일 ~ 1993년 12월 30일
전임 서정제
후임 최공웅
신상정보
출생일 1935년 (82–83세)
출생지 대한민국 충청북도 중원군
학력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경력 대전지방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
배우자 김숙진
자녀 1남4녀

생애편집

1935년 충청북도 중원군에서 태어난 이재화는 충주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14회 고등고시 사법과, 행정과에 합격해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판사에 임용됐다. 이후 서울민사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와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장을 지내다가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대전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고등법원에서 법원장을 하였으며 1993년 12월에 이시윤 헌법재판관 후임으로 윤관 대법원장에 의해 지명되어 6년동안 헌법재판관을 했다. 대전지방법원에서 법원장을 할 때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소속 법관들과 함께 판례를 연구하는 등 <주석 민법 총칙>를 공동으로 저술했다.[1] 처음으로 공직자 재산을 공개했던 1993년에 서울가정법원장으로 재직했던 이재화는 본인 소유의 중원군 소태면 소재 임야와 서울 개포동 아파트, 예금과 배우자 소유의 서울 잠원동 아파트, 서울 갈현동 단독주택, 예금과 부친 소유의 중원군 소태면 논 등을 합해 모두 10억 7천 339만원을 신고했다.[2]

헌법재판관을 하면서 교도소 재소자의 수의 착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와 12.12 사건 불기소 처분 등에서 주심 재판관을 맡았다.

주요 판결편집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1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9년 9월 22일에 "매매 계약이 투기 지역으로 고시되기 전에 체결된 이상 고시 전의 양도세인 790만원만 납부하면 된다"며 "정당한 세금을 부과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600만원을 세무공무원에게 전달한 남궁원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뇌물을 받은 전 서울남부세무서 직원에게 특가법 수뢰죄를 적용하여 징역5년 벌금 3천만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했다.[3] 10월 23일에 부산과 삼천포를 거점으로 조국통일전선결사대를 조직해 국가 변란 등간첩활동을 해온 박문재(김삼연)에게 반공법,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하면서 다른 피고인 1명에게 징역15년 자격정지15년, 2명에게 징역7년 자격정지7년, 1명에게 징역3년6월 자격정지3년6월, 1명에게 징역3년 자격정지3년, 1명에게 징역2년 자격정지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4]
  • 광주고등법원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3년 7월 29일에 오송회 사건 피고인 9명 전원에게 국가보안법, 반공법을 적용하여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피고인 3명에게 1심보다 2,3년씩 높여 선고하면서 1심에서 선고유예가 선고된 6명에게 징역1년~2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5]
  •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3년 10월 19일에 전남 순천경찰서 청사 이전을 둘러싸고 업자들로부터 3천만원을 받아 구속된 순천경찰서장이었던 전남도경 보안계장 최용선에게 징역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5년 추징금 3천만원을 선고하면서 후임 경찰서장이었던 진용범에게는 징역3년의 원심을 깨고 징역2년6월 추징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6]

각주편집

  1. 동아일보 1993년 10월 13일자 경향신문 1993년 12월 30일자
  2. 한겨레 1993년 9월 7일자
  3. 1979년 9월 22일자
  4. 경향신문 1979년 10월 23일자 동아일보 1979년 11월 26일자
  5. 동아일보 1983년 7월 29일
  6. 동아일보 1983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