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 이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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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이사금(逸聖泥師今, 44년? ~ 154년, 재위 134년~154년)은 신라의 제7대 국왕으로, 유리이사금의 맏아들이라고 하며 일지(日知) 갈문왕의 사위라고 한다. 왕비는 지소례부인 박씨(支所禮夫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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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일성이사금
新羅 逸聖泥師今
지위
신라의 제7대 국왕
재위 134년-154년
전임 지마이사금(祗摩泥師今)
후임 아달라이사금(阿達羅泥師今)
부왕 유리 이사금(儒理泥師今)
이름
박일성(朴逸聖)
신상정보
부친 유리 이사금(儒理泥師今)
모친 이간생부인(伊刊生夫人)
배우자 지소례부인(支所禮夫人)

신라의 7대 군주로 가계는 다소 불분명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유리이사금의 장남이며, 적자라 한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일성의 아버지가 노례이질금(弩禮尼叱今=유리이사금)이라는 설과, 전임자인 지마 이사금이라는 설도 같이 수록되어 있어서 다소 불분명하다. 유리 이사금의 아들로 본다면 파사 이사금은 그의 이복 형 또는 이복 동생, 지마 이사금은 그의 조카가 되고, 지마 이사금의 아들로 본다면 유리 이사금이 증조부, 파사 이사금이 할아버지, 지마 이사금이 아버지가 된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그의 부인이 지소례 갈문왕(支所禮葛文王)의 딸인 지소례부인(支所禮夫人) 또는 지마 이사금의 딸 내례부인 박씨이 왕비라는 설을 같이 수록하였다. 148년에 그가 갈문왕으로 추봉한 아도 갈문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즉위 4년 137년과 즉위 6년인 139년말갈이 침입해 이듬해인 140년 장령에 목책을 세워 방비를 세웠다. 142년 말갈 공격 계획을 세웠으나 현실적인 문제로 좌절되었다.

146년 음력 10월 압독이 반란해 군사를 내어 토벌하고 남은 무리를 남쪽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가계편집

기타편집

그의 왕릉은 경주시 탑동 묘좌에 안장되었는데 일성왕릉은 1970년대에 사적 173호로 지정되었다. 후궁 석씨의 묘는 금서문 밖 자좌에 있다 한다.

참고편집

각주편집

  1. 삼국유사 왕력편
전 대
지마 이사금
제7대 신라 국왕
134년 - 154년
후 대
아달라 이사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