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주(張來周, 1902년 12월 22일~1928년 2월 27일)는 대한제국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이다.

장내주
출생1902년 12월 22일(1902-12-22)
대한제국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이련리
사망1928년 2월 27일(1928-02-27)(25세)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이련리
국적대한제국
거주지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이련리
본관안동(安東)
직업독립운동가
경력대한독립단 사무위원
형제3남 2녀 중 다섯째(막내아들)
배우자없음(생전 미혼 독신)
자녀없음
정당무소속
웹사이트장내주(독립유공자 공훈록)

대한제국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이련리(丹北面 二蓮里)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안동(安東)이고, (號)는 이련(二蓮)이며, 1918년 당시 중화민국 둥베이창춘 지역에 잠시 거주할 때에는 장샤오예(張小曄, 장소엽)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1920년 독립운동 군자금 등을 모아 중화민국 장쑤성 상하이 소재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각 단체와 협력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려고 하였다. 1920년 7월 30일 경상북도 대구 지역에 있는 금귀 여관(金龜 旅館)에서 김석주(金錫柱)를 만나, 각지에서 대한 독립 운동 등을 벌이고 있으니, 우국(憂國)의 선비들을 모아 단체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집하여, 중화민국 장쑤성 상하이 주재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과 각 독립 운동 단체 등과 모두 연계하여, 활기로운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1920년 8월 6일부터 1920년 8월 14일까지 여드레 동안 경상북도 대구와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의 월배면(月背面)의 진천동리(辰泉洞里)의 최상설(崔相卨)을 비롯한 8명을 권유하여 이 단체에 가입하도록 하였다. 결국 그는 이런 활동을 계속하다 붙잡혀, 같은 해 1920년 9월 1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등으로 인하여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2년 9월, 만기출감하였다.

사후 편집

1999년 3월 1일, 대한민국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