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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군묘조선 노산군의 무덤이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다. 1970년 5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노산군묘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노산군묘의 전경
종목 사적 제196호
(1970년 5월 26일 지정)
면적 3,495,236m2
시대 조선시대
소유 문화재청
위치
노산군묘 (대한민국)
노산군묘
주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영흥리 산131-1)
좌표 북위 37° 11′ 44″ 동경 128° 27′ 13″ / 북위 37.195553° 동경 128.453703°  / 37.195553; 128.453703좌표: 북위 37° 11′ 44″ 동경 128° 27′ 13″ / 북위 37.195553° 동경 128.453703°  / 37.195553; 128.453703
정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대부분 서울특별시경기도에 분포되어있는 다른 조선왕릉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강원도에 있는 조선왕릉인데 당시 노산군이 영월 청령원 유배지에서 운명하게 되어서 시신이 지금의 영월군 영월읍 지역에 안장되었기 때문에 조선왕조 최초의 강원도 소재 조선왕릉이 되었다.

목차

개요편집

노산군은 숙부 조선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상왕이 되고,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지금의 강원도 영월 청령원에 유배되었다가, 1457년 10월 24일 17세에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사망할 당시 고을 사람들은 후환이 두려워서 시신을 거두지 못했고 시신은 그대로 강물에 떠다녔는데, 호장 엄홍도가 을지산 현 위치에 암장하였다. 이에 따라 노산군묘는 추존왕의 왕릉을 제외하고, 한양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모셔야 한다는 《경국대전》의 규정을 따르지 않은 유일한 왕릉이 되었다. 조선왕조 최초로 폐위임금무덤이라 지위가 아닌 지위를 받아서 노산군묘라 지어졌다.[1]

그 후 59년이 지난 중종 11년(1516년)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묘를 찾아내 지키게 했으며, 12월 15일 처음으로 치제(致祭)가 이루어졌다. 치제를 맡은 것은 우승지 신상(申鏛)으로, 김안국과 함께 파견되어 단종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온 신상은 당시 노산군(단종)의 묘는 영월군에서 서쪽 5리쯤 떨어진 길 옆에 있었는데, 봉분 높이가 겨우 두 밖에 되지 않았고 주변에는 민간의 여러 무덤들도 가득했지만 영월 사람들은 그 무덤을 군왕의 묘라 부르며 어린아이까지 다 알고 있었다.

|제목       = 묘이야기-노산군묘
|확인날짜 = 2009-05-21
|저자       = 
|날짜       = 
|출판사    = 문화재청
|원본일자 = 
|인용       =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f>

경내에는 정자각, 단종비각, 영천, 배식단, 재실, 홍살문 등이 있으며, 울창한 노송으로 둘러싸여 있다.

능의 양식은 왕명에 따라 간단하게 조성되었다. 봉분 앞에 상석(床石)4각옥형(四角屋形)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망주석(望柱石) 2개, 문석(文石) 2개, 석수(石獸) 여러 개가 있다. 다른 능과 달리 노산군에게 충절을 한 여러 신하들을 노산군묘에 배향하기 위해 노산군묘 밑에 충신단을 설치하였다.[2]

비수도권 지역에 있는 유일한 조선왕릉이며 다른 조선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사진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조선왕조 임금의 무덤 중에서 묘 지위를 가진 곳은 서울특별시 도봉구연산군묘경기도 남양주시광해군묘 둘 뿐이다. 이전에는 노산군묘라 불렸던 장릉까지 셋이었으나 숙종 때 능 지위로 격상되면서 현재까지 연산군묘와 광해군묘만 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 두 무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에서도 제외되었다.
  2. 《글로벌세계대백과》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