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시
정민시(鄭民始, 1745년 ~ 1800년)는 조선국 홍문관 수찬 겸 필선 직책 등을 지낸 조선 영조·정조 시대 문관 관료 겸 정치인이다.
정민시
鄭民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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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홍문관의 수찬 겸 필선 | |
임기 | 1774년 2월 ~ 1776년 2월 |
군주 | 조선 영조 이금 |
섭정 | 왕세손 겸 대리청정 이산 |
이름 | |
별명 | 자 유직(幼稷)·회숙(會叔) 시호 충헌(忠獻) |
신상정보 | |
출생일 | 1745년 |
거주지 | 조선 한성부 조선 충청도 온양 |
사망일 | 1800년 (향년 56세) |
국적 | 조선 |
학력 | 1771년 생원시 합격 1773년 증광문과 병과 급제 |
정당 | 노론 시파 세력 |
본관 | 온양(溫陽) |
부모 | 정창사(양부) 정창유(생부) |
형제자매 | 형 1명, 남동생 1명 |
배우자 | 이씨 부인 |
자녀 | 정성우(아들) |
친인척 | 정광겸(친조부) 이산보(친외조부) 정수곤(친증조부) 이창중(장인) |
종교 | 유교(성리학) |
주요 전력
편집아버지 정창유(鄭昌兪)의 차남(次男)으로 출생하여 숙부 정창사(鄭昌師)에게 입양된 그는 1771년 생원시 합격하였으며 1773년 증광문과에 병과 급제하였고 조선국 홍문관 수찬 겸 필선 직책으로 본격 입직하였으며 그 훗날에는 정조 임금과 홍국영 도승지와 김상철 영의정과 서명선 좌의정 등에게 총애를 받았고 특히 그는 선혜청에서 조선국 선혜청 당상 직책으로 있으면서 미곡 및 조세의 출납 체제를 통일 및 통합 조치하는 등 선민 성향 민본주의 군주국(先民 性向 民本主義 君主國)인 조선국(朝鮮國) 백성의 문명적 부담을 덜어대는 것에 일조하였고, 특히 정조 임금을 보필하는 데에 힘써 조선국 문물 개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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