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제천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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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제천 행사(韓國의 祭天 行事)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라는 뜻으로, 나아가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천손족 고유 의례'-하는 의식이다. 대부분 농업지역에서 행해지며, 씨를 뿌린 뒤 농사의 풍요를 하늘에 기원하고 곡식을 거둔 뒤 하늘에 감사하는 행사이다. 제천 의식(祭天 儀式)이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고대 한민족기원전 3세기를 전후하여 고조선·부여·고구려·읍루(揖婁)·옥저(沃沮)·예맥(濊貊)·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의 원시 공동체 또는 부족 국가를 형성, 정착 생활을 하면서부터 상당히 발전된 문화를 형성했다.

처음 한국의 신화·전설·가요가 구체적으로 불린 자리에 제천 의식이 있었고, 서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생활 모습으로서 무속 신앙(巫俗信仰), 곧 샤머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또 수렵 경제에서 농업 경제로 넘어오면서 집단적인 부족 회의와 공동적인 제전으로 제천 의식을 열고, 생명의 근원인 창조신과 더불어 곡신(穀神)을 제사지냈다.

이때 각 부족이 모여 단체적으로 가무와 천신지기(天神地祇)를 제사 지냈으니, 비로소 고대 한민족의 예술과 문학의 맹아가 싹텄다.

고대 사회편집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명절 가운데 단오추석, 시월상달 등이 고대 사회의 제천 행사에서 유래하였다.

고조선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열린 제천 행사는 다음과 같다.

부여편집

영고(迎鼓)는 북서만주를 중심으로 활약한 고대 국가 부여에서 해마다 12월에 행하던 종교 의례로 온 나라 백성이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회의를 열어 며칠을 연이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다 한다.

부여 사람들은 상(商)나라 정월과 같은 절기에 천제를 드리는데, 온 나라 백성이 크게 모여 며칠 동안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래 부른다. 그를 일러 영고라 한다. 또한 낮밤 없이 길목에 사람이 가득 차 있으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가 날마다 그치지 않았다.

이렇듯이 영고는 부여의 가장 커다란 종교 의식이었다. 이를《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 제천의식으로 표현하였고, 다른 나라들에서는 추수기인 10월에 행하는 데 비해 부여에서만 유독 상나라 정월인 12월에 지낸 것은 부여가 상나라와 문화•혈연상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인 듯 하다. 그밖에 이 날에는 재판을 하고 죄수를 석방하였다 한다. 가무는 오락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식이었겠지만, 신분 고하 구분 없이 참석할 수 있던 것으로 보아 아직 씨족 사회 유풍이 남아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예편집

동예인들이 행한 종교 의식이자 종합 예술인 무천(舞天)은 음력 시월(10월) 높은 산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지내고 백민이 즐겁게 어우러지는 행사였다. 당나라 시기 돈황문서(敦煌文書) 中 토원책부(兎園策府) 글 주석에 따르면, 무천(舞天)은 고조선 때부터 내려온 풍습으로 음력 시월(10月)에 열린 제천 행사였다 한다.[1]

삼한편집

삼한에서는 5월이나 10월 농사 시종(始終), 곧 처음과 끝을 기하여 5월에는 수릿날, 10월에는 한가위를 열어 제사 지내고 노래와 춤을 행하였다.

마한에서는 늘 5월에 씨뿌리기를 끝마치고 나서 귀신에 제사 지냈다. 많은 사람이 떼지어 노래 부르고 춤추며 술을 마셔 종일토록 쉬지 않았다. 춤추는 모양은 수십 인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낮게 혹은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하여 그 절주(節奏)는 마치 서토(중원)의 탁무(鐸舞)와 같았다. 10월 농사일이 다 끝나고 나면 또 같은 놀이를 했다.
원문 : 馬韓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群聚歌舞飮酒 晝夜無休 其舞數十人 俱起相隨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以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上
 
진수 , 《삼국지》〈위지〉동이전 마한조(馬韓條)
그 풍속이 노래와 춤과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슬(瑟)이라는 악기가 있는데, 그 모양은 마치 축(筑)과 비슷하고, 그것을 탈 때도 (축과)마찬가지로 음곡에 따라 탄다.
원문 : 俗喜歌舞飮酒 有瑟 其相似筑 彈之亦有音曲
 
진수 , 《삼국지》〈위지〉동이전 변진조(弁辰條)

고구려편집

동맹(東盟){또는 동명(東明)이라고도 한다.}은 고구려인들이 영위한 천손(天孫) 계승 의식이며 가무악 종합 예술이다. 매해 음력 시월에 열리던 큰 명절로 하늘에 제사지내고 또 여러 사람이 가무를 즐겼다 하며, 그 습속은 부여와 비슷하였다.

고구려 백성은 노래 부르기와 춤추기를 좋아하며, 나라 안 모든 읍(邑)과 촌락에서는 밤이 되면, 많은 남녀가 서로 모여 노래하고 즐겨 논다. 10월에는 온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동맹’이라 부른다.
원문 : 其民喜 歡舞國中邑落 暮夜男女君聚 相就歌戱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진수 , 《삼국지》〈위지〉동이전 고구려조
나라 동쪽에 큰 수혈(隧穴, 襚穴)이 있어, 10월에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열고 수신(隧神, 襚神)[2]을 제사지내며, 목수(木隧, 木襚)[3]를 신좌(神座)에 모신다.
 
진수 , 《삼국지》〈위지〉동이전 고구려조

신라편집

신라에서는 팔관회를 열었다.

고려의 제천 행사편집

고려시대에는 팔관회(八關會)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이는 신라의 팔관회를 이어받은 행사로서 만물에 존재하는 신령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였다.

또한 원구제(圜丘祭)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성종(成宗)[4] 때부터 행해졌으며, 원구단(圜丘壇)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원구단(또는 환구단)은 동이 천자(東夷 天子)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장소로 부족한 문헌 여건 상 고려시대에 설치된 것만 나오는 형편이다.[5]

조선의 제천 행사편집

조선 초기인 세조(世祖) 때, 환구단을 중건해 제천의례를 올렸으나 성리학 근본주의자(명나라 간첩)들이 반대하여 7년 만에 중단되었다. 명나라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고, 제후국인 조선은 그러한 권한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중에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꾼 뒤 고종이 환구단을 다시 설치하여 천제를 올렸다.[5]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각주편집

  1. 〈한겨레 문화생활〉에 실린 인천시립박물관 윤용구 박사 관련 기사 참조. http://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5/06/009000000200506102137910.html
  2. 추모왕 어머니로 겨레 신앙 대상
  3. 나무로 만든 곡신(穀神)
  4. 재위 981년~997년
  5. <주말 문화재 탐방> 환구단, 대한제국의 시작 알린 곳 201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