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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붉은색은 둥베이(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 지방이고, 조금 연한 부분은 내몽골 자치구 동부 지역, 가장 연한 부분은 외만주이다.

만주(만주어: 만주, 중국어 간체자: 满洲, 정체자: 滿洲, 병음: Mǎnzhōu 만저우[*], 러시아어: Маньчжурия 만주리야[*], 영어: Manchuria 만추리아[*])는 동북아시아 압록강 북쪽의 광활한 지역을 일컫는다. 만주족이 발상하여 거주한 지역인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어원편집

만주라는 이름은 1635년 홍 타이지가 개명한 여진의 새로운 이름이다. 그러나 '만주'라는 명칭은 만주인이나 청나라 내에서 결코 그들의 조국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지 않았고, 그 이름 자체는 제국주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1]

일본의 학자인 미야와키 준코(宮脇淳子)에 의하면, 일본의 지리학자 다카하시 가게야스(高橋景保)가 1809년 닛폰헨카이 료쿠즈(日本辺海略図)에서 만주(满洲)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지명으로 사용하였으며, 서양인들이 그 이름을 채택한 것은 그 작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2] 마크 C. 엘리엇에 의하면, 카츠라가와 호슈의 1794년작인 호쿠사 분랴쿠(北槎聞略)는, 가츠라가와가 창안한 "아시아 젠주"와 "치큐 한큐 소주" 2개의 지도에서, 만주(满洲)가 지명으로 처음 등장한 곳이다.[3] 만주는 그 후 곤디 주조, 타카하시 가게야스, 바바 사다요시, 야마다 렌과 같은 일본인들이 만든 더 많은 지도에서 지명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지도들은 네덜란드의 독일인 필립 폰 시볼드에 의해 유럽에 전해졌다.[4]

나카미 다츠오에 의하면, 시볼드는 18세기에 최초로 지명으로 '만주'를 사용한 일본인을 통해 유럽인들에게 '만주'라는 지명을 사용하게 한 사람이었고, 만주어와 중국어는 모두 지명으로서 '만주'에 해당하는 모어로 된 용어가 없었다.[5] 빌 세웰은 지명으로서 만주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유럽인이고, 그것은 '진정한 지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6] 역사학자 가반 맥코맥은 만주라는 용어는 제국주의적이며 정확한 의미가 없고, 그것은 주로 서양인과 일본인이 사용하는 '근대적 창조물'이라는 로버트 H. G. 리의 주장에 동의했다. 만주는 일본인들이 만주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 지역과 중국의 분리를 촉진하기 위한 지명이었다.[7]

만주의 영역편집

만주는 서쪽의 요하에서 동북쪽의 흑룡강에 이르기까지, 또 남쪽으로는 압록강두만강 이북에서 북쪽으로는 시베리아에 잇닿은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이 땅의 동쪽에는 장백산맥이 솟아 있고, 동북쪽에서 흑룡강을 따라 소흥안령(小興安嶺)이 뻗어 있으며, 서쪽에는 대흥안령(大興安嶺)이 남북으로 길게 띠를 이루고 있다. 요하의 서쪽에는 산동성화북성이 이웃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한반도와, 동쪽으로는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등이 서로 맞닿아 있다. 바로 이 만주를 현재의 중국은 소위 ‘동북3성’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지린성, 랴오닝성 그리고 헤이룽장성 등 동북지역에 있는 세 개의 성을 이르는 말이다.[8]

전통적인 만주 지역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만주에 남쪽으로는 14세기 말까지 조선의 영토에 속하지 않았던 함흥에 이르는 한반도 북부 지역,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프리모르스키 지방까지 확대해야 한다. 19세기에는 흑룡강성연해주청 제국의 같은 행정구역에 속해 있었다.[9]

역사편집


만주의 역사
선사 시대
고조선 동호 예맥 숙신
요서군 요동군
요서군 요동군
전한 요서군 요동군 위만조선 흉노
한사군 부여
후한 요서군 오환 선비 읍루
요동군 고구려
현도군
창려군 공손군벌
요동군
현도군
서진 평주
모용선비 우문선비
전연 평주
전진 평주
후연 평주
북연
북위 영주 거란 고막해 실위 두막루
동위 영주 물길
북제 영주
북주 영주
유성군 말갈
연군
요서군
영주 송막도독부 요악도독부 실위도독부 안동도호부 발해 흑수도독부
오대 십국 영주 거란 발해
상경도   동란국 여진
중경도 정안국
동경도
동경로
상경로
북경로
함평로
동요국 대진국
요양행성
요동도사 노아간도지휘사사
건주 해서
(후룬 구룬)
야인
후금
만주
동삼성 러시아
외만주
중화민국
(동삼성)
소련
(극동)
만주국
소련 점령하 만주
중화민국
(중국 동북 지역)
소련
(극동)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동북 지역)
소련
(극동)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동북 지역)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러시아 극동)
한중 관계
한러 관계

만주 남쪽에는 넓고 비옥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고, 동북쪽에는 산악지대 와 함께 밀림이 뒤덮여 있다. 동북쪽의 산악 밀림지대에는 숙신, 읍루, 여진 그리고 만주족 등 퉁구스계 종족들이 일찍부터 삶의 터전을 삼아 서 차례로 흥기하였던 곳이다.[10] 백산부속말부 등은 고구려의 영역에 포함되었고, 백돌부(伯咄部)ㆍ안차골부(安車骨部)ㆍ불열부(拂涅部)ㆍ호실부(号室部) 등의 말갈족도 고구려의 간접 통치의 범위에 속하기도 했다.[11] 대흥안령을 중심으로 한 서쪽 지역에서는 선비오환(烏桓) 그리고 거란 등의 몽골계 종족들이 차례로 발흥하여 이 지역의 주인공이 되었고, 또 중국의 문명사와 역사 발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동안의 고고학적 조사 결과를 통해서 볼 때, 신석기시대 중기로 추정되는 흥륭와 및 조보구 등의 문화가 서요하 유역에서 꽃피웠다. 또한 홍산문화는 선주민들의 문화를 계승하여 소위 ‘제단과 분묘 그리고 적석총’ 등으로 대표되는 유적들을 남겨놓았다. 그 가운데는 테라코타제 인물상과 옥기 그리고 토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와 같은 문화들은 중원의 황하문명보다 훨씬 앞선 시기의 것으로 중국 학자들은 보고 있다. 사료를 통해서 보면, 이미 전국 시대에는 연나라산융 그리고 동호 등이 발해만과 만주 지역에 할거하였으며, 흉노 시대에는 묵특 선우(冒頓單于)가 동호를 공격하여 이 땅의 패자가 되었다. 흉노를 이어서 선비, 유연, 투르크, 거란, 몽골 그리고 여진 등이 차례로 이 땅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청 제국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에는 이 지역이 ‘동삼성(東三省)’으로 불렸으며,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이 땅 만주에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세웠고,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다시 ‘동북3성’이 되었다.

이 땅에서 발흥한 선비족 중 일부는 중원으로 이주하여 한족화의 길을 걸 었으며, 그것은 후에 ‘오호십육국’이라는 이민족 국가 난립의 직접적인 동기 가 되었다. 투르크 시대에는 거란과 실위에 토둔(吐屯)이 파견되었다는 기록이 있었으며, 거란족은 이 땅에서 요나라를 세웠다. 몽골족은 바로 이 역사의 무대를 가로질러 중원으로 진입하고[12] 기존의 몽골제국의 세계 통치를 강화하는 일련의 조치로 원(元)이라는 국호 제정, 중국적 제도의 도입, 한족 관료들의 등용, 북경으로의 천도 등의 중국식 통치방식을 원용했다.[13]

또 여진족은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아 후금을 세웠고 나중에는 청 제국을 건국하고, 중원을 정복했다. 이렇듯, 만주는 중원 왕조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였던 북방계 유목민들의 요람이자 국가의 기반을 다진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청 제국은 이 지역의 출입을 엄금하는 ‘봉금정책’을 펼쳐[14] 만주를 성역화, 한족들의 이주를 금지시켰으나 이 지역을 파고드는 러시아인들에 대항하는 완충지를 건설하기 위해, 19세기 중반부터 이곳의 한족 이주를 묵인했다. 그로 인해 산둥, 허베이 등 중국 북부로부터 한족 이민들이 물밀듯이 유입(19세기 말에서 2차 세계대전 시작까지 무려 2,500만명),[15]이 지역의 인구학적 구성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1920년대 말 한족 이민들의 숫자는 한 해 백만명까지 치솟았다.[16]

현재 거주하는 민족편집

한족이 제일 많다. 그 다음으로 만주족, 조선족 그 외 에벤키족, 어룬춘족, 나나이족 등의 퉁구스 제족이며, 연해주에는 우데게족도 존재한다. 러시아 내전을 피해 만주로 이주한 러시아인들도 있었으며, 이들은 중국에서 러시아족(俄罗斯族)이라는 소수민족이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Forêt, Philippe (January 2000). 《Mapping Chengde: The Qing Landscape Enterprise》. University of Hawaii Press. 16쪽. ISBN 978-0-8248-2293-4. 24 April 2016에 보존된 문서. 
  2. Pozzi, A., Janhunen, J.A., Weiers, M. (eds) Tumen jalafun jecen akū. Studies in Honor of Giovanni Stary. Tunguso-Sibirica 20. Wiesbaden, 2006, pp. 159, 167.
  3. Elliott, Mark C., "The Limits of Tartary: Manchuria in Imperial and National Geographies",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59 (No. 3), p.626
  4. Elliott, Mark C., "The Limits of Tartary: Manchuria in Imperial and National Geographies",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59 (No. 3), p.628
  5. Wolff, David; Steinberg, John W., eds, The Russo-Japanese War in Global Perspective: World War Zero, Volume 2, Volume 2 of The Russo-Japanese War in Global Perspective (illustrated ed.), BRILL, 2007, p.514.
  6. Sewell, Bill(2003), Edgington, David W, (ed.), Japan at the Millennium: Joining Past and Future (illustrated ed.), UBC Press, p.114.
  7. McCormack, Gavan (1977). Chang Tso-lin in Northeast China, 1911-1928: China, Japan, and the Manchurian Idea (illustrated ed.). Stanford University Press, p.4.
  8. 윤은숙; 연규동; 장준희; 최준; 김선자; 김정열; 장석호; 박소현; 김주용. 《만주 이야기》. 동북아역사재단. 4쪽. ISBN 978-89-6187-305-5. 
  9. Crossley, Pemela Kyle. 《만주족의 역사》. 돌베게. 45쪽. ISBN 9788971995310. 
  10. 윤은숙; 연규동; 장준희; 최준; 김선자; 김정열; 장석호; 박소현; 김주용. 《만주 이야기》. 동북아역사재단. 4쪽. ISBN 978-89-6187-305-5. 
  11. 정병준; 권은주; 이효형; 바이건싱; 윤영인; 김위현; 왕위랑. 《중국학계의 북방민족·국가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51~52쪽. ISBN 9788961870566. 
  12. 윤은숙; 연규동; 장준희; 최준; 김선자; 김정열; 장석호; 박소현; 김주용. 《만주 이야기》. 동북아역사재단. 4~6쪽. ISBN 978-89-6187-305-5. 
  13. 윤영인; 이용규; 김선민; Allsen, Thomas; Biran, Michal; 테무르; Crossley, Pamela Kyle; 이시바시 다카오. 《외국학계의 정복왕조 연구 시각과 최근 동향》. 동북아역사재단. 76쪽. ISBN 9788961871976. 
  14. 윤은숙; 연규동; 장준희; 최준; 김선자; 김정열; 장석호; 박소현; 김주용. 《만주 이야기》. 동북아역사재단. 6쪽. ISBN 978-89-6187-305-5. 
  15. Thomas R. Gottschang and Diana Lary, 《Swallows and Settlers : the Greatflow North China to Manchuria》The Center for Chinese Studies, the University of Michigan (2000) 2쪽, 180쪽
  16. 한석정, 노기식 저,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소명출판(2008) 6쪽 ISBN 978-89-5626-3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