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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임오군란의 결과 조선과 청 사이에서 체결된 불평등조약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은 1882년 11월 27일(음력 10월 17일) 조선이 맺은 통상장정이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과정 속에서 체결되었다. 본래 명칭은 "중국조선상민수륙무역장정"이며,[1] 조선을 청의 속방으로 명기한 불평등 조약이다. 조선에서의 청 상인의 내륙 무역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아 거류지 무역의 균열을 초래하였다. 이 장정으로 청 상인의 경제적 침투가 본격화됨으로써 조선에서의 일본 상인과 청 상인간의 경쟁이 가속되었다.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이 경복궁에 침입하고, 또한 일본군 천여 명은 청의 총리공관과 용산의 분관, 한성전보청국(漢城電報總局)을 공략하면서 7월 25일에는 조선과 청간의 통상장정이 폐기되었고, 이에 따라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근대 식민지적 침탈 행위도 불식되었다.[2]

조약의 내용편집

조선과 청은 서로간의 관계를 이용하면서 조선은 사대사행(事大使行)의 폐기 등을 요구하며 만국공법적인 평등관계로 대청관계를 변화시키려 했고, 청나라는 종래의 조공관계에 가탁하여 근대적인 속국으로 대조선관계를 변화시키고자함에 이 과정에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체결되었다. 이때 리홍장은 전통적 조공관계에서 ‘속방’ 개념을 근대 만국공법에서의 ‘속국’개념으로 등치시키는 방법으로 양국관계를 변질시키려 했다.[3] 장정의 전문에서 종속관계를 명시하고, 조선국왕과 청의 북양대신을 동급으로 규정하며, 영사재판권을 초월하는 재판관할권을 청나라에게 부여하고 있다.[4] 조약의 본문은 총 8개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을 요약[5]하면 다음과 같다.

제1조에서는 청의 상무위원을 서울에, 조선 관원을 톈진에 파견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청의 북양대신(北洋大臣)과 조선의 국왕을 동등한 위치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청이 임오군란을 진압한 후 조선에 내정간섭을 하는 가운데 맺어진 불평등조약임을 반영한다.

제2조에서는 청의 상무위원이 조선 영토 내의 청국민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조선에서 청나라의 치외법권을 인정한 것으로, 역시 불평등 조약의 요소이다.

제3조는 선박의 조난이 있을 시 구호할 것, 그리고 조선의 평안도와 황해도 연안과 청의 산둥(山東)과 평톈(奉天) 연안에서 양국 어선의 어업활동을 허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제4조는 서울의 양화진과 베이징에서 개잔무역을 허락하되, 내지채판은 금할 것을 규정한다. 단, 내지채판이 필요할 경우 지방관의 허가서를 얻도록 하고 있다.

제5조에서는 조선과 청 사이의 전통적 무역 방식이었던 책문과 의주 사이, 훈춘과 회령 사이의 개시를 존속시키도록 하고 있다.

제6조에서는 조선 상인이 청에 홍삼을 수출하는 것을 허가하고, 관세는 가격의 100분의 15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7조는 청 선박의 항로 개설권 및 청 병선의 조선 연해 내왕, 정박권을 부여하고 있다.

제8조는 장정의 개정에 대한 것으로, 장정을 수정하고자 한다면 청의 북양대신과 조선 국왕이 의논하도록 하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구선희, "19세기 후반 조선사회와 전통적 조공관계의 성격", 《史學硏究 第80號》, 한국사학회, 2005.12, 184.
  3. 구선희, "19세기 후반 조선사회와 전통적 조공관계의 성격", 《史學硏究 第80號》, 한국사학회, 2005.12, 158.
  4. 이재석, "한청통상조약 연구", 《대한정치학보》 (2), 대한정치학회, 181-182.
  5. 원문은 《고종실록》고종 19년 10월 17일 두 번째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