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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충(趙沖, 1171년 ~1220년)은 고려의 군인·문신·정치가이다. 본관은 횡성(橫城), 는 담약(湛若)이다.

목차

생애편집

1190년(명종 20) 약관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內侍)가 되고 희종 때 국자대사성(國子大司成)·한림학사를 지내고 1216년(고종 3)에 추밀부사·한림학사·승지·상장군이 되었다. 이때 거란족이 서해도(西海道 : 황해도)에 침입하자 부원수로 출정하고 다음해 정방보(鄭邦輔)와 함께 염주(鹽州)에 출정했다가 패하여 한때 파면되었으나 다시 서북면 병마사로 인주(麟州) 부근에서 거란족을 무찔렀다.

1218년 수사공 상서좌복야가 되었으며, 다시 서북면 원수(元帥)가 되어 남은 거란족을 진압, 이듬해 몽골·동진(東眞)의 연합군과 함께 거란 잔적의 근거인 강동성(江東城)을 깨뜨리고 완전히 평정하였다. 조충은 이 싸움에서 얻은 포로들을 각 도의 주현에 나누어 보내어 소위 거란장(契丹場 : 거란인 포로수용소)을 이루게 하였다. 개선하여 정당문학·판례부사가 되고 이어 수태위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수국사(守太尉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修國史)를 겸직하였다. 사후에 개부의동삼사 문하시중(開府儀同三司門下侍仲)에 추증되고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가계편집

조충이 등장한 작품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씨족원류』
  2. 『고려사』에 기록이 딱 1건 보이는데, 1243년 6월에 우승선(右承宣)으로서 시·부로 한경(韓璟) 등 20명, 십운시로 60명, 명경으로 2명을 선발했다는 「선거지」의 기록이다.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몽골과의 항쟁〉"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