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방부인

죽방부인(竹房夫人. 생몰년 미상)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왕후(王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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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부인
竹房夫人
지위
신라의 왕후
재위 미상
대관식 죽방부인(竹房夫人)
전임 미상
후임 미상
이름
미상
이칭 미상
별호 미상
묘호 미상
시호 미상
신상정보
출생일 생년 미상
출생지 미상
사망일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매장지 미상
왕조 신라
가문 미상
부친 미상
모친 미상
배우자 경순왕
자녀 태자, 김덕지
종교 미상

생애편집

죽방부인신라 제56대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의 왕후로, 정사 《삼국사기》에는 왕후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당시 신라 왕실의 관례에 따르면 그녀는 신라 왕족 출신이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1]

고려사(高麗史)》에 931년(태조 14) 고려 태조신라를 방문하여 여름 5월 경순왕과 그의 태후 죽방부인(竹房夫人)을 비롯한 상국 김유렴 등 신하들에게 물품을 차등 있게 지급했다는 기록만 있다.[2]

경순왕 모후설편집

일설에 죽방부인(竹房夫人)을 경순왕의 모후(母后. 왕의 어머니)라 주장하나, 이는 《고려사》를 오역(誤譯)함에 따라 비롯된 결과라 할 것이다.

고려사》는 신라 멸망 후 1451년 조선 문종 1년에 완성된 고려시대 역사서로, 고려 입장에서 신라 경순왕을 선왕으로 보고 그의 왕비인 죽방부인을 선왕 경순왕의 태후(太后)라 기록하였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도 경순왕 모후(母后)는 계아태후(桂娥太后)에 추존된 헌강왕(憲康王)의 딸 김씨(金氏)라 하였다.

자녀관계편집

삼국사기》·《고려사》·《동국여지승람》 등에 죽방부인은 경순왕과 사이에 두 왕자를 두었는데, 이들 왕자들의 이름은 사서에 전하지 않으며, 단지 왕자라 할 뿐, 『장자』니 『태자』니 하는 말은 없다.

이들 왕자들은 935년 10월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에 바칠 것을 논하는 자리에서 양국(讓國)의 불가함을 극력 간(諫)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통곡을 하며 개골산(현재의 금강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후 태자는 바위 아래에 집을 짓고, 삼베옷을 입고 풀뿌리를 캐어 먹다가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후대에 마의를 입고 살았다 하여 마의태자라 불렀다.[3]

둘째 왕자 김덕지화엄종에 귀의하여 중이 되어 법명을 범공(梵空)이라 하고 법수사와 해인사에 드나들며 도(道)를 닦으며 망국의 한(恨)을 달랬는데 승명이 범공(梵空)이라 한다.[4] 이들 후손들은 울산 김씨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5][6]

《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도 경순왕의 첫째 왕자를 태자라 하고, 둘째 왕자를 범공 김덕지라 하였다. 신라가 망할 때 다른 귀족들은 너나없이 고려 태조가 주는 벼슬과 녹봉을 받는 등 여전히 호사를 누렸는데, 이들 왕자들은 마지막까지 충절을 지킨 인물들로 꼽힌다.

경순왕고려에 항복 후 딸을 고려 경종에게 출가시켰는데 그녀가 헌숙왕후 김씨이다.[7] 그녀의 생졸 및 모후 등에 대해서는 밝혀진바 없으며, 고려 경종고려 태조 왕건의 손자로 955년 태어나 975년에 왕위 올랐는바, 배우자인 그녀도 955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8]

가족관계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일설에 죽산 박씨 예부시랑 박광우(朴光佑)의 딸이라 한다. 또 신덕왕 박경휘(朴景暉)의 딸이라 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출처가 없어 명확하지 않다.
  2. 《고려사》 권2 태조14년 “夏五月 丁丑 王遺羅王 太后竹房夫人, 與相國裕廉, 匝干禮文, 波珍粲策宮·尹儒, 韓粲策直·昕直·義卿·讓餘·寬封·含宜·熙吉等, 物有差.”(정축일 왕이 신라국왕과 태후 죽방부인, 상국 유렴과 잡간 예문 및 파진찬 책궁·윤유, 한찬 책직·흔직·의경·양여·관봉·함의·희길 등에게 물품을 차등 있게 주었다.)
  3. 마의태자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1926년 5월부터 1927년 1월까지 이광수가 『동아일보』 지면에 연재했던 신문소설을 통해서였다.
  4.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김부대왕(金傅大王)
  5. 1561년 고암 양자징 찬한 『하서 김인후 가장』에 시조 김덕지는 신라 경순왕의 왕자로 학성부원군에 봉해졌다고 하였다.
  6. 1682년 우암 송시열 찬한 『하서 김인후 신도비명』에 시조 김덕지경순왕의 별자(別子)로 학성부원군에 봉해져 울산김씨 시조가 되었는데 학성은 울산의 별호라 한다.
  7.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헌숙왕후〉항목[[1]]
  8. 1814년(순조 14) 경주 김씨 일문들이 세운 『신라경순왕전비』에 경순왕 전비 죽방부인 소생이라 하나, 시대상으로 보아 낙랑공주 왕씨 소생 중 한 명일 가능성이 짙으며 따라서 고려 태조의 외손녀일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9. 《삼국사기》
  10. 《삼국유사》·《증보문헌비고》
  11. 《삼국사기》
  12. 《고려사》・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헌숙왕후〉항목[[2]]
  13. 《삼국사기》 성무부인 소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