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해인사(海印寺)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중턱에 있는 사찰이다.
해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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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사 대적광전 | |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
건립년대 | 남북국시대 802년(통일신라 애왕 3년) |
창건자 | 순응(順應), 이정(利貞) |
별칭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전 소장 사찰 |
위치 | |
소재지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
좌표 | 북위 35° 48′ 4″ 동경 128° 5′ 54″ / 북위 35.80111° 동경 128.09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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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명* |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the Depositories for the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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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구분 | 세계문화유산 |
기준 | Ⅳ, VI |
지정번호 | 737 |
지역** | 아시아·태평양 |
지정 역사 | |
1995년 (19차 정부간위원회) | |
웹사이트 | 유네스크와 유산 - 해인사 장경판 |
* 세계유산목록에 따른 정식명칭. ** 유네스코에 의해 구분된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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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명* | Printing woodblocks of the Tripitaka Koreana and miscellaneous Buddhist scriptu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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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구분 | 세계기록유산 |
지역** | 아시아·태평양 |
지정 역사 | |
2007년 (31차 정부간위원회) | |
웹사이트 | 유네스크와 유산 -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高麗大藏經板-諸經板) |
* 세계유산목록에 따른 정식명칭. ** 유네스코에 의해 구분된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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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 사적 제504호 (2009년 12월 21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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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56,469m2 |
소유 | 해인사 |
정보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
고려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이 유명하다. 중심 전각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이며, 비로자나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150여 개의 소속사찰을 거느리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2개나 있다. 세계기록유산은 팔만대장경이고, 세계문화유산은 장경판전이다.
사람과의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통일신라의 진성여왕과 각관 위홍, 6.25전쟁의 김영환 대령, 성철스님과 혜암스님, 16대 노무현 대통령과의 일화가 남아있다.
2023년 5월 4일부터 무료입장이 가능해졌다.[1]
삼보사찰(三寶寺刹)편집
천수경의 <발원이귀명례삼보>에서,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교의 3가지 보물인 삼보는 부처님, 부처님의 법, 스님이다. 우리나의 삼보사찰도 각각 삼보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해인사는 바로 법보사찰이다.[2]
역사편집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최치원이 지은 「신라 가야산 해인사 선안주원벽기」와 고려 태조 26년에 지어진 「가야산해인사고적」에 해인사의 창건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기록들이 1874년(조선 고종 11년)에 판각된 해인사 종합 문헌인 「가야산 해인사고적」에 실려있다.[3]
남북국시대편집
- 802년(통일신라 애장왕 3년) :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왕비의 병을 낫게 해주어서, 애장왕의 도움으로 창건을 시작했다.[4]
- 865년(통일신라 경문왕 5년) : 이정에 이어 주지가 된 결언대덕(決言大德)이 해인사를 이어나갔다.[5]
- 통일신라 진성여왕 : 진성여왕은 삼촌 위홍이 사망하자, 그를 혜성대왕(惠成大王)으로 추봉했다. 해인사 이름을 혜성대왕원당으로 바꾸고[6], 원당을 지어 추모했다. 여왕은 해인사 주위로 거처를 옮겨 생을 마감했다.[7]
후삼국시대편집
- 920년대 말 :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과 해인사 인근에서 전투를 하였다. 왕건이 당시 해인사 주지인 희랑대사의 도움으로 청했고[8], 이에 희랑대사가 승병을 보내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9]
- 935년 : 경순왕의 막내아들 김덕지(金德摯) 왕자가 법명을 범공(梵空)이라하고 출가하였다. 신라가 망하자 경순왕의 어진을 제작하여 해인사에 봉안하였고, 해인사에서 입적하였다.[10]
고려시대편집
조선시대편집
이후 해인사는 5차례가 넘는 화재로 인해 여러 번 중창되었다. 현재의 전각은 대부분 조선 말기 때의 것이며, 3층 석탑·석등 등이 현존한다.
- 1393년(조선 태조 2년) : 정중탑을 중영(重營)하고 해인사를 중창하였다. 고려대장경판이 해인사에 봉안 되었다.[12]
- 1481년( 조선 성종 12년) : 이후 8년간 중건하였다.
대한민국편집
인연있는 인물들편집
진성여왕과 각간 위홍편집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진성여왕은 신라의 마지막 여왕이다. 삼촌인 위홍과 사랑을 나누었고, 위홍이 죽자 해인사에 원당을 만들어 추모했다. 이 원당이 지금의 원당암이다.[14]
쌍둥이 비로자나불편집
예전에는 해인사에 법보전과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 학계와 불교계에서는 표현 양식으로 추론하여 조선시대 불상으로 여겨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워낙 중요한 문화재가 많으니).
그러다 2005년 7월에 법보전 비로자나불 안에서 남북국시대(통일신라)의 글씨가 나왔다. 불상 시료를 미국까지 보내 조사한 결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불상임이 밝혀졌다.[15]
비로자나불 안의 글씨 내용은 "대각간의 등신불과 오른편에 부인의 등신불을 2위 만드노니~"였다. 대각간은 대구화상와 함께 삼대목을 편찬한 각관 위홍이고, 대간각의 부인은 진성여왕으로 현재 추정하고 있다.[16]
지금은 대비로전에 쌍둥이 비로자나불이 함께 모셔져 있다.
김영환 대령편집
해인사는 광복 후 한국전쟁 때 위기를 맞게 된다. 1951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대한민국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퇴각하지 못하고 남은 1천여 명의 북한군 잔당들이 해인사를 중심으로 게릴라 전을 전개했다. 이에 UN군에서는 폭격기 4대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공군 편대장이었던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과 해인사를 지키려고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해인사에 적군들이 숨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명령에 불복 하고 해인사 안에 숨어 있는 적군들에게 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써 해인사는 폭격당할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김영환은 그 공으로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했다. 2002년 6월 해인사 삼선암 입구에 그를 기리는 공적비를 세웠다.[17]
성철스님과 혜암스님편집
성철스님편집
대구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에서 10년 동안 눕지 않고 앉아서만 수행을 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였다. 조계종에서 종정으로 모실려고 했지만, 81번을 사양했다.
이후, 6대와 7대 종정을 역임하면서 처음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냈다. 절을 3천배 한 사람에게만 잠깐 접견을 허용했을 따름이다.[18]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로 유명하다.[19]
혜암스님편집
해인총림 방장,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등을 거쳐 조계종 제10대 종정을 지냈다.
화두수행을 강조했고,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말로 유명하다.[20]
노무현 대통령편집
대통령 후보 시절편집
- 2002년 10월 1일 :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합천 해인사에서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으로부터 보살계와 "대덕화(大德花)"라는 법명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와 같은 법명이었다.[21]
대통령 재임 시기편집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3번에 걸쳐 해인사를 방문했다. 대통령으로서는 최다 방문이었다.
- 2003년 12월 22일 : 노무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해인사를 방문했다.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과 총무원장 법장스님을 만나, 사패산 터널 공약을 못 지키게 된 것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22]
- 2005년 8월 30일 : 경남 사천에서 열린 T-50 골든이글 양산 1호기 출고식에 참석하고, 해인사를 들렀다. 쌍둥이 비로자나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때문이었다. 부처님에게 "비행기가 사고 없이 잘 날아다니고 잘 팔아달라."고 기도를 했다. 대비로전 건립에 30억 국고지원을 즉석에서 약속했다.[23]
- 2007년 11월 24일 : 노무현 대통령은 해인사 대비로전(大毘盧殿) 낙성 대법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24]
대통령 퇴임 이후편집
주요 볼거리편집
- 대적광전 :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전각으로 해인사의 주된 전각이다.
- 장경판전 :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이다.
- 대비로전 : 쌍둥이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다.
- 국사단 : 산신과 토지신을 모신 곳이다.[26]
- 구광루
- 해인범종
문화재편집
해인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20여 점이나 된다.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해서, 세계문화유산이자 제52호인 장경판전이 있다.
또한 국보 제206호로 지정된 고려목판까지 국보가 3점이며, 보물이 20여 점에 사적과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자료 등이 각 1점씩 있다. 다음은 해인사가 보유한 문화재 목록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편집
- 세계기록유산(팔만대장경) :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동양 각국의 대장경과 비교할 때 오탈자가 거의 없다. 글꼴이 한 사람이 새긴 듯이 일정해서 자체가 예술품처럼 느껴지는 고려 재조대장경이다.
- 세계문화유산(장경판전) : 해인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과학적 설계는 지금도 찬탄을 자아낸다.
국보편집
- 국보 제32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 국보 제52호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 국보 제206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 국보 제333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보물편집
- 보물 제128호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 보물 제129호 합천 월광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 보물 제222호 합천 치인리 마애여래입상
- 보물 제264호 합천 해인사 석조여래입상
- 보물 제518호 합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 보물 제734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 보물 제1208-2호 춘추경좌씨전구해 권60~70
- 보물 제1242호 합천 해인사 길상탑
- 보물 제1253호 해인사 동종
- 보물 제1273호 해인사 영산회상도
- 보물 제1300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
- 보물 제1301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
- 보물 제1697호 합천 해인사 감로왕도
- 보물 제1777호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 보물 제1778호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
- 보물 제1779호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 보물 제1780호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
- 보물 제1799호 합천 해인사 지장시왕도
- 보물 제1806호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
- 보물 제2072호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 보물 제2075호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복장전적-제다라니
기타편집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31호 합천 해인사 존상도 : 조선 세조의 진영으로 전해지고 있다.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86호 합천 해인사 삼화상 진영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01호 합천 해인사 백련암 목조여래좌상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02호 합천 해인사 백련암 풍계집 목판
- 천연기념물 제541호 합천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
- 중요민속문화재 제3호 광해군 내외 및 상궁 옷
- 명승 제62호 가야산 해인사 일원
체험 및 시설편집
템플스테이편집
해인사에서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각주편집
- ↑ 문화재청, 문화재청 (2023년 5월 1일). “4일부터 조계종 산하 사찰 문화재 관람료 면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5월 2일에 확인함.
오는 4일부터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사찰에 입장할 때 징수하던 문화재 관람료가 면제된다.
- ↑ “삼보사찰 (三寶寺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중앙학연구.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해인사는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라고 해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고 한다.
- ↑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 연혁”. 《해인사》. 해인사.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해인사에 관한 종합적인 문헌으로 「가야산 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이 있는데, 이는 해인사의 연기(緣起), 실화(失火)와 중창의 역사, 대장경의 인경(印經)에 관한 여러 사적과 문헌들을 모아 고종 11년(1874)에 판각한 것이다. 이 「가야산해인사고적」에 수록된 문헌가운데 똑같은 이름의 「가야산해인사고적」(고려 태조 26년에 이루어진 것)과 신라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璧記)」의 두 기록은 해인사의 창건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주고 있다.
-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 ↑ “결언대덕”. 《디지털함양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결언대덕(決言大德)은 이정(利貞)의 뒤를 이어 해인사(海印寺) 주지가 되어
- ↑ 김, 상현 (2006년 8월 14일). “해인사는 寺格을 지켜야”. 《법보신문》. ㈜법보신문사.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혜성대왕(惠成大王)으로 추봉했다. 그리고 해인사를 원당삼아 위홍의 명복을 빌었음은 ‘혜성대왕원당’
- ↑ 노, 형석 (2022년 10월 14일). “9세기 왕위도 버린 로맨스 ‘단짝 불상’…17년 만에 국보”. 《한겨레》. 한겨레.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먼저 위홍이 세상을 떠나자 여왕은 가야산 해인사에 추모 원당을 지었다. 나중엔 아예 왕위를 내려놓고 절 부근에 칩거하며 기리다가 결국 거기서 삶을 마쳤다
- ↑ 강, 혜란 (2020년 10월 21일). “'태조 왕건 스승' 희랑대사 조각상, 국보로 승격”. 《중앙일보》. 중앙일보.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920년대 말엽 후백제군과의 해인사 인근 전투 때 고전을 면치못하자 해인사 주지인 희랑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 ↑ 임, 석훈 (2020년 10월 22일). “[만파식적] 희랑대사”. 《서울경제》. 서울경제신문.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이를 수락한 대사가 승병을 보내 후백제군을 격파하는 데 일조했다.
- ↑ 김, 상홍 (2019년 7월 14일). “합천 해인사, 경순왕 어진 봉안식 거행”. 《경남일보》. 경남일보.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경순왕 어진은 그의 아들인 범공선사가 경순왕이 고려에 손국 하자, 935년 경순왕의 어진을 제작하여 가야산 법수사로 입산·출가하여 어진을 해인사에 최초로 봉안했다. 범공선사는 신라 경순왕과 죽방부인의 계자로 본명은 황(湟)이다. 출가 전 부인 옥저하씨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고, 법수사와 해인사를 왕래·주석하시다 해인사에서 열반(涅槃)에 드셨다고 전한다.
- ↑ 임, 석훈 (2020년 10월 22일). “[만파식적] 희랑대사”. 《서울경제》. 서울경제신문.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이를 계기로 왕건은 해인사 증축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 중요문서를 이곳에 보관했다.
- ↑ “법조종찰 가야산 해인사 - 연”. 《해인사》. 해인사.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조 2년(1393)에 정중탑을 중영(重營)하고 해인사는 여러 차례 중수를 한다. 이는 조선 왕실이 해인사에 힘을 기울인 결과라 생각된다. 특히 태조 때 고려대장경판이 해인사에 봉안 되었다.
- ↑ 이, 상언; 박, 지원; 박, 재완 (2009년 7월 10일). “전국 사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봉행”. 《현대불교》. 현대불교.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 ↑ 배, 혜숙 (2020년 11월 12일). “[배혜숙의 한국100탑(32)]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경상일보》. 경상일.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위홍이 죽자 여왕은 임을 위한 극락왕생을 비는 원당암을 조성하였다.
- ↑ 노, 형석 (2022년 10월 14일). “9세기 왕위도 버린 로맨스 ‘단짝 불상’…17년 만에 국보”. 《한겨례》. 한겨례.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명문의 연대대로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몸체의 목재 연대는 772~978년(95.4% 유의확률),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몸체의 목재 연대는 706~944년(95.4% 유의확률)으로 확인됐다. 이에 문화재위원 등 전문가들이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리면서 9월 초 문화재청이 국보 지정 예고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 ↑ 박, 익순 (2005년 7월 12일).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상은 대적광전불상과 쌍둥이”.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대각간의 등신불과 오른편에 부인의 등신불을 2위 만드노니’~한편 해인사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상과 법보전 비로자나불상이 쌍둥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명문에 나타난 대각간과 부인을 각간 위홍과 진성여왕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힘을 얻게 됐다.
- ↑ 김, 봉래 (2002년 6월 17일). “김영환 장군 공적비 제막식 봉행”. 《BBS NEWS》. BBS불교방송(재).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지난 51년 한국전쟁 중 상부의 폭격명령을 따르지 않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킨 고 김영환 장군의 공적비 제막식이 오늘 오후 합천 해인사에서 봉행됐습니다.~~김영환 장군의 공적비가 해인사 삼선암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 李, 憲益 (1993년 11월 4일). “입적한 성철스님-10년간 눕지않고 무언수행.5개국어 능통”. 《중앙일보》. 중앙일보.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특히 꼿꼿이 앉은채 잠을 자고 입도 열지않는다는 10년간의「長坐不臥」默言수행은 한국불교의 영원한 전설로 남을 것같다.~그는 81년 수차례의 고사끝에 宗正이 되기전까지는 일체의 모습을 매스컴에 드러내지않았다. 다만 부처에 대한 신심의 증표로 3천배의 절을 한 사람에게는잠깐의 접견을 허용했다.
- ↑ 목, 정배. “성철 (性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중앙학연구원.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1967년에는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였다. 방장 취임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을 설하였는데, 이것은 불교의 중심 사상인 중도사상을 체계화한 것이다. 1981년조계종 제7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추대식에 참여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발표하였다.
- ↑ 김, 종찬 (2013년 2월 21일).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스님의 벼락같은 화두”.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스님의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말씀을 화두 삼아 무아를 체험할 수 있을 정도로 온몸을 다 바친다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고 삶의 행복이 아닐까”라면서 “그 일이 자기를 위하고 남을 위한 일이라면 복덕(福德)까지 쌓는 일이니 얼마나 더없는 행복이고 정진인가”라고 반문한다. 해인총림 방장,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등을 거쳐 조계종 제10대 종정에 추대됐던 혜암스님은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것이 나를 알고 인생을 아는 데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 ↑ 청주일보, 청주일보 (2018년 5월 23일). “[사 설] 노무현 대통령 서거 9주기”. 《청주일보》. 청주일보.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아내 권양숙은 2002년 10월 1일 당시 대선을 앞두고 합천 해인사에 머물고 있는 조계종 종정인 법전 스님으로부터 보살계와 '대덕화'(大德花)라는 법명을 받았다. '대덕화'는 대한민국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의 아내 육영수가 받은 법명과 같은 것이었다.
- ↑ 청주일보, 청주일보 (2018년 5월 23일). “[사 설] 노무현 대통령 서거 9주기”. 《청주일보》. 청주일보.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2003년 12월 22일에 노무현은 아내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불시 방문해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총무원장 법장스님과 환담한 뒤 오찬을 함께 했다. 사패산 터널 문제에 대한 공약을 지키게 못하게 되었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 ↑ 청주일보, 청주일보 (2018년 5월 23일). “[사 설] 노무현 대통령 서거 9주기”. 《청주일보》. 청주일보.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노무현은 2005년 8월 30일에 T-50 골든이글 양산 1호기 출고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 목조 불상인 쌍둥이 비로자나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해인사에 들러 비행기 사고 없이 잘 날아다니고 잘 팔아 달라고 부처님께 기도를 했다. 취임 이래 2번째로 해인사를 방문했고 해인사 대비로전 건립에 30여억 원의 국고 지원을 즉석에서 약속했다.
- ↑ 청주일보, 청주일보 (2018년 5월 23일). “[사 설] 노무현 대통령 서거 9주기”. 《청주일보》. 청주일보.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2007년 11월 24일 해인사 대비로전(大毘盧殿) 낙성 대법회에 참석하면서 축사를 하였는데 3번째로 해인사를 방문했다.
- ↑ 김해 특별취재팀, 김해 특별취재팀 (2009년 5월 25일). “[노 前대통령 서거] 해인사스님 300여명 조문”. 《서울신문》. 서울신문.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해인사 주지 선각 스님 등 300여명의 스님들은 24일 오전 9시20분쯤 자동차 통행이 통제된 봉하마을 입구부터 1㎞쯤 줄을 지어 걸어서 빈소에 입장했다.
- ↑ 정, 왕부 (2016년 7월 10일). “해인사 국사단”. 《양파TV》. 양파티브이뉴스. 2023년 5월 9일에 확인함.
국사단은 국사대신(局司大神)을 모신 단(壇)으로서 국사대신은 도량이 위치한 산국(山局)을 관장하는[司] 산신과 토지가람신(土地伽藍神)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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