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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국번

중국 청대 말기의 남자 정치가, 학자
증국번

증국번(중국어 간체자: 曾国藩, 정체자: 曾國藩, 병음: Zēng Guófān 쩡궈판[*], 1811년 11월 26일 ~ 1872년 3월 12일)은 중국 대 말기의 정치가·학자이다. 본명은 자성(子城)이고, 자는 백함(伯函), 호는 척생(滌生)이다. 척생(중국어: 滌生, 병음: Díshēng 디성[*])이라고도 불렸다

청(淸)나라 때의 대신(大臣)이자 군사가, 문학가이다.

후난 성 상샹 현의 농가에서 출생했다. 1838년 진사(進士)에 합격하여 중앙 관청의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851년 태평천국의 난이 시작되자 향리에 돌아가 농민을 조직하여 상군(湘軍)이라는 향용(鄕勇)을 편성하여 태평천국 진압에 주동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태평천국염군(捻軍) 진압의 최고사령관으로서 활약한 공적으로 청말(淸末) 최대의 정치가가 되었다. 유학(儒學)의 연구에도 당대 굴지의 인물로서 송학(宋學)을 중심으로 한 유교이념에 의해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데 몰두한 보수주의자이며, 또 정치적으로도 외국 근대 공업의 도입에 주력한 실리주의자였다.

태평천국군을 진압한 후 부하들에게 거사하여 황제에 즉위하라는 청을 수 없이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끝까지 청조의 충신으로 남았다.

증자(曾子; 증삼曾參)의 70세손으로 도광(道光) 18년(1838)에 진사(進士) 출신이다. 벼슬은 한림원서길사(翰林院庶吉士), 한림원검토(翰林院檢討), 문연각교리(文淵閣校理), 시강학사(侍講學士), 내각학사(內閣學士), 예부시랑(禮部侍郎), 예부우시랑(禮部右侍郎),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郎), 양강총독(兩江總督), 직례총독(直隸總督), 무영전대학사(武英殿大學士) 등을 역임했고, 의용후(毅勇侯)로 봉해졌다.

(책)저서로 《치학논도지경(治學論道之經)》, 《지가교자지술(持家教子之術)》, 《빙감(冰鑒)》, 《증국번가서(曾國藩家書)》 등이 있다.

증국번의 <오구잠언> # 뜻을 세워라. # 공경한 태도를 지켜라. # 고요함을 유지하라. # 말을 삼가라. # 향상됨이 있어야 한다.

부귀로운 사람은 이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1]편집

#성공적인 인생은 굳센의지 에 달려있다. #일을 이루려면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교만은 최대의 적이다.

보통 증국번은 근검을 주장했던 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삼고 도가사상을 활용하였다고 하지만, 실은 1858년 이전엔 묵자를 중심으로 하고 법가사상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1858년 이후부터 비로소 부드러움과 순리를 따르는 태도로 변했다.

(출처: 인생조종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