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왕 3년(기원전 204년) 집순(執盾)으로서 진양(晉陽)에서 처음으로 고제를 따랐고, 이후 연오(連敖)가 되어 항우를 쳤다. 한왕이 패주할 때 말을 타고 돌진하여 서초의 군세를 저지하였고, 고제는 증하를 기왕(祁王)이라고 불렀다.[1]
이후 팽성에서 싸우고 항우를 베었으며, 험지에서 힘써 싸운 공로로 기후(祁侯)에 봉해지고 식읍 1,400호를 받았다.
문제 12년(기원전 168년)에 죽어 시호를 곡(穀)이라 하였고, 아들 증호가 작위를 이었다.
- ↑ 무슨 의미로 '기왕'이라고 부른 것인지 알 수 없다. 안사고는 유방이 증하를 고맙게 여겨, 기나라 왕에 봉해주겠다는 뜻으로 부른 것으로 추측하였다.
선대 (첫 봉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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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기후 기원전 201년 6월 정해일 ~ 기원전 1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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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아들 기경후 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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