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執事)는 일반적으로 사무를 관할하는자를 의미하며, 고위 인물의 집이나 사찰에서 가사 · 사무를 도맡는 사람을 가리킨다.

기독교에서의 집사편집

헬라어 디아코노스(부제)를 번역한 말로서 보조자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주는 봉사자를 말했으며, 교회회계 같은 사무를 보았다. 나중에는 감독의 보조자가 되었다.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직분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는 사무를 관할하는 자를 의미하고, 고위 인물의 집이나 사찰에서 가정부 사무를 맡는 자를 말한다. 한국 개신교회의 각 교단 헌법에 따르면 만 30세 이상이며, 일정기간동안 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한 기혼자가 집사의 직을 임명받게 되어 있다. 흔히 "서리집사"라고 하는 표현으로 임명하는 직분인데, 그 사람의 행실이나 신앙심, 인격 등을 크게 상관하지 않고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서 최근에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와 달리 안수하여 세우는 집사의 직분이 있는데, 이를 흔히 "안수집사" 또는 "장립집사"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현재에도 개신교에서는 신도역원(信徒役員)에 이 명칭을 쓰는 교회도 있다.[출처 필요]

한국의 집사편집

한국의 집사는 집사관(執事官) 또는 집사(執事)라 불리는 관직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사량부(沙梁部)의 도화녀(桃花女)가 진지왕의 혼과 맺어 비형랑(鼻荊郞)을 낳았는데, 진평왕이 궁중에 들여다가 길러 15살이 되자 집사를 제수하였다고 한다. 집사는 석장(石匠)들을 지휘 감독해 공사하는 직책이다.[1]

신라 말에는 왕실의 기밀 사무를 관장하던 집사성(執事省)이 설치되었다. 집사성은 신라의 최고관청이었고, 그 장관은 진골 출신이 임명되었는데, 초기에는 진덕여왕 5년 중시(中侍), 후기에는 경덕왕 6년 시중(侍中)으로 고쳤다.[2]

고려 시대에는 집사가 향리직 가운데 하나로서, 집사는 사(史)로 바뀌었는데, 이는 집사성의 사(史)에서 유래한다.[3]

조선 시대에는 집사가 국왕과 왕실을 중심으로 한 각종 의식에서 주관자를 도와 의식을 진행시킨 의식 관원이었다.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각종 행사 의식을 집전하는 집사관 및 집례관도 집사라고 칭하게 되었다.[4] 집례관의 우두머리를 주례(主禮)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는 뒤에 혼례의 주례로 역할이 한정되기도 한다.

집사관 가운데 선전관(宣箋官)은 조선시대 국왕을 위한 조하의식(朝賀儀式)에서 백관의 전문(箋文)을 읽어 바치는 관직이며, 선전관(宣傳官)과는 다르다.

각주편집

함께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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