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영교회
개요
편집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인천 동구 창영동의 영화여자보통학교 부설 영화유치원에서 96명의 신자가 창립 예배를 본 것이 시초이다. 교회 설립의 취지는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겠다"였다. 초대 담임목사는 갈홍기가 맡았다.
이후 인천 지역 선교중심지로 발전해왔으며, 여러 교회를 분립시키고 개척해 왔다. 특히 인천 지역 최초의 기독교 학교인 영화여학교와 함께 교육과 선교를 병행해 왔다.[1] 1991년 카자흐스탄에 알마아타감리교회를 창립하는 등 해외 선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지에서 선교 활동을 해 왔다.
연혁
편집- 1937년 : 교회 설립
- 1937년 : 초대 담임목사 갈홍기 부임
- 1938년 : 예배당 건립
- 1939년 : 기도처 설립 (성덕교회)
- 1959년 : 가좌교회 개척
- 1974년 : 동인천교회 분립
- 1991년 : 알마아타감리교회 창립
- 1994년 : 브룬다이창영교회 설립
- 1998년 : 대전산내창영교회 개척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송효창 (2007년 6월 3일). “"교육과 선교 병행···한결같은 70년" - 창영교회 창립 70년 헌혈통해 사랑 실천”. 인천신문. 2008년 6월 12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윤문영 (2007년 6월 27일). “[인천인물 100人·81] 개신교 최초 여성목사 전밀라 - 편견 깨고 당당하게 '십자가의 길' 男 부럽지 않은 종교사역자”. 경인일보. 2008년 6월 12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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