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진경
호진경(胡晉卿: 1107년∼1160년 7월 28일(음력 6월 23일)[1])은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토산(兎山)이다.
호진경
胡晉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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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국의 북계 정주 방어판관 겸 권농사 | |
임기 | 1132년 ~ 1135년 |
군주 | 고려 인종 왕해 |
신상정보 | |
출생일 | 1107년 |
거주지 | 고려 개경 |
사망일 | 1160년 7월 28일/음력 6월 23일 (54세) |
학력 | 1122년 국자시 합격 1128년 예부시 급제 |
경력 | 내시 시합문지후(內侍 試閤門祗候) |
본관 | 토산(兎山) |
부모 | 호인영(아버지) |
배우자 | 황보씨 부인 |
자녀 | 3남 3녀 (그 중 맏아들 호신수, 둘째 아들 호신사) |
친인척 | 호종적(친할아버지) 김선영(외할아버지) 황보 정(장인) 류광수(첫째 사위) 정공습(둘째 사위) |
상훈 |
생애[1]편집
1남 7녀 중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다.
12세부터 유학을 배우기 시작해 1122년(예종 17년) 16세에 국자감시(國子監試)에 합격하고, 1128년(인종 6년) 22세에 예부시(禮部試)에 급제하였다.
1132년(인종 10년) 정주방어판관(定州防禦判官) 겸 권농사(勸農使)에 임명되었는데 재직 3년 동안 청백하고 공무에 힘썼으며, 또한 백성을 잘 보살펴 관내 향리과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이에 청백리로 포상되어 1145년(인종 23년) 비로소 중앙관료가 되어 내관으로 네 번 자리를 옮겨 내시 시합문지후(內侍試閤門祗候)에 이르렀다.
1160년(의종 14년) 7월 28일(음력 6월 23일), 질병에 걸린 지 한 달 남짓만에 숨졌다. 향년 5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