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향남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현 야구 코치

최향남(崔香男, 1971년 3월 28일 ~ )은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투수이자, 현재 중국야구리그 상하이 골든이글스의 투수코치이다.

최향남
Choi Hyang-Nam
상하이 골든이글스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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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1년 3월 28일(1971-03-28) (50세)
출신지 대한민국 전라남도 신안군
신장 187 cm
체중 91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0년
드래프트 순위 1990년 고졸 신인지명(해태 타이거즈)
첫 출장 KBO / 1990년 8월 17일
대구삼성전 선발
마지막 경기 KBO / 2013년 9월 27일
문학SK전 구원
경력

선수 경력

감독 경력

코치 경력


선수 시절편집

한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해태 타이거즈 시절편집

1990년에 입단하였다. 5경기에 등판하는데 그치고 이듬해 현역으로 입대해 군 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에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해 1996년 11월 6일 최훈재를 상대로 LG 트윈스에 트레이드됐다.

LG 트윈스 시절편집

트레이드 뒤 1998년에 12승(모두 선발) 12패를 거둬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으나 그 해 주전 마무리였던 앤더슨이 다음 해인 1999년 쌍방울 유니폼을 입게 되자 같은 해 시즌 전 마무리로 낙점됐지만[1] 갑작스런 손가락 골절 부상 때문에[2] 시즌 초 뛰지 못했고 이 때문에 1996년 시즌 중반부터 선발로 전향한 김용수가 마무리 투수로 복귀했다[3]. 우여곡절 끝에 1999년 5월 31일 현대전 선발등판으로 복귀했지만[4] 시즌 막판 장염 때문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어[5] 그 해 8선발승에 머물렀고 이로 인해 김용수가 시즌 막판 선발로 보직변경했다. 그 뒤, 2000년에는 어깨 통증 외에도 선수협의회에 참가하느라 동계훈련을 제대로 못 해서[6] 4월 말이 되어서야 돌아왔고 그 당시 마무리를 맡았던 장문석이 3패(1세이브)를 당하는 등 극심한 부진을 보이자[7] 마무리로 낙점됐으나 5세이브만 추가했을 뿐 페이스가 뒤틀리기 시작한 데다 어깨 통증까지 겹쳐 5월 18일 재활군으로 내려갔다가 6월 4일 1군으로 돌아온 뒤 선발로 전향해[8] 4승을 거뒀다. 하지만, 2000년 말 어깨수술을 한 탓인지[9] 2001년 3경기에서 1패 1홀드에 머물렀다. 이후, 2002년 7승(모두 선발)을 거두며 재기하는 듯 했으나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 어깨 부상을 당한 탓인지 다음 해인 2003년 부상으로 1경기도 뛰지 못한 것 외에도 아파치 머리로 비롯된[10] 코칭스태프와의 충돌 - 선수협 문제 때문에[11] 구단으로부터 미운털이 찍혀 시즌 후 방출됐다.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2003 시즌을 재활에만 전념하다가 2004년에 친정 팀으로 복귀했다. 2시즌 동안 4승 6패를 거뒀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그는 MLB 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2006년에 미국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트리플 A 구단인 버펄로 바이슨스에 진출해 34경기(선발 11경기)에 등판 8승 5패, 2점대 평균자책점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MLB에 콜업되지 못한 채 재계약에 실패하고 2007년에 한국으로 복귀했다.

한국 프로야구 복귀편집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2007년에 입단하였다. 2시즌 동안 172이닝, 7승 16패를 기록했다. 2008 시즌 2승 4패, 9세이브를 거두며 팀의 9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어냈다.

미국 프로야구 복귀편집

2009년에 다시 미국으로 진출해 LA 다저스 산하 트리플 A 구단인 앨버커키 아이소토프스에서 구원 투수로 활동했다. 첫 해에 9승 2패,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2010년에는 1승 2패,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해 트리플 A에서 활동하는 투수로는 부진해 2010년 7월 2일에 방출됐다.[12]

일본 독립야구 시절편집

2010년 7월 2일 이후 일본 독립 리그에서 활동하다가 한계를 느껴 한국에 복귀했다.

한국 프로야구 재복귀편집

롯데 자이언츠 복귀편집

2011년에 이적을 통해 3년만에 친정 팀으로 복귀했다. 3월 25일 시범경기 때 2이닝 1실점을 기록했지만 그 후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며 시즌 중 방출됐다.

KIA 타이거즈 복귀편집

은퇴 위기에 몰렸으나 현역 연장 의지를 보여 수술 대신 재활한 후, 컨디션을 다시 끌어올려 당시 감독이었던 선동열의 부름을 받아 2012년 5월 22일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친정 팀에 돌아왔다. 이로써 한 선수가 같은 팀 유니폼을 3번이나 입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기주의 부상으로 그가 마무리 보직을 대신 맡았고, 2012년 7월 25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세이브를 올려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13] 2013 시즌 후 다시 해외 진출을 위해 팀을 떠나기로 했다.[14] 스프링캠프의 초청 선수로 들어가서 재진출을 모색하려고 계획했으나, 미국행이 불발됐고[15], 결국 미국행을 포기했다.

한국 독립야구 시절편집

고양 원더스 시절편집

2014년에 입단하였다. 같은 해 KBO 퓨처스리그 교류전 5경기에 등판해 9.1이닝동안 1승 1패,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오스트리아 프로야구 시절편집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자 2015년에 전 SK 와이번스의 투수 황건주, 전 롯데 자이언츠 트레이너 하승준과 함께 비너노이슈타트 다이빙 덕스 입단을 통해 오스트리아로 진출했고 그 해 눈부신 피칭으로 팀을 정규 시즌 4위로 이끄는데 공을 세웠다. 이에 힘입어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됐다. 또한 포스트시즌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팀을 오스트리아 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오스트리아에서 1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친 후 2016년 초에 아이티로 건너가 야구 재능 기부를 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했으나 생각을 바꿔 2016년 8월 10일부터 경북 문경에 있는 국제 학교인 글로벌선진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인 2017년 후진 양성에 힘쓴 공로로 한은회 시상식에서 공로패를 수상했다. 그러나 아마야구 지도자 자격이 없는 관계로 실질적으로는 다른 감독이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2019년까지 글로벌선진학교를 이끌다가 같은 해 12월 9일 CBL상하이 골든이글스의 투수 코치로 부임하며 중국으로 진출했다.

별명편집

  • 2008년임경완의 극심한 부진으로 주로 마무리 투수로 등판햇는데, 빠른 시간에 경기를 끝내고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삼국지연의의 관우를 연상케 해 관우의 호인 '운장'를 딴 '향운장'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2004년에 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KIA 타이거즈가 패배해 선수들이 실의에 빠져 있는 가운데 의연히 빵을 먹어 생긴 별명인 '빵운장' 혹은 '빵향남'이라고도 불렸다.

출신 학교편집

통산 기록편집

연도 소속 평균 자책 경기 승리 패전 세이브 홀드 이닝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1990 해태 15.19 5 0 1 0 0 5 1/3 10 7 3 10 9
1995 3.86 19 0 5 0 0 67 2/3 54 39 54 35 29
1996 4.88 17 1 0 0 0 31 1/3 35 16 30 17 17
1997 LG 2.99 23 8 3 0 0 120 1/3 112 48 74 47 40
1998 3.63 28 12 12 0 0 173 1/3 144 60 111 80 70
1999 4.26 15 8 5 0 0 93 78 43 87 45 44
2000 3.46 21 4 7 5 0 78 79 34 80 34 30
2001 6.75 3 0 1 0 1 8 7 7 5 6 6
2002 4.46 23 7 9 0 0 109 95 66 75 62 54
2004 KIA 3.57 16 2 1 0 0 45 1/3 40 27 37 20 18
2005 4.10 12 2 5 1 0 41 2/3 39 24 31 20 19
2007 롯데 5.00 24 5 12 0 0 122 1/3 139 49 66 74 68
2008 3.58 37 2 4 9 3 50 1/3 36 15 48 20 20
2012 KIA 3.98 24 1 3 9 2 20 1/3 19 1 20 10 9
2013 4.45 26 2 2 0 8 30 1/3 28 1 24 16 15
통산 15시즌 4.05 293 54 70 24 14 966 1/3 915 72 745 496 448

각주편집

  1. 장환수 (1999년 3월 6일). “심·재·학 투수전업 성공예감 "얕보다간 큰코다쳐". 동아일보.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2. 이기환 (1999년 3월 18일). “기록을 던진다…39살 세월의 무게를 던진다… '돌아온 소방왕'김용수”. 경향신문.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3. 이기환 (1999년 3월 18일). “기록을 던진다…39살 세월의 무게를 던진다… '돌아온 소방왕'김용수”. 경향신문.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4. 강성만 (1999년 6월 1일). “LG 에이스 최향남 부활투”. 한겨레신문.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5. 김상수 (1999년 9월 2일). “김용수'노장 투혼'. 동아일보.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6. 류강훈 (2000년 7월 13일). “[프로야구] 임선동·최향남, 뒤늦게 빛나는 특급피칭”. 국민일보.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7. 장환수 (2000년 5월 27일). “[프로야구]LG 장문석 "난 선발체질". 동아일보.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8. 이태일 심재우 이철재 (2000년 7월 6일). “[프로야구] LG 최향남 첫승 신고”. 중앙일보.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9. 김종석 (2001년 9월 11일). “[프로야구]다친 '어깨'들 속속 복귀”. 동아일보.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10. 김대호 객원기자 (2009년 1월 15일). “최향남의 '잡초'같은 인생, 못말리는 도전”. OSEN.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11. 류강훈 (2000년 7월 13일). “[프로야구] 임선동·최향남, 뒤늦게 빛나는 특급피칭”. 국민일보. 2021년 6월 18일에 확인함. 
  12. 최향남, 다저스에서 방출...한국 올까, 《스포츠조선》
  13. '최고령 세이브' 최향남, 살아 있는 전설이 되다 - 마이데일리
  14. 최향남 KIA 떠난다…다시 미국 무대 도전 - 스포츠월드
  15. 최향남, 미국행 끝내 불발 “후회 없이 도전했다” - 스포츠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