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충주 최씨(忠州崔氏)는 충청북도 충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연원편집

  이 문단의 내용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2년 9월 18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충주 최씨(忠州崔氏)의 시조는 중국 당나라(唐) 무종(武宗, 재위 840~846) 때 병마사를 지낸 청하 최씨 최승(崔陞)이다. 그의 초명은 최우(崔偶)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 기록에 따르면, 최승은 최현위(崔玄暐: 638~706)의 어린 동생으로 당나라 병마사를 지냈는데, 당나라 무종 재위 시대의 최승에 관한 기록과는 1세기에서 반세기 정도 시간 차이가 있다. 따라서 최우(崔偶)는 최승과 동일 연대의 사람이 아니다. 최우는 최승의 후손이거나, 연원에 두 이름이 등장하므로 같은 인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후대에 중국의 청하 최씨는 랴오닝 지역에서 병마사를 지냈다고 한다.

최승(崔陞)은 846년(신라 문성왕 8년)에 신라에 흉년이 들어 도적이 창궐할 때 당 무종의 명을 받고 병마사(兵馬使)로 내임하여, 신라에 들어와서 이를 토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기록에는 최현위(崔玄暐: 638~706)의 동생으로 7세기에 태어난 인물로 되어 있어, 한국 기록 846년과는 1세기의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실제 사실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최우(崔偶)는 889년(진성여왕 3년)에는 원종(元宗), 애노(哀奴)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당 소종의 명을 받아 상장군으로 내임하여, 반란을 평정하여 공으로 은청광록대부에 올랐다고 하나 원종과 애노의 반란은 신라 중앙군이 동원되었으며, 당의 지원군은 없었다. 그 후 당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신라 조정에 관적하여 경주에 살게 되었다고 하며, 후손들은 예성(蘂城, 충주)에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889년에 신라에 동래하여 은청광록대부가 되었던 최우(崔偶)을 시조로 하고, 고려 충선왕 때 판도판서, 예문관대제학을 지내고 중원백(中原伯)에 봉해진 최공의(崔公義)를 1세로 하고 있다.

최우청(崔遇淸)은 고려조에 수사공좌복야를 지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