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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명환(卓明煥, 전라북도 정읍군, 1937년 7월 8일 ~ 1994년 2월 18일)은 대한민국신흥종교, 이단 사이비종교 연구의 전문가였다. 기독교 계열의 이단 연구라는 이름으로 여러 종파를 지속으로 비판하여 소송, 테러, 살해 협박을 받았고 자신의 아파트 근처에서 대성교회 광신자에게 살해당하였다.[1][2][3][4][5]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탁명환은 1937년 7월 8일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리 179번지에서 부친 탁두섭과 모친 안삼례의 3남 3녀 가운데 장남으로 출생했다.

1960년 4월 26일 육군에 입대하여 대구 16헌병대에서 헌병으로서 복무하면서 1961년 9월 대구영남신학교 야간부에 입학하여 약 1년 3개월간 수학하였다.

활동·업적편집

1960년대 중반부터 복음신보사, 기독신보사 등 개신교계 신문사에서 근무하면서 신흥종교 연구를 시작하여 신흥종교문제연구소(1970년 설립)와 국제종교문제연구소(1979년 설립), 그리고 한국종교문제연구소(1986년 설립)에서 소장으로 일하면서 신흥종교 혹은 이단종교 연구자로서 알려지게 되었다.[6]

특히 개신교계 신흥종교 전문연구자로 활동하면서 한국신학대원대학, 서울신학대학, 고려신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월간 『성별』, 월간 『현대종교』 등의 잡지를 발행하여 연구 성과를 교계에 소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1985년부터는 ‘사랑실천헌안장기사후시신기증운동본부’를 조직하여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평생을 이른바 ‘사이비’ 종교들의 비리와 이단성을 폭로하는 데 주력하다가 개신교계 신흥종파인 대성교회 신자의 피습을 받고 사망하였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장남 탁지일(부산장신대교수), 차남 탁지원(현대종교 소장), 3남 탁지웅(성공회 신부)가 현대종교를 맡고 있다.

테러와 사망편집

차량 폭탄 테러(1985년) 등의 신변의 위험을 겪었으며, 1994년 대성교회(現 평강제일교회)[7]의 신도의 테러로 노상에서 살해당했다.

2월 18일 신흥종교인 영생교에 대한 문제로 출장을 다녀오던 탁명환은 대성교회의 광신도 임홍천이 탁명환의 아파트 근처에 숨어있다가 칼로 탁명환을 찔렀다. 탁명환은 병원에 옮겨졌으나 곧 사망했다. 검찰에서 밝힌 대성교회 광신도 임홍천의 살해 동기는 탁명환이 1994년 1월에 쓴 목사 박윤식을 비판하는 글을 보고 증오감이 깊어져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밝혔다.

사후편집

사후 시신은 "의학대학에 실습용으로 써달라"는 유언에 따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기증되었고 각막 두 개는 당시 27세와 37세인 여성에게 각각 기증되었다. 그 뒤 2002년 9월 20일 사망한 탁명환의 아버지 탁두섭도 시신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하였다.


주요 저서편집

  • <한국의 신흥종교> (1972)
  • <신흥종교의 세계> 신흥종교문제연구소 (1976)
  • <현대 기독교의 이단> 국제종교문제연구소(1977)
  • <한국신흥종교의 실상> 국제종교문제연구소(1991)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탁두섭(1911년 - 2002년 9월 20일)
  • 어머니 : 안삼례
  • 배우자 : 김춘심
  • 아들 : 탁지원 (현대 종교 소장)
  • 아들 : 탁지일 (장로교 목사, 부산 장로회 신학대학 교수)
  • 아들 : 탁지웅 (성공회 신부, 일본 도쿄대교구 소속)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금주의 메모(6월27일-7월2일). 연합뉴스. 1994년 6월 25일.
  2. 조혜진. "이단 연구 발표 적법", 평강제일교회 패소. 노컷뉴스. 2011년 5월 3일.
  3. 송주열. 故 탁명환 소장 유가족들, "박윤식 씨 사과하라". 노컷뉴스. 2014년 2월 11일.
  4. 신동하. 故 탁명환 소장 20주기 추모식 열려. 한국기독공보. 2014년 2월 17일.
  5. 성문규. (정정보도) 바로 잡습니다. JTBC. 2014년 5월 22일.
  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박윤식 목사 설립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