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영생교(永生敎)는 대한민국의 사이비 신흥 종교로서 조희성에 의해 1981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승리제단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다.[1]

목차

명칭편집

영생교 또는 승리제단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교리편집

연구편집

영생교 승리제단과 조희성에 대하여 학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생교와 조희성은 교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언론에 보도되었기 때문이다.[2] 현재 영생교 연구자로는 김종석 박사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석은 선문대학교에서 《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한국의 육신영생신앙》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승리제단에 대한 연구는 비판적 연구가들이 쓴 비난성 기사[3] 를 제외하고는 전무하다고 하며, 더 나아가 영생교에 대한 연구가 적은 이유는 사회적 인지도가 낮아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4] 이라고 한다.

김종석은 위의 자신의 논문이 영생교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이나 사회학적, 철학적, 사상적 종교이론의 전개를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두 신흥 종교의 핵심 정체성인 '피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 '육신영생신앙'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참여관찰과 역사학적 방법으로 연구하였다고 밝히고 있다.[5]

'살아 영생'의 교리편집

영생교는 기독교 등 다른 종교가 '사후(死後) 영생' 또는 '사후(死後) 극락'의 교리를 갖는 것과 달리 '살아 영생'이라는 교리를 표방하고 있다.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 영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오늘날의 과학적 결론이지만 영생교에서는 사람의 실체는 원래 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사람이 원래의 실체로 돌아가면 즉 신이 되면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영생체가 된다고 하며, 이러한 내용은 성경불경, 격암유록 등 여러 경전에 언급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요한 복음서 3장 5절의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에서 '사람이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을 '사람이 하느님으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으로 해석하고, 하느님이 사시는 나라를 하느님 나라라고 해석하여 '사람이 하느님으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풀이한다.[6][7]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하느님이 되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불경 또한 '사람이 부처님이 되어야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해석한다.

사건편집

영생교는 다음과 같은 사건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사회에서 크게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납치 및 폭행편집

영생교 승리제단은 1989년 5월 9일에 한 때 1988년 10월 30일 승리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열성신도였던 신진규 경북대 공법학과 교수가 영생교를 그만두자 20일동안 감금, 폭행하였다[8][9].

경관 감금 및 폭행편집

1992년 9월 28일에 경찰관 3명은 영생교의 종말론 유포와 헌금부정사건을 수사하려 하였다. 그러나 영생교 신도들은 교주를 연행하려던 경찰관 3명을 폭행하고 그 중 1명은 3시간 여만에 풀어주었던 사실이 드러났다[10][11].

살인 및 유골 발굴편집

사건이 알려진 경위편집

1994년 1월 12일에 교주 조희성이 서울지검에 사기, 횡령, 경관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12] 13일에는 국제종교문제연구소와 피해자 가족들은 영생교에 의해 납치 또는 실종된 사람이 15명에 달한다며 수사를 요구하였다.[13] 이에 따라 검찰은 수사를 진행하였으며 같은 해 2월 20일에는 영생교의 행동대 3명을 구속하였다. 그리고 조희성과 이들 3명을 추궁하였다. [14]

유골 발굴편집

검찰은 1995년 3월 7일에 피의자의 진술대로 경기도 용인에서 1984년에 암매장되었던 소문종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굴하였다. [15] 영생교의 암매장 사실이 사실로 확인되자 검찰은 수사를 확대하여 또다른 실종 신도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였다. 수사의 대상이 된 실종자들의 가족들도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였다. [16]

이탈신도들에 대한 보복편집

영생교의 배교자 처단조는 크게 지성룡파와 나경옥 파로 나뉘었는데, 지성룡파가 소문종 납치살해를 주도한뒤 나경옥파가 1990년에 지성룡 살해한 후 배교자 처단을 주도해왔다. [17] 검찰은 김규석이 소와 같은해에 교단 비리를 폭로하려다 납치되었고 11년째 행방이 묘연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18]

검찰의 수사편집

검찰은 9일에 잠적했던 나경옥을 비롯한 배교자 처단조를 공개 수사하기로 하였다. [19] 뿐만 아니라 검찰은 동년(同年) 5월 16일에 용인에서 발굴된 유골이 부검결과 소문종 것임을 입증하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20] 또한 1996년 12월 11일에는 또다른 사이비종교 사건인 아가동산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서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영생교 밀실 정원에서는 유골이 발견되었다. 제보자는 유골이 1987년 6월에 납치된 안경렬이나 함께 납치된 김철순 중 한 사람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1] 김철순은 영생교 신도가 아니었고, 조희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안경렬이 납치된 사실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납치, 살해당했다고 한다[22].

2003년 8월에는 영생교의 범죄행각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경기도 안성시금광저수지 근처 야산에서 1990년에 나경옥에게 살해된 지성룡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까지 발견되었다. [23] 뿐만 아니라 검찰은 8월 17일에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1990년에 실종된 박차선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발굴하였다. [24] 18일에는 전북 완주군에서도 1990년에 실종된 양해금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굴하는 데 성공하였다. [25]

중형 언도편집

결국 2004년 2월수원지방법원은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던 교주 조희성과 처단조 행동대장 나경옥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른 처단조 간부인 김진태는 무기징역 조모, 정모는 각각 징역 15,12년 형이 선고되었다. [26] 그러나 교주 조희성과 간부들은 항소하였으며 원심과 달리 항소심에서 교주는 직접적으로 신도 살해를 지시하였는가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살인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나경옥의 도피를 방조한 것에 대해서만 2년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은 교주 조희성과는 대조적으로 처단조 간부 나경옥, 김진태, 조모, 정모에 대해서는 원심대로 판결하였다. [27] 이후 교주 조희성은 상고심 계류중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28] 한편 같은 해 9월에 나머지 간부들은 1심과 2심 그대로 나경옥은 사형, 김진태는 무기징역, 조 모와 정 모에게는 각각 징역 15, 12년형을 선고한 원심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29]

착취편집

영생교는 '근화실업'이라는 기업을 세우고 신도 200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근화실업은 사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 즉 사원들이 받아야 할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영생교의 활동자금으로 빼돌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1991년 8월부터 1994년 2월까지 원래 30~70만원씩 지급하기로 한 임금을 2~10만원만 지급하는 수법으로 총 15억원을 교단 자금으로 빼돌렸다. 서울지방검찰 특수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업무상 횡령)혐의로 1994년 3월 9일에 당시 총무였던 윤태수(1994년 당시 49세)를 구속하고 교주 조씨에게도 같은 혐의를 적용하는 한편, 사장인 양시춘을 수배했다.[30]

보도편집

MBC PD수첩은 1994년 2월 15일자 프로그램에서 영생교 문제를 다뤘다.[31] 이 프로그램으로 PD수첩은 1995년 2월 21일에 프레스센터에서 제5회 한국언론학회 언론상 중 방송 부문을 수상했다.[32][33] 그러자 교주 조희성은 MBC에 손해배상 10억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1999년 7월 23일에 법원은 공익 차원의 보도인데다가 교주 조희성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판단되지 않는만큼 손해배상은 물론 반론보도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하였다.[34]

KBS 추적 60분은 영생교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방송에 3차례 내보냈다. 1994년 3월 27일에 처음으로 영생교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하였다. 두 번째는 보도는 소문종의 유골이 발견됨으로써 영생교의 배교자 살해가 드러나자 1995년 3월 12일에 영생교의 내막을 폭로하였다[35].

2003년에 영생교의 살인 행각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자 추적 60분은 또다시 2주 간에 걸쳐서 2부작으로 영생교의 정체를 보도했다. 첫 보도는 8월 16일에 보도하였으며[22][36], 방송이 보도되는 날에 영생교 신자들이 KBS본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37]. 같은 달 23일에는 교주 조희성의 교리를 빙자한 범죄행각 역시 폭로하였다[38].

조희성의 사후편집

2004년 조희성이 죽고 그의 시신은 김포시 대곶면에 묻혔으며,[39] 부인인 이영자가 총재로서 승리제단을 이끌고 있다.[40] 분파로는 삼천년성과 군화엄마(君火唵嘛)와 같은 단체가 있다.[41] 이 중 군화엄마는 2004년과 2011년에 세계적인 괴질이 닥칠 것이라 주장했다.[42]

각주편집

  1. 대한민국 문화공보부에 등록
  2. 김종석, 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제3권), 청년사, 2010, 29-33면
  3. 탁명환,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한국의 신흥종교, 기독교편 4권』(국제종교문제연구소, 1987) 81-101. 『월간 현대종교』,「역곡에 나타난 진인 정도령」, 90년 6월호, 145-151. 「자칭 하나님 조희성 생일 맞아」, 92년 9월호, 50-54. 「영생교 조희성 교주 지명수배」, 93년 1월호, 128. 「성역없는 사교집단 영생교 수사를 촉구한다」93년 1월호, 20-21. 「사교집단 영생교 승리제단의 진상공개를 촉구한다」34-53. 「영생교 수사를 촉구하는 기독교계 성난 목소리들」93년 5월호, 54-61. 「자칭 하나님 조희성 구속」, 94년 2월호, 138-153. 「조희성 영생교 교주 첫 공판에서 ‘영생’ 부인」, 94년 5워로, 219. 「영생교 조희성에 징역 15년 구형」, 94년 9월호, 122-125. 「조희성 영생교 교주에 징역 4년 선고」, 94년 10월호, 84-87. 「범죄 집단 영생교 살해 암매장 의혹 사실이었다」95년 4월호, 34-55. 각주2)의 위 논문 재인용.
  4. 김종석, 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제3권), 청년사, 2010, 32면
  5. 김종석, 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제3권) 17-20면
  6. 승리제단 홈페이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참조
  7. 승리제단
  8. 동아일보 (1989년 5월 29일). “敎授 被拉 폭행당해”. 
  9. 영생교 승리제단 관련 현대종교 자료[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0. 동아일보 (1992년 9월 29일). '終末論'富川영생敎 搜査경관 감금구타 3시간만에 풀어줘”. 
  11. 경향신문 (1992년 9월 29일). “永生敎교주 연행방해 신도들 한때 警官 감금”. 
  12. MBC (1994년 1월 12일). “신흥종교 영생교 교주 조희성씨 구속”.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3. MBC (1994년 1월 13일). “영생교 피해자 가족, 영생교 승리제단 15명 납치 주장”.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4. MBC (1994년 2월 21일). “검찰, 영생교 이탈신도 보복했다고 잠정 결론”.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5. MBC (1995년 3월 7일). “영생교 이탈자 살해 암매장 의혹 사실로 확인”.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6. MBC (1995년 3월 8일). “영생교 암매장 사실 확인됨에 따라 또다른 실종자 수사 확대”.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7. MBC (1995년 3월 8일). “검찰, 영생교 이탈신도 실종사건 관련 수사 확대”.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8. MBC (1995년 3월 11일). “암매장된 채 발견된 소문종 씨 이외에 납치된 사람 또 확인”.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9. MBC (1995년 3월 11일). “검찰, 영생교 신도 실종사건 관련 배교자 처단조 공개수사”.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0. MBC (1995년 5월 16일). “검찰, 영생교의 배교자 처단조 4명 구속 기소”.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1. MBC (1996년 12월 11일). “경기도 부천시 영생교 밀실 정원에서 암매장 유골 발견돼”.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2. 죽음의 영생교 - 1년간의 추적! , 신도살해 암매장 사건
  23. SBS (2003년 8월 14일). “영생교, 신도살해 암매장”. 
  24. SBS (2003년 8월 17일). “영생교 신도추정 유골 한 점 추가 발견”. 
  25. SBS (2003년 8월 18일). “전북 완주에도 영생교 신도 암매장”. 
  26. 국민일보 (2004년 2월 2일). “신도 살해지시 영생교주 사형선고”. 
  27. 국민일보 (2004년 5월 24일). “영생교주 2년선고…원심 사형판결 깨”. 
  28. 뉴시스 (2004년 6월 19일). “영생교 교주 조희성씨 사망”. 
  29. 머니투데이 (2004년 9월 8일). '영생교 사건' 살인 주범 사형 확정”. 
  30. 동아일보 (1994년 3월 10일). “永生敎 신도에 15億 착취”. 
  31. 동아일보 (1994년 2월 15일). “교주 구속 영생교 정체 분석”. 
  32. 동아일보 (1995년 2월 3일). 'PD수첩' 언론학회 방송賞”. 
  33. MBC (1995년 2월 21일). “PD수첩,언론상 방송부문 본상 수상”.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4. MBC (1999년 7월 23일). “영생교, MBC상대 10억 손해배상 소송 패소”. 
  35. 경향신문 (1995년 3월 12일). “영생교 실체 파헤쳐”. 
  36. KBS (2003년 8월 14일). “사건 끊이지 않는 영생교는 어떤 단체”.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6월 26일에 확인함. 
  37. KBS (2003년 8월 17일). “영생교 신도 백여명 KBS 앞 시위”.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6월 26일에 확인함. 
  38. 2부작 죽음의 영생교 - 제2편 20년의 추적! - 조교주와 영생불멸
  39. 정윤석 (2006년 3월 14일). “하나님이라더니, 땅 속서 썩고있네?”. 교회와신앙. 
  40. 정윤석 (2009년 5월 14일). “이단 교주들 구속사(拘束史) 그리고 맹신”. 교회와신앙. 
  41. 구수현 (2004년 9월). “교주의 죽음 맞은 영생교, 어떻게 될 것인가”. 《월간 활천》. 2005년 1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9월 16일에 확인함. 
  42. 전정희 (2011년 1월 24일). “질병대란에서 살아남기”. 교회와신앙.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