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관롱집단

마지막 의견: 4년 전 (Sotiale님) - 주제: 문서 보호

관롱집단? 편집

@그ㅐㅐ11: 의견 부탁드립니다.

위키프로젝트토론:중국사#관롱집단 관련 토론이 있어 추가해둡니다.

관롱집단은 선비족들의 무사 집단을 가르킨다 북위 말기부터 서위, 북주를 거치는 동안 위수 지역을 중심으로 뭉친 선비족 집단에서 출발했다. 북위를 멸망시키고, 동위, 서위로 선비족의 북조가 분열되었을 때 서위의 선비족인 우문태는 서방 중심지로 위수 지역의 관중 지방을 선택했다. 선비족인 우문태는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강력한 선비족 군부가 필요했는데 이때 북위때부터 있었던 선비족 무사 집단 관롱집단을 이용했다. 수나라를 세운 양견도 이 선비족 관롱집단 출신이다. 이 관롱집단은 원래 선비족의 본거지로서 선비족과 연결되는 지역이다. 실제로 문벌 귀족들의 족보를 따지면 한족화된 이름을 쓸려고 했던 선비족이 대부분이지만 8주국 관롱 집단은 예전부터 혈통의 순수성을 지켜오기 위해 선비족끼리 결혼 하였다. 북위가 처음 나라를 세우고 북조를 통일했을 때 이 관중 지방에 많은 선비족들이 이주했다. 북위가 효문제의 한자 사용을 추천하고,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자 이 관중 지방의 선비족들은 원래 한족들을 정복하고 낙양으로 이동하였다. 서위 멸망 후 북주의 중심지가 위수 지역이 되자, 북주 총관 양견 등 관롱집단의 사람들이 대거 관료가 되어 기용되었다. 양견은 어릴때의 이름도 선비족의 이름으로 금강나라연이였고 보육견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양견이 수나라를 세우자 선비족의 관롱집단 한족들을 피지배인으로 만들고. 건국 공신으로 세를 떨치게 되었다.이 관롱집단은 결국은 선비족끼리 결혼하여 혈통을 유지한 선비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연은 선비족인 독고씨와 친척 관계이다. 양견과 이연은 이종사촌간이었는데, 결국 수와 당의 교체는 왕조의 교체보다 선비족의 관롱집단간의 지배체제 변화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관롱 집단의 성격상, 수나라와 당나라는 해외 학계에서는 중국인이 아닌 선비족의 역사로 인정되는 것이 정론이다. 왜냐면 북위의 선비족 지배층들이 중국인 한족들을 정복하여 중국인들이 피지배민족이 된 북위에서부터 이어져온 수나라, 당나라 또한 지배층이 선비족 순수 혈통이였으며 피지배민족인 중국인들은 평민이나 하위 계층으로 머물며 상위 계층으로 가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 내용(특히 강조 부분)이 근거가 있는건가요?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출처도 찾아볼 수 없네요. 자꾸 이 내용으로 반복적인 편집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의견 부탁드립니다. --종코 (토론) 2019년 10월 27일 (일) 20:08 (KST)답변

중국어판을 그대로 배꼈기 때문에 과연 역사 관점에서 한국어판에 어울리는지 또한 그저 번역을 했기 때문에 출처를 한국인이 확인하거나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출처 신뢰성에 한국인과 토론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만, 기존 내용을 토론없이 전부 삭제했으므로 다시 복구.

상당히 무례한 발언입니다. 제가 편집하고 토론에 의견 부탁한다고 이미 말씀을 드렸고요. 중국어판을 번역한 것이 한국어판에 역사 관점에서 어울리는지는 개인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출처는 각주를 세세하게 달았습니다.--종코 (토론) 2019년 10월 27일 (일) 20:08 (KST)답변


전적으로 발제자분의 의견에 매우 동감하는 바입니다. 115님은 계속 저를 중국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운다고 주장하시며 토론에 불참하고 계십니다. 매우 무례하고 불쾌한 행위네요.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7일 (일) 22:16 (KST)답변


해당 번역문은 그저 중국판을 그대로 번역해서 붙여넣기 했을 뿐입니다. 선비족 토론에서도 밝혔고 기존 문서 내용도 타사용자의 신뢰성있는 해외 번역판입니다.

토론 내용 적습니다. "이연 자체도 원래 성이 선비족인 "대야" 입니다. 중국 사학계에서는 호한체재니 뭐니 말하지만 결국은 관롱집단은 선비족끼리의 혼인으로 이루어진 무사집단입니다. 8주국 무천진 관롱집단은 선비족 거주지이며 탁발선비가 나온 곳입니다. 관롱집단에 후원했던 선비족 우문태 또한 선비화를 진행하였습니다. 무천진 군벌에 한족이 존재했다는 사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피지배민으로 한족이 존재했을지 몰라도 예를 들어 한반도에 침략한 홍건적이 잡혀서 노비가 되었고 한반도에 존재했다고 해서 그 한족 노비들을 마냥 지배층으로 인식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203.226.207.21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2:23 (KST)

마지막 정리 선비족 탁발씨가 북위를 건국하고 효문제 또한 선비족이며 그 북위가 서위 동위로 나뉘고 동위가 북주 가 됩니다. 선비화를 강하게 하였던 북주가 수나라가 되어 중국을 완전히 정복하였고 그 관롱집단에서부터 당나라가 됩니다. 호한체재라는 게 허상인 이유가 피지배층에 분명 한족들이 존재하지만 선비족 정복 왕조의 친인척 모두 선비족이며 관롱집단이라는 것이 선비족 거주지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북위부터 수 당 까지 선비족 정복왕조로 보는 것이 더 마땅합니다. 특히 선비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던 북주 때 지배층이던 관롱집단에(우문태가 포함된 지배층) 한족이 있었다면 선비화 정책 자체를 추진하지 못했을 겁니다.--203.226.207.21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2:28 (KST)

선비족 정복왕조의 친인척 모두 선비족이라는 근거가 없지 않습니까. 호화정책을 왜 한족이 있다고 추진하지 못하는지요? 선비족에 반발에도 불구 효 문제는 한화정책 잘만 시행했는데요? 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3:05 (KST)답변

즉 북주부터 수 당 왕조의 친인척들을 살펴보면 선비족끼리만 결혼했었으며 이건 뭐 완전히 선비족끼리 다 해먹은 왕조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친인척 중에 한족은 없습니다. 이러한 지배층의 친인척 관계만 선비족들만 보더라도 학자들이 북주 수 당의 왕조는 선비족의 왕조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쪽이 주장하는 호한체재 어쩌고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빠져 있습니다. 관롱집단에 한족이 존재한 기록이 있는가 X(없음) 관롱집단에 선비족들이 존재하는 사료가 있는가O(존재함) 그쪽이 주장하는 것은 마치 몽골의 원나라가 한족을 정복하고 원나라를 건국했다고 이걸 몽중체재로 생각하는 것과 같으며 영국이 남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두었다고 남아프리카를 영-남아체재로 부르는 것, 현재 서북공정 몽고공정 등 칭기스칸을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보니까 출처를 아예 싸그리 지우거나 내용을 마음대로 바꾸던데 그건 반달이라고 부르는것 같습니다 이상.--203.226.208.179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2:36 (KST)

관롱집단설 자체가 진인각이 내세운 이론이고

https://www.asiae.co.kr/article/2018103015092568227 그의 학문적 업적 가운데 ‘관롱집단설(關(농,롱)集團說)’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수나라, 당나라는 순수한 한족의 나라가 아니라 위진남북조 시대의 호족(이민족)과 한족이 결합해 탄생한 혼혈족이 세웠다는 이론으로 지금까지 중국 역사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수.당 제국의 창업자 및 창업자 집단은 관롱 즉 관중(關中)과 농우(陇右)를 지역기반(오른쪽 지도 참조)으로 하는 정치집단이었다. 이 집단을 주도한 것은 서위(西魏)의 실력자이자 북위의 실질 창업자인 우문태(宇文泰)였다. 우문태는 지역적으로 관롱을 중심으로 하고, 종족적으로 호(胡 즉 선비족)와 한(漢)을 혼합하고, 무력과 재지를 겸수한 자들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냈다. 북주-수와 당나라 3백년의 통치계급의 변화 역시 이 관롱집단의 흥망성쇠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나라 초기까지 이 집단의 힘은 강성하여, 황실은 물론 창업 공신, 장상, 대신들 거의 모두가 이 집단에서 배출되었다. 그러나 관롱집단 출신이 아닌, 무측천(여황제)이 실권을 잡고 이 집단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이미 150여년 동안 권력을 잡아왔던 이 집단도 이미 부패하고 쇠락한 상태여서 당 현종 때에 이르러 파괴가 완성되고 관롱집단은 종결되었다.

진인각은 애초에 관롱집단이 호한이 융합됬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쪽의 주장처럼 순수히 선비족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요. 즉 관롱집단설을 주장하면서 순수 선비족설을 같이 주장하는것은 굉장히 이윤배반적입니다. 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3:05 (KST)답변


위에 잘 설명을 해주셨네요.--115.23.23.39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3:36 (KST)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미국학계에서도 수나라 당나라는 선비족 정복왕조인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수왕조의 창조자인 양견은 화북평원 서단 가까이 (홍농군화암현 (弘農郡華陰県)섬서성陝西省 위남지구 화암현)에 본관이 있는 오래된 명족에서 태어났다. 그 조상은 육대에 걸쳐 북조의 이민족 왕조의 관인이며 지배계층의 선비족 엘리트 계층과 통혼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양견의 아버지인 양충은 최초 북위를 섬겼으나 534년 북위가 서위와 동위로 나뉘어질 때 양충은 서위의 건국자인 우문태의 사절로서 우문태를 섬겼다. 양충은 공을 세우고 수국공으로 봉해졌는데 5세기말에 한화정책으로 인해 한족 성씨로 변형되었던 선비족의 성씨들을 우문태가 그의 부하들을 상대로 선비족 성씨를 부활시켰을 때 (로성재행虜姓再行) 양충도 원래의 성씨인 보육여씨로 로성재행하였다." 라고 Arthur F. Wright라는 미국 동양사학자가 주장하였습니다. Arthur F. Wrigh의 경우 많은 미국의 사학자들에 영향을 준 사람으로 유명하고요.[1] 조미원(姚薇元)은 양충은 원래 몽골어로 버들의 일종인 불스칸(БУРГАС)을 의미하는 보육여라는 성씨를 사용했다고 주장합니다. 보육여씨는 안문여씨(雁門茹氏) 유연의 후예. 조미원이 쓴 북조호성고를 보면 100 개의 선비족 성씨가 한족 성씨로 바꿨다가 다시 로성재행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들은 문헌과 사료를 봐도 한족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선비족이며 선비족들과 친인척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인각이 수나라 당나라를 선비족이 건국한 선비족 왕조로 주장한 것입니다. 이상한 블로그 글 이야기 제외하고 출처로 기반이 된 글을 마음대로 삭제하면서 토론 운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115.23.23.39 (토론) 2019년 10월 28일 (월) 23:56 (KST)"

원문 제시 바랍니다. 관롱집단이 순수 선비족이 아닌 호한융합집단이라는 근거 차례대로 제시할테니,반박 부탁합니다.^^

역사학의 거목 천인커(陳寅恪)는 수·당 왕조가 호족(胡族·오랑캐족)과 한족이라는 혼혈족이 세운 것이라는, 기존 학설을 완전히 뒤엎는 ‘관롱(關)집단설’을 발표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222024005 그의 학문적 업적 가운데 ‘관롱집단설(關(농,롱)集團說)’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수나라, 당나라는 순수한 한족의 나라가 아니라 위진남북조 시대의 호족(이민족)과 한족이 결합해 탄생한 혼혈족이 세웠다는 이론으로 지금까지 중국 역사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80223/8547493/1 우리나라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의 근간이 된 수·당 건국세력이 한족이 아니라 선비족과 한족의 혼인 집단인 ‘관롱집단’이라고 처음 주장해 중국 사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현재는 정설이 되었고, ‘동북공정’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중국의 지배세력이 호한병존(胡漢倂存)세력이라는 서울대 박한제교수 이론의 원전격이다.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0225 隋代와 唐代에 수도였던 장안과 감숙성 일대를 근거로 삼았던 문벌귀족 그룹을 關隴集團이라고 부르는데, 당나라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룹이기도 하다. 西魏와 北周 그리고 隋와 唐으로 이어지는 네 왕조 모두에서 핵심 상층부를 장악했을 정도로 뿌리 깊은 집단이었다. 때문에 네 왕조의 황실에서도 쉽게 그들을 배척하지 못할 정도였다.

누누이 말한 것처럼, 이 집단은 서북 이민족과 한족이 융합돼 있어서 한족이라고 부르기도 그렇다고 오랑캐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집단이다. 혈연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오랑캐와 한족의 계보를 모두 갖고 있는 독특한 집단이었고, 그것이 통일왕조의 중용한 동력원이 되기도 했다는 점은 이전 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집단 하나만으로 중국 전역을 통치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황실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 역시 절대적인 충성심이라기보다는 집단의 대표라는 인식이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577 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3:16 (KST)답변

자 그쪽에서는 해외 위키백과의 내용을 들어 관롱집단이 순수 선비족으로만 되있다고 주장하고 계시죠. 과연 그럴까요? Chinese nobility 문서를 봅시다


The northwest military aristocracy was where the Sui dynasty Emperors originated from[35] and they emphasized that their patrilineal ancestry was ethnic Han,[36] claiming descent from the Han official Yang Zhen.[37] and the New Book of Tang traced his patrilineal ancestry to the Zhou dynasty kings via the Dukes of Jin.[38] The Sui Emperors had maternal Xianbei ancestry from a woman of the Xianbei Dugu family.

The Guanzhong noble families of Han Chinese background married the Northern Zhou Xianbei Yuwen family.[39][40]

The Tang dynasty Imperial family claimed to be paternally descended from Laozi (whose personal name was Li Dan or Li Er),[41][42][43] the Han dynasty General Li Guang,[44][45][46] Qin General Li Xin and Western Liang ruler Li Gao. This family was known as the Longxi Li lineage (隴西李氏). The Tang Emperors had Xianbei maternal ancestry,[47][48] from Emperor Gaozu of Tang's Xianbei mother Duchess Dugu.[49][50] Ancient Han ancestry was asserted by the Tang and Sui Emperors.[51] [52]

The northeastern Chinese aristocracy during the Sui-Tang period was of pure Han blood, while they looked down upon the northwestern aristocracy which was of mixed Han and Xianbei blood. The hybrid mixed blood Chinese and Northwestern (Guanlong) 關隴集團 aristocracy was where the Sui dynasty Emperors and Tang dynasty Emperors originated from.[53][54] It came from their Xianbei mothers.[48][55][56][57][58][59][60] Dugu Tang Sui Guanlong[61][62] Sui.[63][64] China was reunited by them.[65][66][67][68] The Northeastern aristocracy supported Wu Zetian while the Northwestern aristocracy opposed her.[69] The northwestern aristocracy was countered by the northeastern aristocracy who were supported by the Sui Yangdi Emperor.[70] There was not necessarily unity on political positions within both the northeastern and northwestern aristocracies.[71]

첫번째 문단에서는 수와 당의 황실이 자신들이 한족임을 주장하며, 당서에서는 자신의 기원을 주나라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는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문단에서 고대 한족 조상은 당과 수 황제에 의해 주장되었음과 동시에 모계는 선비족이다. 이런식으로 주장하고 있죠. 어딜 찾아봐도 순수 선비족 혈통이라는 내용은 없습니다.그리고 마지막 문단에The hybrid mixed blood Chinese and Northwestern (Guanlong) 關隴集團 aristocracy was where the Sui dynasty Emperors and Tang dynasty Emperors originated from.이라고 되어있죠? 이는 즉 관롱집단이 호한혼혈 집단임을 의미하는겁니다. 그ㅐㅐ11 (토론) 2019년 10월 29일 (화) 03:46 (KST)답변

게임할 때 오토돌리는 것들 보면 우리는 말한다 " 저거 100% XX임" 조선족 쭝궉 혼혈들이 조용히 살진 않고 기어와서 애꿋은 대한민국 사람들만 고생시키네 쯧

문서 보호 편집

편집분쟁이 장기화된 것으로 확인되어 문서를 보호합니다. 문서 판은 어느 한 쪽의 판도 아닌 현재의 되돌리기 분쟁이 시작되기 이전 상태에 해당하는 2019년 6월 22일 (토) 19:13 판으로 임시 복구하고, 문서를 보호하였습니다. 서로 토론에 임하여 문서 편집의 방향을 정하여주시고, 토론을 일방이 회피한 뒤 보호해제 이후에 문서편집을 강행하는 경우에는 편집 방해로 차단사유가 될 수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합의된 편집이 있는 경우 알려주시면 그 부분을 반영하여 처리하겠습니다. --Sotiale (토론) 2019년 11월 2일 (토) 00:26 (KST)답변

@Sotiale: 특수:차이/25115925 판은 본인이 새롭게 보강한 내용이며 합의된 편집입니다. 본인의 편집 이후에는 특수:차이/25116327에 추가된 개요 부분, 즉 아래와 같은

관롱집단은 선비족들의 무사 집단을 가르킨다 북위 말기부터 서위, 북주를 거치는 동안 위수 지역을 중심으로 뭉친 선비족 집단에서 출발했다. 북위를 멸망시키고, 동위, 서위로 선비족의 북조가 분열되었을 때 서위의 선비족인 우문태는 서방 중심지로 위수 지역의 관중 지방을 선택했다. 선비족인 우문태는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강력한 선비족 군부가 필요했는데 이때 북위때부터 있었던 선비족 무사 집단 관롱집단을 이용했다. 수나라를 세운 양견도 이 선비족 관롱집단 출신이다. 이 관롱집단은 원래 선비족의 본거지로서 선비족과 연결되는 지역이다. 실제로 문벌 귀족들의 족보를 따지면 한족화된 이름을 쓸려고 했던 선비족이 대부분이지만 8주국 관롱 집단은 예전부터 혈통의 순수성을 지켜오기 위해 선비족끼리 결혼 하였다.

북위가 처음 나라를 세우고 북조를 통일했을 때 이 관중 지방에 많은 선비족들이 이주했다. 북위가 효문제의 한자 사용을 추천하고,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자 이 관중 지방의 선비족들은 원래 한족들을 정복하고 낙양으로 이동하였다. 서위 멸망 후 북주의 중심지가 위수 지역이 되자, 북주 총관 양견 등 관롱집단의 사람들이 대거 관료가 되어 기용되었다. 양견은 어릴때의 이름도 선비족의 이름으로 금강나라연이였고 보육견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양견이 수나라를 세우자 선비족의 관롱집단 한족들을 피지배인으로 만들고. 건국 공신으로 세를 떨치게 되었다.이 관롱집단은 결국은 선비족끼리 결혼하여 혈통을 유지한 선비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연은 선비족인 독고씨와 친척 관계이다. 양견과 이연은 이종사촌간이었는데, 결국 수와 당의 교체는 왕조의 교체보다 선비족의 관롱집단간의 지배체제 변화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관롱 집단의 성격상, 수나라와 당나라는 해외 학계에서는 중국인이 아닌 선비족의 역사로 인정되는 것이 정론이다. 왜냐면 북위의 선비족 지배층들이 중국인 한족들을 정복하여 중국인들이 피지배민족이 된 북위에서부터 이어져온 수나라, 당나라 또한 지배층이 선비족 순수 혈통이였으며 피지배민족인 중국인들은 평민이나 하위 계층으로 머물며 상위 계층으로 가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분을 추가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의 편집은 분쟁과는 연관이 없으므로 보호해제 이후나 토론 여부에 관계없이 이 부분은 반영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종코 (토론) 2019년 11월 2일 (토) 01:50 (KST)답변

@115.23.23.39: @그ㅐㅐ11: 종코 님의 주장을 살펴보면, 실제로 되돌리기 분쟁은 ‘개요’ 부분에 대한 분쟁으로 보이며 종코 님의 기여분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상호 인지하셨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타당한 주장으로 생각되며,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으면 현재 문서 내용에서 종코 님의 기여를 삽입하여 보호판을 변경하고자 하니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Sotiale (토론) 2019년 11월 2일 (토) 11:32 (KST)답변
@Sotiale: 종코님의 편집을 존치시키는데 대해 동의합니다.그ㅐㅐ11 (토론) 2019년 11월 2일 (토) 12:02 (KST)답변

며칠간 별다른 이의제기가 없고, 편집분쟁 당시 삭제된 내용을 고려하면 주장에 타당성이 있어 해당 내용을 반영합니다. --Sotiale (토론) 2019년 11월 5일 (화) 23:00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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