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된 사람이 외국에 유학 가서는 안 된다는 의론 편집

방금 서구 각국이 흥성하여 학술과 기예가 동하(東夏) 여러 나라에 와서 통하고 있다. 동방 여러 나라가 만약 여기에 대응하여 제어할 계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마땅히 연접하고 인습하여 역으로 서구의 법을 써서 제어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혁신이 비록 옛 사람의 생각은 아니지만 시대를 따라 처변함은 성인이 권도를 사용한 한 가지 방법이었다. 동하(東夏) 여러 나라에서 연소하고 총명한 자제를 보내 서구 각국에 가서 배우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어리고 철없는 아이들이 출세하는 데 열중하여 간혹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임금의 명이 없는데 함부로 날뛰기만 한다. 배운 것도 거의 일컬을 게 없다.

가만히 생각건대 도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학문에는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 있다. 덕행은 근본이고 학술과 기예는 말단이다.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따른다면 나는 그것이 옳은 줄 모르겠다. 덕행은 오직 효가 먼저 할 것이고 충은 그 다음이다. 효를 잘한다면 충은 절로 그 안에 있다. 따라서 왕자(王者)가 인정(仁政)을 행할 적에도 효를 일으킴을 먼저 할 일로 삼았다. 저들 나이 어린 무리들이 자기 한 몸의 출세를 위해 임금의 명도 없는데 그 부모를 가볍게 저버리고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것이 효도하는 방법에 있어 얼마나 어긋나는 일인가.

보통 사람이 자식을 아끼는 정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실타래가 여러 가지 있어서 하나둘이 아니다. 자식 된 자가 어찌 차마 이를 저버리는가. 이것을 차마 저버릴 수 있다면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도 그러하니 하물며 의리로 합쳐진 임금이겠는가. 저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큰일을 노리는 사람은 작은 절차에 구애받지 않는다. 부모를 위해 뜻을 받들고 몸을 받드는 것은 효의 작은 것이다. 입신양명해서 한 나라에 공훈을 세워 부모를 빛내는 것은 효의 큰 것이다.”

또한 서법(西法)의 기술에 현혹되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왕(先王)의 도는 말할 게 없다. 이것은 옛날 도이다. 동하(東夏)의 법은 본받을 게 없다. 이것은 옛날 법이다. 옛날은 오늘날과 부합하지 않으니 하나같이 쓸어버리고 혁신해야 옳다.” 그리고는 서로 격려하고 분기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데 금지할 수 없다.

아! 저들의 철없고 무식함이여! 설령 학문이 완성되어 부모를 빛낸다 해도 그간 부모에게 근심을 끼친 것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또, 오래 떨어진 동안 부모가 곤경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이 지경이 되었다면 하늘을 다해도 그치지 않을 원통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또, 뜻을 받들고 몸을 받드는 게 효의 작은 것이 아니다. 효에 어찌 크고 작음을 분간하겠는가. 크고 작음을 가릴 것 없이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어서 온전하게 성취해야 옳다. 근본에 어둡고 먼저 할 일을 모르니 당연히 큰 것을 작은 것이라 하고 한갓 말단을 따르기만 하는 것이다. 아! 뜻을 받들고 몸을 받드는 한 가지 일이 작은 절도가 아니다.

또, 기술에는 본디 동서고금의 차이가 있지만 도에 언제 동서고금의 차이가 있었던가. 시대를 따라 처변하는 것이 법이다. 옛날이 지금과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시대를 따라 처변하는 법이 또한 도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뜻을 끝내 저들은 모르는 것이다.

서구의 법은 참으로 신이하고 정묘해서 오늘날 반드시 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철없고 역량 없는 무리들로서는 결코 이를 배울 수 없을 줄로 나는 안다. 어째서인가? 이 무리들은 우선 기국(器局)이 깊지 않고 취향(趣向)이 정해지지 않아 각각 자기 나라에 있는 큰 줄기 보통 학문도 대충 통하지 못했거늘 하물며 다른 나라에서 평소 알지 못하는 신묘한 기술을 어찌 대번에 논의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먼저 동하(東夏)의 경서와 역사책을 대략 통하게 하고 선왕의 정도를 대략 들려주어 부모를 섬기고 임금을 섬기는 큰 근본을 알게 하며, 겸하여 역대 치란과 사변의 원인이 되는 큰 단서를 통하게 하여 근기를 세운 연후에 마침내 서구의 기술에 미쳐서 확충하고 채색하게 한다면, 그 기술이 근본이 있는 기술이 될 터이고, 말단이 되는 일에서 조처한다면 끝내 임금과 부모를 겸하여 지키고 집과 나라를 아울러 구원하는 큰 업적이 될 터이니, 이 어찌 근본과 말단에 순서가 있고 큰 것과 작은 것을 겸하고 아우르며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이 어그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고 대번에 말류 기술에 미쳐 단지 출세하기를 노릴 뿐이라면 자기 부모를 저버리는 저들의 소행으로 보건대 어찌 다시 임금에게 미치는 의리가 있겠으며, 필시 변란을 따라 뜻을 바꾸고 세력을 좇아 이익을 다투어 한갓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니 자기가 입신해서 부모를 빛내는 일이 된다는 게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자식 된 자가 유학하는 일은 반드시 부모가 허락하고 임금이 보낸 연후에야 가하다. 또, 부득이한 까닭으로 차마 취학하려는 마음이 있은 연후에야 가하다.


〈원문〉 爲人子者不可以遊學外國論 方今西歐各國盛興 術學技藝 來通東夏諸邦 東諸邦 如未有對擧壓制之策 則亦當延接襲循 以其法反制之 亦未爲不可 就新雖非古意 而隨時處變 亦聖人用權之一道也 所以東夏諸邦 擧遣年少聰俊子弟 就學于西歐各國 而就中最少沒覺 惟事進取之輩 或不聽父母之言 未有君上所命 而徑自奔就 學亦鮮有可述焉 竊以爲道有本末 學有先後 德行本也 術學技藝末也 捨其本而就其末 吾未知其可也 德行惟孝 又爲其先 忠次之 能孝則忠自在其中 故王者之行仁政 亦以興孝爲先焉 彼少年輩 爲一身之進取 未有君上所命 而經(輕)棄其父母 蔑復有顧 則其於孝之道 爲何如哉 凡人愛子之情 有多般緖結 不可名狀非止一二矣 爲人子者 其何忍負之 此若忍負於天倫其親 則況於其以義合之君上哉 彼爲說者曰 圖大事者 不拘小節 爲親之養志養口體 卽孝之小者也 立身揚名 樹勳業于一國 以顯父母者 爲孝之大者 且眩惑于西法之技術 以爲先王之道不足道也 此古道也 東夏之法不足法也 此古法也 古於今爲未合 一掃就新可也 相與鼓勵奮起 擧世喧動 莫可禁止焉 噫彼之沒覺無知也 借使學成顯親 其間貽憂父母 不可形言 又或遭艱于久離之餘 亦未可知也 如到此境 則其爲窮天之痛 尤當何如哉 且志體之養 亦非孝之小者也 孝豈有大小可揀 當無大無小 有始有終 而全就之可也 昧乎其本 不知所先 宜其認大爲小 徒趍其末 噫 養志體一事 此非小節也 且技術固有東西古今之有異 而道亦安有東西古今之有異乎 隨時而處變者法也 古於今未合固也 而終不知其法之隨時處變者 亦本乎道之意也 西法固是神異精妙 可爲當今之必行者 而然以若輩之沒知力量 吾知其爲斷不能學也 何者 此輩爲先器局未深 趣向無定 而各其邦所有大經平常之學 猶未能略通 而況乎他國素昧神妙之術 何可遽議乎 必也早先略通東夏經史 使略聞先王之正道 知其事親事君之大本 兼達于歷代治亂事變所以然之大端 以立其根基 然後乃及乎西歐技術 擴充而文飾之 則其技術可爲有本之技術 而措之於末流事 爲終當爲君親兼保 家國竝濟之大勳業矣 此豈不爲本末有序 大小兼竝 先後不舛者乎 如其不然 而遽及乎末流技術 只謀進取而已 則以若遺其親之彼輩所爲 豈復有及君之義 而必隨變易志 逐勢爭利 徒亂人國矣 烏在其爲立身顯親者哉 然則爲人子遊學之事 必當父母許之 君上送之 然後乃可也 又有以不得已之故 當有忍就之心 然後乃可也


- 육용정(陸用鼎), 〈자식 된 사람이 외국에 유학 가서는 안 된다는 의론[爲人子者不可以遊學外國論]〉, 《의전문고(宜田文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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