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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편집

  • [1] 제가 편집한 부분의 판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3:55 (KST)
  • [2] 제가 편집한 판입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3:58 (KST)

흉노와 훈족 동족설편집

// 흉노족 = 터키 // 훈족 = 헝가리 또는 불가리아 //

현재 제가 애초에 만든 문서 포맷이 다 뒤틀렸고, 흉노의 역사, 제도 등을 순서적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부분부분 다 고친 것인데 한꺼번데 다 되돌리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흉노-훈 동족설이 다수설이라는 말은 신빙성이 없으며, 지금과 같은 포맷 자체가 문제가 있습니다. 역사 - 제도 - 언어 - 다민족과 동족설 등을 순서대로 설명했으면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제가 일단 편집해놓은 것을 놓고 했으면 좋겟습니다. 기존 raiser님의 편집은 다 저장되어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3:17 (KST)

다수설이라는 표현은 어느정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인데, 제가 알기로는 대체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판단은 훗날 몽골제국이 강할 때 몽골인들이 아닌 유목민들도 스스로 '몽골인'이라고 칭한 것처럼, 흉노가 강했기 때문에, 흉노가 아닌 부족들이 마음대로 '흉노'를 차용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 유목민들은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의 소속감을 유지하기보다는 강한 부족의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훗날 돌궐이나 위구르 등이 갑자기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되고요. 또한 흉노-훈 동족설을 반박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있는데, 우연히 이름만 같을 뿐이며, 사료나 언어학적으로 규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결정적으로 유목민족들이 단기간에 초원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과 반대로, 남북흉노의 분열에서 훈족의 출현까지 약 150년간의 공백이 있습니다. 과연 다수설일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3:31 (KST)

제가 참고한 일본인들의 서적에는 흉노-훈 동족'설'이고 명확하지 않다고만 나와 있습니다.(역사 자료가 부족하여 약 150년 정도는 연관성을 쉽게 말하기 어려운 바가 있습니다) 또한, 영어판을 봐도 결론이 명확하지는 않다고만 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부분은 현재 '가설'이라고만 해두는게 좋겠습니다. 포맷에 관한 부분은 다른 민족이나 나라를 설명한 문서를 보시면 쉽게 아시리라고 봅니다. 중국과의 관계 이 부분은 역사 부분으로 통합하면 되고, 훈족, 한민족과의 관계는 흉노 자체로 보면 부차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뒤로 돌렸으면 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3:24 (KST)


이 부분은 이설에 대한 병기가 좋은 해답인 것 같습니다.

  • '흉노가 훈족과 동족이라고 간주하는것이 다수설이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주석]" 이런 표현이 어떨까 합니다.

자세한 내용을 소스 제시해주시고 주석에 설명해 주세요. 다수설이라는 근거는 영어판 위키피디아에서도 Northern Xiongnu becoming the Huns 북흉노가 훈족이 되었다고 하고 있으며 이것에 대해서는 dispute가 없는 것 같습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3:56 (KST)

일단 위키백과 자체는 출처로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raise님이나 저와 같은 일반인들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좀더 전문적인 자료가 필요하며 아울러, 영어판의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DNA testing of Hun remains has not proven conclusive in determining the origin of the Huns." - DNA테스트로는 훈족의 기원을 명확하기 설명하기 어렵다

"Although the phonetic side of the question is not conclusive," - 음성학적으로도 결론내기 어렵다

"The Hunnic cauldrons are similar to the Ordos Xiongnu ones." - 하지만 문화 솥 등 유적은 비슷하다.

하지만 흉노=훈이 다수설이라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문적인 학술지 등에서도 흉노-훈이 동족이라는 것이 다수설이라면 당연히 넣을 수 있는 부분이고요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12 (KST)

저의 제시안 "흉노-훈 동족설이 있는데, 실제 동족인지 아닌지는 결론나지 않았다. 음성학적으로 밝혀내거나 사료로 밝혀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흉노, 훈 이름이 비슷하고, 일부 문화적인 부분이 비슷하다. -> 동족설=다수설이라는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독자가 읽고 동족설이 맞을지 안맞을지 판단하게 하는 쪽이 좋다고 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22 (KST)
밑의 다수설이라고 했고, 흉노, 훈 이름이 비슷하고, 일부 문화적인 부분이 비슷하다는 것은 엄청난 "동질성" 아닐까요? 디테일한 부분은 사료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고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5:01 (KST)

scholar.google.com 검색을 추천합니다. [3]

관련 학술 서적 대부분이 The Xiongnu(Eastern Huns) 으로 훈의 조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google에서 검색해봐도[4]

첫페이지에서 당장 훈족과 관련되있다는 내용이 대부분 The Xiongnu Tribes or the Xiongnu People (old: Hsiung-nu) are often identified with the Huns that invaded Europe in the 4th century and with the White Huns (Hephthalites) that invaded northeastern India.[5]

저는 분명히 둘의 관계가 100%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으며, 흉노와 훈이 동족이다라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라고 서술했을 뿐입니다. 이 경우는 그 쪽에서 "나의 주장이 다수설이다" 라고 입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바다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라는 것 보다, 바다에서 (바다에 살지 않는) 판다를 건져오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요?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24 (KST)

저는 흉노=훈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가 없으며, 다만 흉노=훈 이라는 주장이 다수설인지 잘 몰라서 출처 제시를 요구한 것입니다. 위에 올려주신 자료를 주석 처리하면 '다수설'이라는 주장에 신빙성을 더할 수 있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29 (KST)
다수설의 기준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학술 자료에서 인정하면 다수설이 되는 게 아닐까요? 물론 저도 흉노와 훈이 100%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흉노는 헝가리의 역사가 되기 때문.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34 (KST)
흉노-훈 동족설 자체를 연구한 연구자료가 있다면 거기에 나올 텐데요.. 제가 한자는 기초적인 것 이상은 잘 읽지 못해 중국 쪽에서 만든 자료는 잘 읽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어, 영어로만 된 논문, 저서 등을 볼 때, 다수설이라기보다는 그냥 '명백하지 않다'라는 결론밖에는 낼 수 없다고 생각되고요. 그리고 애초에 현재 흉노-훈 동족설 자체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en:Huns에도 보면 여러가지 동족설과 비동족설의 근거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지지하는 설은 "Many clans may also have claimed to be Huns simply based on the prestige and fame of the name or it was attributed to them by outsiders describing their common characteristics, believed place of origin, or reputation.[9] Similarly, Greek or Latin chroniclers may have used "Huns" in a more general sense. All we can say safely", says Walter Pohl "is that the name Huns, in late antiquity, described prestigious ruling groups of steppe warriors" 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43 (KST)
그러니까 소스 제시하고 이설병기하면 된다니까요? 저는 이설 병기를 찬성하며 반대한 적 한번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뭐가 논쟁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55 (KST)
아울러 세번째 출처의 앞 부분은 "흉노는 때때로 훈족과 같다고 여겨지지만, 두 종족의 이름만 가지고는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는 내용으로 파악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31 (KST)
"...간주되지만... 명확하지 않다" 저도 이 것에 동의하고 있고, 어차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아닌가요? 이 논쟁은 무의미 한 것 아닙니까? 다수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시고*(scholar.google.com 에서 검색해서 흉노와 훈은 다른 민족이다! 라는 학술 자료가 단 하나라도 나온다면 고려해보겠습니다), 다수설이라는 표현이 그래도 마음에 안 들경우, "...간주되지만... 명확하지 않다"라는 식으로 바꾸면 됩니다. 동족설을 증명할 100% 확실한 방법은 없기 때문.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38 (KST)
제 의견은 두 가지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는 것이지 특정 의견이 다수설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43 (KST)
솔직히 팽팽히 맞서고 있다는 내용은 처음 듣습니다.
우리가 동북공정으로 중국과 논쟁하듯, 헝가리와 터키. 몽골 학자가 서로 달리 주장하나요? "누가" "어떤 내용으로" 팽팽히 맞선다는 것입니까? 말씀하신 책의 일본학자?
그러니까 '팽팽히 맞서고 있다면' 그 counterpart의 소스를 제시해주시면 됩니다. 저도 이설을 병기하는 쪽으로 편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느쪽이 다수설인지는 구분하는쪽으로
다시 말하지만 scholar.google.com 에서 검색해서 흉노와 훈은 다른 민족이다! (혹은 그와 비슷한, 훈족과 관련성을 떼놓을려는 취지의 학술자료)라는 학술 자료가 단 하나라도 나온다면 고려해보겠습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47 (KST)
제가 몇개 뒤져봤는데, 흉노=훈으로 결론내린 자료의 수가 '대다수'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는 관련성은 인정되나 흉노=훈이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3번 자료의 내용도 그것이고요)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흉노와 훈은 완전히 무관하다는 연구는 당연히 극소수겠지요. 대부분이 흉노=훈은 완전 같다 혹은 어느정도 연관이 있다, 혹은 위에 제가 올려놓은 것처럼 흉노나 훈은 호(胡)처럼 이민족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일 뿐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이 중 어떤 주장이 다수설인지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여전합니다. 흉노와 훈이 관련이 있다는 말과 흉노=훈이다는 내용은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한민족과 일본 민족이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는 말과 한민족=일본민족이라는 말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53 (KST)
대체적으로는 관련성은 인정되나 흉노=훈이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 소스 제시 요망 (저도 그 쪽 주장을 알고 싶기 때문) 만약 출처가 없으면 내용은 반려합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의심되는지, 저도 그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URL 제시 부탁합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55 (KST)
  • 일단 흉노=훈이 다수설이라는 것에 대한 적절한 논문, 저서 등 출처가 전혀 없습니다. 아울러 [6]에서도 볼 수 있듯, 흉노=훈 동족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며, 아울러 영어판이나 구글 검색에서도 흉노=훈이라고 확증하는 자료는 구하지 못했습니다. 구글에서 'xiongnu hun'으로 검색한 결과 중 해당 주제에 대한 어느정도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진 몇개만 찾아봤습니다.
  • [7] - 흉노와 훈은 연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완전한 동족인지는 명백하지 않다.
  • [8] - 흉노=훈이라고 가정(근거는 제시되지 않음)한 서술의 예
  • [9] - '흉노'라는 이름은 이후 '몽골', '타타르'처럼 지배적인 유목국가를 뜻하는 표현이며, 다양한 혈연집단이 이 표현을 사용했다. Pulleybank는 흉노의 기원이 시베리아라고 밝혔으나, 훈족의 기원은 원시-투르크인이었다.
  • [10] - 흉노=훈이라고 가정하고 흉노의 문화를 서술. 근거는 제시되지 않음.
  • [11] - 중국사 책. 흉노에 관한 부분이 있는데, 흉노=훈으로 되어 있다. 그에 대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 [12] - 훈족의 기원에 관한 글로 흉노에 대한 부분이 있는데. 다 확인은 하지 못했음.

이상으로 볼 때, 흉노와 훈이 같은 종족이라는 주장이 '다수설'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듭니다. 흉노-훈 동족설도 여러가지 이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9:25 (KST)

  • 브리태니커에 나온 흉노
한편 흉노족이 5세기에 로마 제국을 침략했던 훈족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브리태니커 흉노 항목의 부분이고요,

5, 6세기에 인도와 이란을 침략한 헤프탈족과 일찍이 중국인에게 알려진 흉노족이 훈족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들과 훈족과의 관계는 지금도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훈족 항목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저정도 수준의 표현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12:38 (KST)

흉노는 중국 한족이 부르는 명칭으로 한족은 한족이 아닌 모든 민족을 오랑케로 지정하여 이름을 아주 나쁘게 고쳐불렀습니다. 그 예로 몽골족을 보면 '용맹한' 이라고 하는 뜻을 가진 '몽골'을 '무지목매한'이라는 뜻의 '몽고'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흉족도 흉노가 아니라 원래 흉족이라고 보아야 옳습니다. 그리고 '흉'족의 흉을 유럽사람들은 올바르게 발음을 하지 못하여 훈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헝가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헝가리는 'HUNG'를 우리가 발음하기 쉬운 발음으로 하면 흉으로 발음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유럽으로 들어가서 유럽인들과 살면서 발음이 '헝'으로 발음하게 된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흉노족은 흉족으로 고쳐불러야 하며, 훈족과 동일한 민족이며, 헝가리는 흉족의 후예중에 유럽으로 이주해들어간 민족입니다. 이것은 중앙아시아에 대해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터키에서 대학교 교수를 하신) 최한우교수님의 저서에서도 잘 나오고 있습니다.

연구자에 따라 여러가지 설들이 나와 있으며,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 관계는 있지만 흉노=훈이라고 바로 말할 수 있는 지는 불명확하다는 정도로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헝가리의 'Hung'이 과연 '흉'으로 발음될 수 있는지는 본인의 주장이 아닌 '전문가의 연구'를 출처로 제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5월 22일 (금) 20:37 (KST)

흉노의 한반도 북부 진출설편집

추가하자면, 흉노가 한반도 북부까지 갔다는 것에 대한 근거가 없으며, 동호=예맥에 대한 근거도 없습니다. 아울러 한나라가 흉노의 속국이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모돈 선우 이후에는 한나라가 흉노에게 크게 밀리지 않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3:18 (KST)


당시 흉노의 동부에 있는 것은 예맥뿐이고 예맥족들이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한나라가 흉노의 '사실상의 속국'이라는 내용은 한무제 이전과 이후를 달리해서 구분하고 있습니다. 모돈선후 이후에 한나라가 흉노에 밀리지 않았다는 근거를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07 (KST)

예맥이 고구려의 본류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동호=예맥이라는 부분이 출처가 부족합니다. 모돈 선우가 등극하던 순간의 흉노는 몽골 고원을 죄다 아우르는 세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흉노 동쪽에 예맥만 있다는 주장 역시 신빙성이 없습니다. 아울러 현재 책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주석으로 제시한 사와다 미사오의 책에는 모돈 선우 이후의 노상 선우, 군신 선우 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에도 흉노는 꾸준히 공물을 받고 있었지만, 백등산 전투와 같은 큰 승리를 거둔 적은 없으며, 한나라 국내 정치에도 큰 영향은 주지 못했습니다. 양국 관계가 속국 관계라고 하기는 힘들다고 보며, 아울러 속국 관계였다는 전문적 연구 내용 없는 주장은 흉노측의 입장만 반영된 것은 아닐지요? 백등산에서 대승을 한 이후에도 '형제 관계'만 했던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도 한 예가 되는데, 애초에는 형제 관계였던 것이, 남한산성의 굴욕 이후에 군신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18 (KST)
저는 속국이라고 한 적 없고, 속국과 비슷한 관계라는 취지로 서술했으며, 공물을 바치고, 공주를 시집보내며, 흉노의 침략을 막기위해 전전긍긍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흉노가 한나라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후에도 백등산 전투같은 승리를 하지 않았다고, 불평등 관계가 해소됬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또한 현재 흉노 관련 사료는 전부 중국측 사료이며, 중국측 사료는 적국 흉노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로 채워졌다는 것은 감안하고, 객관적으로 중국 역사서의 서술을 파악하셔야 균형잡힌 시각일 것입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29 (KST)
중국측 사료가 편향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료에 '형제 관계'로 나온 것을 '군신 관계'인 것처럼 서술하시는 것은 명백한 독자 연구입니다. 형제관계와 군신관계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32 (KST)
명백하게 군신관계가 됬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의 속국의 불평등한 관계라는 취지로 서술한 것입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41 (KST)

불평등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후 문서 내용은 그 부분을 상당히 수정하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44 (KST)

이후에 내용을 수정한 적 없습니다. 글자를 수정한 것은 "대들었다" 는 조금 강한 표현뿐입니다. 그 부분을 상당히 수정했다는 말은 모르시고 하시는 말 같고.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59 (KST)
형제관계를 맺고 공물과 공주를 주었다는 대목만 가지고 "한나라가 강대국 흉노에게 대들었다"라는 식의 표현을 쓴 것은 모르고 쓰신 것은 아니겠죠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9:26 (KST)

흉노와 한민족 관련설편집

또 추가하자면, 흉노와 동이가 충돌했다는 역사적 사료가 없다고 하여 부여가 흉노의 세력권이라고 추측하셨는데 이는 독자 연구 금지를 위반하는 편집이라고 사료됩니다. 아울러 고구려가 흉노에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왕망이 고구려를 '하구려'로 비하한데 대한 반발감으로 요서를 공략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3:19 (KST)


고구려가 왕망의 영토를 유린한 내용은 어느 정도 독자 연구일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표현을 수정해서,

후한서 고구려열전(高句麗列傳)에서는 왕망이 중국 전한(前漢) 왕조를 파하고 신나라(新, 8∼23)를 세운 후 흉노를 정복하겠다며 고구려에 병력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고구려는 이를 거절하고 요서를 공략했다. 일부는 이를 고구려인들은 왕망이 보낸 요서대윤(遼西大尹) 전담(田譚)을 전사시킬 정도로 흉노와 진한 동질감을 갖고 있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라고 하면 어떨까 합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10 (KST)

고구려가 왕망의 영토를 공격한 것은 독자연구는 아닙니다. 다만, 고구려의 요서 공략과 흉노와의 동질감이 바로 연결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당나라와 '동질감'을 가지고 있어서 동맹을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고구려가 흉노에 대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결과가 주석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14 (KST)
그것을 "동질감"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일부는' 이라는 표현을 추가했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42 (KST)
네 아울러 그런 해석에 대한 출처가 필수적이겠고요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44 (KST)

목차편집

예를 들어 영어판 목차를 보면

  1. 기원
  2. 위치
  3. 문화
  4. 고고학적 내용
  5. 역사
  6. 흉노-훈 동족설

의 순서로 되어 있으며, 한국어판에서는 역사를 앞으로 당기고 나머지 제도, 문화 등을 설명하려 하였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3:40 (KST)

중국어판은

  1. 기원
  2. 역사
  3. 관련 사료
  4. 지리환경
  5. 경제
  6. 인구
  7. 정치
  8. 군사
  9. 종교
  10. 언어
  11. 중요인물
  12. 선우 목록

의 순서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3:42 (KST)


솔직히 목차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영어판이 간단하므로 영어판을 기본으로 필요 목차를 더 추가하는 방식이 어떨까 합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02 (KST)

최소한 현재 목차는 상당히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 영어판, 중국어판과도 매우 다르고, 고구려, 백제등과도 너무 다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07 (KST)

기타 의견편집

문서 위부터 순서대로

  • 도입부가 지나치게 길다
  • 전체적으로 '중국'과 '한나라'를 혼동하고 있다. 한나라와 다툰 것은 한나라로, 역대 중국 제국과 다툰 것은 '중국'으로 명확히 나누어 표기해야 한다.
  • 산해경=소설이라는 말은 개인적 논평일 뿐이며, 흉노와 관계도 없는 내용이다
  • 흉노가 투르크, 몽골, 만주-퉁구스, 한민족 등의 연합체라고 하는데, 특히 한민족이 흉노의 일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 헝가리, 터키, 몽골이 훈 또는 흉노를 자신의 조상으로 가르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출처가 필요하다
  • 한나라 = 흉노의 속국이라는 표현은 개인적 논평의 성격이 짙다. 모돈 선우 이후에 흉노와 한나라는 비교적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 중국측 사서 및 역사서가 편향적이라는 것은 당연한 말로, 지금처럼 길게 서술할 이유가 없다. 또한, 중국측 사서와 역사서의 편향성은 기본적으로 흉노와 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주석 처리하면 된다.
  • 한 무제 이후에도 흉노가 한나라보다 우세하다는 견해는 따르기 어려운 견해이다. 초원 남부 지대를 상실하고, 서역 등을 상실한 흉노가 여전히 한나라보다 우위에 있음을 설명하는 자료가 필요하다.
  • 한민족과의 관계를 다룬 부분에서 자의적인 부분이 많다. 인용된 진나라 복생의 자료(상서대서의 서지사항이 있으면 좋겠음)는 오히려 부여가 다른 동이족들을 다스리고 있었다고 해석되는 자료이다.
  • 고구려가 왕망과 싸운 것과 고구려가 흉노와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추측'으로 독자연구에 해당된다
  • 즉, 한민족 부분에서 남길 수 있는 부분은 손권이 동천왕을 '선우'로 칭했다는 부분이나(이 역시 당시 이민족들의 수장을 대체적으로 선우로 불렀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 견해에 대해서는 좀 찾아보도록 하는게 좋겠음), 문무왕 능비 뿐이다.
  • 흉노의 영토가 한반도 북부에 다다랐다고 하는데, 당시 한반도에는 고조선이 존재했고, 아울러 사마천이 동호=예맥이라고 했다는 부분에 적절한 출처가 나와있지 않다.
  • 무제가 죽은 후 300년간 평화롭게 지냈다. -> 무제 사후에도 전쟁이 계속되었으며, 동서분열, 남북분열 시기에 흉노는 한나라에게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 350년 한족과의 전투에서 북흉노의 결정적인 패배 -> 350년에는 이미 흉노를 계승한 전조가 멸망한 뒤이므로 잘못된 서술
등에 근거하여 adidas가 편집하다 중지된 판 [13]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06 (KST)

  • 그럼 도입부 부분을 축약해봅시다.
도입부의 긴 서술은 본문에 녹여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 중국과 한나라가 다릅니까? 흉노는 전국시대와 진나라, 한나라를 괴롭혔는데, 한나라 시대 하나로만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
한나라만 다룬 부분과 전국시대, 진, 한 등을 아우르는 부분은 구별해서 서술해주는 것이 독자 입장에서는 좋지 않을까 합니다.
  • 청나라 시대의 '국책 백과사전', 사고전서에 산해경은 소설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산해경은 중국 제일 오래된 책이고, 물론 이 내용이 문제가 된다면, 최초의 소설이라는 내용을 삭제하고, "신화적인 내용이 많다"라고 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것이 훨씬 백과사전적인 서술이라고 보여지며 아울러 사고전서를 주석으로 달아주면 더욱 좋겠습니다.
  • 명확하지 않은 한민족 흉노설은 이설 병기. 한민족 흉노설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 이것은 독자 연구가 아닙니다.
한민족 흉노설은 있지만 한민족이 흉노의 일부로 흉노의 활동에 참여했다는 주장은 독자 연구입니다. 신라의 김알지가 흉노의 자손이라고 치더라도, 김알지와 흉노의 전성기는 상당한 시대적 차이가 있습니다.
  • 형과 아우의 관계가 대등한 관계일까요? 흉노가 한나라에게 조공을 바쳤습니까? 공주를 바쳤습니까?
형제 관계와 군신 관계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은 위에 서술하였습니다.
  • 다른 이의 제기 부분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소스 제시해 주시고, 이설 병기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17 (KST)

내일 다시편집

죄송하지만 제가 너무 피곤하여 더이상 토론에 참여하기 어려움을 알려드립니다 ㅠㅠ 정말 죄송합니다. 아울러 이런 경우에 단순한 편집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은데, 친절하게 토론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현재 판에다가 제가 의문을 제기하거나 출처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표시하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저도 공부를 좀더 해서 다시 편집에 참여하겠습니다. raise님의 좋은 편집 기대하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24 (KST)

아울러 주석에는 현재 출판된 논문, 단행본 등 '전문자료'를 가능한한 서지사항과 함께 기재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현재 보면 주석에 문헌 표시된 부분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28 (KST)
일단 주장하신 부분의 학술 자료의 제시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설을 병기하는 방식으로 편집하면 될 것 같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43 (KST)
애초에 제가 출처를 제대로 달지 않았다는 부분은 반성하고요, 차후에는 최대한 출처를 다 달도록 하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45 (KST)

흉노와 묘족편집

해당 구절은, ‘匈奴, 其先祖夏後氏之苗裔也 - 흉노는, 그 선조가 하후씨의 후예이다.’라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사실과 다른 본문의 내용을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본문으로 되돌려 놓으려면 신뢰성 있는 출처를 제시하면 됩니다.

사마천의 ‘사기’ 흉노열전(匈奴列傳)은 “흉노의 선조인 하후씨(夏后氏)는 묘족(苗族)의 후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흉노는 묘족과 관련이 있다는 시각이 있다.

jtm71 (토론) 2009년 1월 20일 (화) 08:27 (KST)

투후 김일제 관련 문제편집

해당 부분에 대하여 국사학계의 공식적인 해석은 '투후의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재야사학계 및 일부 학자들이 투후 김일제를 신라의 시조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것은 일부의 의견일 뿐입니다. 또한, 해당 비문에는 "김알지가 흉노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내용"과 같은 부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삭제하고 위와 같은 주장이 있다는 서술로 변경하였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8:37 (KST)

흉노-훈편집

동족설이 다수설이라는 적절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족설이 있으나 특별한 결론은 없다고 수정하였습니다. 영어판 위키백과는 물론, 브리태니커 사전 등에서 확인한 사항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9일 (월) 18:46 (KST)

흉노의 언어 문제편집

해당 내용에 대해서 과거 활발한 토론과 편집이 있었던 것은 보았습니다. 그러나 '흉노' 문서의 중심은 흉노에 있지, 한민족의 언어가 '알타이어족'인가 하는 문제에 있지 않습니다. 해당 부분에 붙어 있는 여러개의 근거 자료들은 한민족의 언어가 알타이어족인지를 밝히는 주석들인데, 엄밀하게 말해서 이것은 논점이탈입니다.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이라는 것을 밝히는 주석들은 이 문서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해당 문제는 알타이어족 문서나 한국어 문서에서 논의할 일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흉노의 언어가 알타이어족인가에 대한 근거입니다. 이미 해당 부분의 바로 전 문장에는 '흉노어의 재구성은 거의 불가능하다'라고까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흉노의 언어가 알타이어족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에 대한 출처는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한국어의 어족과 관련된 주석들은 일단 삭제하였으며 흉노의 언어가 알타이어족이라는 것에 대해서 출처를 요구하였습니다. 삭제한 주석들은 아래에 보존해 둡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0:00 (KST)

  • 한민족은 신시베리아족에 속하며, 언어의 특성에 따른 알타이어족(Altaic language family)과 우랄어족(Uralic language family) 중에서 한민족의 언어는 터키족·몽골족·퉁구스족의 언어와 더불어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 한민족은 형질과 언어구조상 알타이어족에 가까우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알타이어족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에 터키족·몽골족·퉁구스족 등 알타이계 종족과 언어구조가 다른 부분이 많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INTRODUCTION TO ALTAIC LINGUISTICS. N POPPE - 1965 - eric.ed.gov

흉노 문서 전반적인 편집편집

흉노 문서에 대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전반적으로 편집을 하였습니다. 문서 가운데 흉노와 외국과의 관계에 대한 항목에서 '중국과의 관계' 부분은 내용 자체가 중국과의 관계 보다는 흉노에 대한 내용에 치중되어 있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종의 논점이탈에 가까운 것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서술하는데 불필요하게 흉노의 철기에 관한 설명이 있고, 내용 자체도 중립적이지 않은 가치판단 요소가 많습니다.

예)

'그러나 중국의 역사 교과서는 주로 흉노의 침입과 한 무제의 흉노 토벌만 강조하고, 편향되게 일부 사실만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말만 '형제의 맹약'이지, 사실상 흉노에 굴복해 해마다 조공을 바친 것이며 평등 관계가 아니라 형과 아우의 관계로 규정되어 있어 흉노와 한의 불평등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와 같은 서술은 그에 합당한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중립적이지 못하고, 독자연구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가치판단이 배제된 단순 사실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바꾸어 서술하였습니다. 또한 흉노의 철기에 대한 설명 부분은 중국과의 관계라는 항목 주제와 무관하며, 현재 흉노 문서 안에서 위치할 항목이 마땅하지 않으므로 일단 삭제하고 아래에 첨부하여 놓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4:50 (KST)

현재 흉노와 관련된 기록은 중국측 사료밖에 남아있지 않고, 중국측 기록에서는 오랑캐의 대명사로 묘사되고 있지만 (주석) 사마천 사기의 흉노 열전 번역 참고(주석 끝), 흉노는 중국의 한나라진나라 시대보다 훨씬 이전인 중국의 전국 시대에서 부터 이미 흥기하여 철기 시대에 진입했었다.(주석)중국에서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인 BC 5세기부터 철을 생산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서아시아로부터 전해온 것인지 또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제철기술을 발전시켰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 철의 발상지는 중국의 서쪽이며, 서남아시아 아나톨리아 지방으로 알려져 있고 그곳에서 BC 3000년경부터 철기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서역의 앞선 철기 문명을 일찍 접한 흉노가 당시의 중국보다 일찍 철기 문명을 가질 수 있었고, 철제 무기를 이용해서 군사력 역시 강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실크로드 교역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앞선 서역의 문물을 중국에 전달 할 수 있었다.(주석 끝) 흉노의 무덤에서는 다량의 철촉, 철검, 철제 마구 등이 출토되고 있다. 철기 문화는 흉노의 생산력을 크게 증대시켰다. '한서'를 비롯한 중국 사서에서는 흉노와 한나라 간에 교역이 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교역은 서로 교환할 물건이 확보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또한 흉노는 실크로드를 실질적으로 통제하여 무역권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이는 흉노에게 큰 경제적 이익을 주었다. 서역에는 화려한 물품이 많다는 장건의 여행 보고를 읽은 한의 무제는 이를 탐내기도 했었다. 서한 초기 흉노의 위협에 직면해 이를 막아낼 수 없었던 한나라는 국력의 한계를 느끼고 흉노와 화친하여 무역하는 방법을 택했다. 한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에 급급했었다. 전국시대부터 쌓은 장성도 흉노로부터 한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무력으로 맞설 수 없던 한이 할 수 없이 택한 방식은 화친과 교역이었다. 한 무제가 흉노를 정벌하기 전까지, 흉노는 중국보다 상위에 있었으며, 한 무제의 정벌 이후에, 서역지배권을 빼앗긴 흉노는 실크로드 무역을 통하여 얻었던 경제적 이익을 상실하였지만, 흉노가 분열되고 나서부터 이 주도권 관계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한민족과의 관계 항목편집

해당 부분에는 명백한 오류를 보이고 있는 것들이 있어 대부분 삭제하였습니다.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 흉노와 예맥(부여)에 관한 내용은 중립적이지 못한 추측으로 되어 있으며, 해당 추측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자료는 명백한 오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단, 해당 항목은 예맥-부여가 흉노에 복속되었다는 내용인데, 근거로 제시하는 자료는 해동의 이족은 부여다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내용입니다. 또한 현재 역사학계의 공식적인 입장은 동이(東夷) 또는 이(夷)로 통칭되는 존재를 하나의 민족 또는 부족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해동의 이족은 부여다라는 명제 자체도 잘못된 것입니다.
  • 고구려의 요서 침공에 대한 내용은 사료를 왜곡하여 인용한 것으로 역시 명백한 오류입니다. 해당 항목은 왕망의 요청에 대해서 '고구려는 이에 반발하고 오히려 요서를 공략'했다고 적고 있으나, 사료에는 '句驪의 군사를 징발하여서 匈奴를 정벌하게 하였으나 그들이 가지 않으려 하여 강압적으로 보냈더니, 모두 국경 너머로 도망한 뒤 [중국의 군현을] 노략질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어 해당 내용과 같은 유추 자체가 불가능하며 사료 자체도 왜곡하여 인용한 것입니다.
  • 동천왕을 선우라고 부른 내용은 선우라는 호칭의 의미를 왜곡하여 사용한 것으로 역시 명백한 오류입니다. 선우라는 호칭은 당시 북방민족들 중 오환, 선비, 강족 등이 모두 폭넓게 사용하였습니다. 이를 '흉노의 수장'이라 한정하여 서술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에 해당합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해당 항목의 내용은 모두 삭제하였으며, 현재 학계에서 소수의견의 하나로 논의되고 있는 투후-신라의 관계에 대한 내용만 남겨두었습니다. 또한, 해당 내용의 첫번째 주석은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으로서 문장 구조 자체가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주석으로 인용된 여러 기고문이나 신문기사에서 충분히 내용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삭제하였습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Xakyntos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자킨님의 설명을 들으니 뭔가 상당히 명쾌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편집 감사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0일 (화) 17:09 (KST)

2월 21일 편집취소 사유편집

흉노 문서는 2월 10일에 제가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토론 란을 통해서 근거가 없음을 밝히거나, 혹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을 살펴 삭제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해당 내용의 삭제는 독자연구나 중립성이 떨어지는 내용에 대해서 이루어진 삭제이며,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 없이 무조건적으로 복구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복구를 하려면 그에 대한 합당한 근거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제가 2월 10일에 정리한 내용은 모두 기본적인 원사료 및 몇가지 백과사전을 참고로 한 것이며, 해당 내용의 복구를 원하신다면, 제가 추가해놓은 내용을 포함하여 토론과 정리를 거쳐 전체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2월 21일에 이루어진 Raisekept 님의 편집은 제가 보충 및 추가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채 Raisekept님의 원본 편집 상태로 무조건적인 되돌림이었습니다. 이는 명백하게 잘못된 편집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1일 (토) 22:05 (KST)

사용자:Raisekept 님의 편집 내용에 대하여 출처를 요구합니다.편집

일단 흉노의 역사 항목에 대해서만 출처 요구 및 중립성 문제를 제기하겠습니다.

  • 흉노가 중국을 크게 위협해서, 진(秦)나라는 이것을 무서워해서 기원후 221년, 흉노를 막기 위해 만리장성 구축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연(燕), 진(秦), 한(漢)나라 시대가 계속되는 동안 이 만리장성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흉노는 다른 북방 민족들과 연합하여 진(秦)에 대항하며 그 세력을 확장시켰다.

→ 《사기》〈흉노열전〉의 기록에 따르면 연, 조, 진 등의 국가가 흉노 혹은 북방의 호(胡), 융(戎)족을 공격하여 물리친 기록이 수차례에 걸쳐서 등장하며, 만리장성이 효과가 없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만은 진시황 시기에 진나라를 당하지 못하여 북방으로 이주하였으며 후에 진나라가 혼란해지자 다시 남하하였다라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게다가 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은 연도는 기원전 215년입니다. 심지어 기본적인 팩트조차 틀렸군요. (기원후 221년이라 서술하고 있음) 그러므로 위의 내용을 주장할 수 있는 출처와 근거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만리장성 연도 부분은 잘못됬군요. 수정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중국 사서는 중국측에 유리하게 쓰여져 있으니까, 그것은 차지하고서라도, 연(燕), 진(秦), 한(漢)나라 시대에 흉노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군요.
  • 흉노제국의 창립자는 두만(頭曼, 터키어: Tumen, Teoman)이라는 사람으로 그는 여러 유목 부족 집단들을 통합한 후에 선우(중국어 정체: 單宇, 병음: Chányú, Shanyu)라는 공식적인 관직명을 가짐으로써 흉노제국을 출범시켰다.

→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두만이 선우였다는 사실은 있으나, 두만이 처음으로 선우라는 관직명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또한 두만이 흉노 제국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물론 여러 유목 부족 집단들을 통합하였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위와 같은 주장의 출처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최초의 선우는 두만선우지만,처음으로 관직명을 사용한 것은 두만이 아니다? 재미있는 논리군요. 일단 저도 알고 싶습니다. 소스 보여주세요. 최초로 선우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그럼 누구입니까?
두만선우가 흉노 제국을 출범시켰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 문서의 본문에 나와 있듯 기원전 4세기 부터 흉노에 대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두만선우 전에는 흉노의 지도자를 '선우'라고 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아울러 흉노의 세력을 한나라랑 맞먹게 성장시킨 것은 모돈선우이지 두만선우가 아닙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13 (KST)
  • 명실공히 중국 북방 최대의 유목민족국가를 수립하였다.

→중립성이 문제가 되는 표현입니다.

no problem입니다. 그럼 당시 중국 북방 최대의 유목민족국가가 흉노외에 무엇입니까?
  • 합의는 기원전 198년 가을, 중국 종실의 공주가 흉노에 도착함으로써 발효되었다. 특기할 사항은 양 조정(朝廷)에 왕위 변동이 있을 때마다 새로운 혼인으로 동맹을 갱신했다는 점이다. 또 중국이 흉노에 내는 조공 액수도 한과 흉노 사이의 역학 관계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는데, 대체로 한의 조공액은 매년 늘어났다. 기원전 192년부터 135년까지 적어도 아홉 차례에 걸쳐 한이 흉노에 대한 조공액을 인상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한이 흉노의 속국에 가까웠던 존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립성도 문제가 되며, 근거도 없습니다. 흉노의 속국에 가까웠던 존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말한 논문이나 출처를 제시하십시오.

근거는 이 기사를 참고로 했습니다.[14] 침략할까봐, 매년 세폐를 바치고 공주를 보내고 환심을 샀는데 그럼 속국이 아닌가요? 하지만 문제가 된다면 그 문장은 삭제해도 무방합니다.
  • 선우는 자신의 치세 동안 대대적인 정복활동을 벌여 아시아 초원에 있는 거의 모든 민족을 복속시켰다.

→ 아시아 초원에 있는 거의 모든 민족이 어느 민족이며, 아시아 초원에 있던 민족의 비율로 볼 때 거의 모든 민족이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지, 아시아 초원이라는 범위의 한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이 문제가 되며, 해당 내용 자체에 대한 출처도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모든' 이러는 글자는 뺍시다.
해당 내용을 사마천의 사기(까치출판사 1995년판)에서 찾아보면 "하늘의 가호로 단련된 정예 병사와 강건한 말로써 월지를 쳐부수어 이를 모조리 죽이거나 항복시키고, 누란, 오손, 호게 및 인접 26개 국을 평정하여 이들을 모두 흉노에 병합하였소"라고 되어 있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18 (KST)
  • 사마천은 동호를 예맥이라 적었다.
그것의 저의 주장이 아니며, 흉노 한민족설을 주장하는 학자의 주장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그 주장을 열거했을 뿐이고) 출처는 소스에 있습니다. 소스를 읽어 봤다면, 이런 소리는 안할텐데.
애초에 해당 내용에는 출처가 붙어있지 않았으며, 사마천의 사기에도 그냥 동호라고만 나옵니다.(뭐 제가 실력이 딸려서 못찾았을수도 있죠)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20 (KST)
  • 북으로 바이칼호와 이르티슈 강변, 서로는 아랄해, 남으로는 중국의 위수(渭水)와 티베트 고원의 북부에 이르렀다.

→ 해당 지역을 지배했다는 구체적인 고고학 자료나 문헌 자료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아니면 해당 영역을 지배하였다고 서술한 논문을 제시하여 주십시오.

그것은 저의 주장이 아니며, 그 부분은 일단 수정해야 할 것 같군요. 영어판 위키피디아도 참고 해주세요[15]
"흉노의 지배권은 동(東)은 러허[熱河]에서부터 서는 동(東)투르키스탄까지, 북은 예니세이강(江) 상류에서부터 남은 오르도스까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상의 내용에 대하여 출처를 요구합니다. 위의 내용은 모두 기본 사료에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며, 그렇다면 그에 대한 합당한 근거나 출처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출처를 제시하여 주신다면 그를 받아들이고 해당 내용을 흉노 문서 본문 안에 이설(異說)의 하나로 병기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1일 (토) 23:31 (KST)

이설의 하나로 병기하는 것 역시 전문가의 저서나 논문, 매체 기고문에서 제시된 것에 한정해야 하겠죠. 꽤 근거있고 이름이 알려진 비전문가(재야사학자)의 경우에는 "재야사학자 누구누구는 이렇게 주장한다"라고 분명히 써 두어야 겠고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21일 (토) 23:48 (KST)

Raisekept님께 추가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요구한 출처는 최소한 역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의 논문·저서역사학에 대하여 전문가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지식이 있고 해당 분야의 역사학에 대하여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비전문가의 저서·학술 기고문을 말합니다.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백과사전의 경우도 출처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특히 브리태니커 정도의 권위를 가진 백과사전이 아닌 이상) 백과사전을 출처로 제시할 경우에는 해당 부분의 저술에 근거가 된 논문도 대부분 백과사전에 제시되어 있으므로 해당 논문을 함께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이외에 전문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출처는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저 역시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출처의 전문성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검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함께 도와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0:21 (KST)

그럼 '흉노가 훈족이 아니다' '한민족이 알타이어족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의 논문·저서역사학에 대하여 전문가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지식이 있고 해당 분야의 역사학에 대하여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비전문가의 저서·학술 기고문을 보여주십시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0:39 (KST)
흉노가 훈족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타나는 내용입니다. 한국어와 알타이어족의 관계에 대해서는 최기호, 〈알타이어족설의 문제점〉, 《한글》 제227호, 1995. 3, pp. 71 ~ 106 / 김방한, 〈알타이 제어와 한국어 Korean and the Altaic Languages〉, 《동아문화》 제15호, 1978. 12, pp. 3 ~ 52 정도의 논문을 제시해 드리면 충분하겠습니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대해서는 위키백과 자체의 지침에서도 출처로서 사용하기에 충분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므로 저 정도로 충분할 것 같군요. 한국어에 대해서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논문들이 존재합니다. 참고하시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03 (KST)
알타이어족이 확실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출처] 이런식으로 편집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 〈알타이어족설의 문제점〉 : 이 논문에서는 몽골어와 유사성을 강조하고 있네요. 그렇다고 알타이어족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논문이 아님. (읽어 보시기는 했습니까?)
  • 〈알타이 제어와 한국어 Korean and the Altaic Languages〉 : 이것은 한국어에 길리야크어의 요소가 있음을 지적하여 한국어에 있는 비알타이어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군요. 어느정도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완전히 벗어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편집본을 잘 보세요. [16]
흉노족과 훈족(Hun族)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많고 그러나 이에 대한 이론(異論)도 존재한다.
저는 흉노가 훈족이라고 같은 민족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이 많다고 했으며, 둘이 100%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하지 않다와, 다르다 는 100% 다른 개념입니다. 저는 '흉노 훈족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설과 '흉노는 훈족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소수설이다' 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의 논문·저서역사학에 대하여 전문가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지식이 있고 해당 분야의 역사학에 대하여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비전문가의 저서·학술 기고문을 요구한 것입니다. 왜? 나도 궁금하니까. 상식적으로 영어판 위키피디아를 봐도 흉노 훈족은 거의 같은 개념으로 편집하고 있습니다. 물론 unclear라는 단서는 붙였지만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12 (KST)
다수설과 소수설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어판에서도 이미 unclear라는 단서가 붙었다는 것만 보아도 그렇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내용 또한 확실하지 않다는 서술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백과사전의 표기 방식은 브리태니커와 같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지, 흉노=훈은 다수설, 그러나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가 아닙니다. 저는, 분명 확실하지 않다는 서술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미 위의 단서에서 말씀드렸지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같은 수준의 권위는 출처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귀하는 흉노=훈에 해당하는 주장만 가져와서 다수설이라 주장하고 있을 뿐, 실제로 두가지 주장이 얼마나 양립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이미 브리태니커와 같은 권위를 가진 출처에 의하여 확실하지 않다는 서술임이 보증되며, 그렇다면 귀하의 주장이 다수설임을 입증할 책임은 귀하에게 있습니다. 영문판 위키백과는 그저 참고자료일 뿐,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아래에 다시 서술하겠지만, 아직까지 귀하는 제가 요구한 수준의 출처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흉노=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제가 위에 제시한 수준의 출처는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23 (KST)
이 난독증 환자한테 어떻게 대꾸해야 하나.
저의 최초 편집은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흉노족과 훈족(Hun族)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많고" [17]
였는데
Pudmaker가 딴지를 걸어서
흉노족과 훈족(Hun族)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많고 그러나 이에 대한 이론(異論)도 존재한다. [18]
라고 바뀐 것입니다.
여기서, '이론도 존재한다 [출처]' 이 부분은 Pudmaker를 위해 남겨둔 것이며, 이 사람이 딴지를 걸어서 그러면 그 소수설의 소스를 이 문장에 첨부해라 라고 남겨둔 것입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58 (KST)
당신이 따져야 할 대상은 Pudmaker입니다. 내가 아니라.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10 (KST)

제 편집본에는 분명히 '그러나 이에 대한 이론(異論)도 존재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 최초 "편집본은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흉노족과 훈족(Hun族)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많고" [19]라고 백과사전 편집을 분명히 따르고 있습니다. 흉노 = 100% 훈족이 한적이 한번도 없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쪽은 당신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소수설의 소스를 제발 제시해주십시오. 저도 궁금합니다. 백과사전에 unclear라고 단어 하나로 언급한 것과, 흉노가 아니다 라는 소스가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31 (KST)

흉노 = 훈족이라고 간주하는 소스를 곧 제시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은 흉노가 아니다 라는 소스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33 (KST)
제가 흉노가 아니라는 소스를 제시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귀하는 확실하지 않다라는 권위와 신뢰성을 보장받는 서술에 대하여 다수설이다라는 내용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다수설임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귀하에게 있으며, 그렇다면 귀하는 긍정적인 학설부정적인 학설 제반에 대하여 검토한 후 그 통계적인 수량 분석을 통하여 다수설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마십시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37 (KST)

흉노와 훈족을 동일 민족으로 간주하는 소스 제시합니다.

나의 편집본은 "명확하지 않다"고 단서가 이미 붙어 있으며, 이 단서가 붙은 편집본에 이론을 제기한 쪽은 당신입니다. 당신이 제시한 브리태니커 소스대로 원래 제가 편집했었습니다만, 당신은 이에 대해 반대를 했습니다. 당신은 흉노가 훈이 아니라는 소스를 제시해서 이론이 존재하며, 불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53 (KST)
  • Hun and Xiong-nu Type Cauldron Finds Throughout Eurasia

M Érdy - 1995 - Eurolingua

  • The Hsiung-nu-Hun Equation Revisited

DC Wright - 1997 - Eurolingua

  • the Xiong-nu and the Huns

SG Botalov - Archaeology, Ethnology & Anthropology of Eurasia, 2003

  • Ancient Inner Asian Nomads: their economic basis and its significance in Chinese history

N DI COSMO -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1994

  • Armaments of Nomads of the Altai Mountains (First Half of the 1st Millennium AD)

JS Khudjakov - Acta Orientalia, 2005 - akademiai.com

  • Archéologie des Xiongnu en Russie: Nouvelles découvertes et quelques problèmes

S MINAEV, A PAPILLON - Arts asiatiques(Paris), 1996 - cat.inist.fr

  • Climate change and Zhou relocations in early Chinese history

CC Huang, H Su - Journal of Historical Geography, 2008 - Elsevier

  • BUSINESS ROUND-UP China's trade suprlus with the US widening

Q Unquote, Z Rongji - cemcweb.com

  • M Nylan - historycooperative.org [20]
  • An Elite Complex of Xiongnu Burials in the Tsaraam Valley

SS Miniaev, LM Sakharovskaia - Anthropology & Archeology of Eurasia, 2008 - ME Sharpe

  • Exploration by Land

P Strathern - 1993 - books.google.com

  • Nomadic Power, Sedentary Security, and the Crossbow

DC Wright - Acta Orientalia, 2005 - akademiai.com

  • Les Xiongnu

SS MINAJEV - Les Dossiers d'archéologie(Dijon), 1996 - cat.inist.fr

더 찾을 수 있는 일단 여기 까지 합니다.

자,

  • 1. 흉노와 훈족은 동일 민족이 아니다.
  • 2. 흉노와 훈족을 동일 민족으로 보는 시각이 소수설이다.

라고 주장하는 학술 자료의 명확한 소스 출처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궁금하니 어서 읽어보고 싶습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48 (KST)

그리고 통계적인 수량 분석을 통하여 다수설임을 입증하라고 하셨죠, 그 말의 당신이 곧 제시할 소스보다 더 많은 소스를 제시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자 어느 소스의 숫자가 많은지 한번 봅시다. 제 흉노와 훈족을 동일 민족으로 간주하는 학술 자료 소스를 더 많이 제시하면 다수설이 되는 것이니까.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50 (KST)

제가 귀하의 의견에 의문을 표시한 것은 다수설이다라는 것이지 명확하지 않다가 아닙니다. 다수설이다. 근데 아니라고도 한다라는 서술은 심각한 중립성의 문제가 있으며, 또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서술 태도도 아닙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해당 내용에 대한 입증 책임은 귀하에게 있습니다. 통계적인 수량 분석의 책임은 귀하의 몫입니다. 그리고, 고작해야 비전문가인 귀하나 제가 소스를 찾아서 그 숫자를 근거로 백과사전의 내용을 결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귀하가 할 일은 통계적인 수량 분석도 아니고, 다수설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는 권위와 신뢰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통계적인 수량 분석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귀하의 입증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59 (KST)
그러니가 통계적으로 쇼부합시다. 저는 흉노=훈족 동일 민족으로 간주하는 논문을 가져올테니, 당신은 흉노=/ 훈족이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가져와보세요. 그런 통계적으로 쇼부해서 누가 다수설인지 알 것입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09 (KST)
불만 있으면 저의 최초 편집본의 단어,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흉노족과 훈족(Hun族)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많고" 라고 합시다, Understand?
이 난독증 환자한테 어떻게 대꾸해야 하나.
저의 최초 편집은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흉노족과 훈족(Hun族)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많고" [21]
였는데
Pudmaker가 딴지를 걸어서
흉노족과 훈족(Hun族)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많고 그러나 이에 대한 이론(異論)도 존재한다. [22]
라고 바뀐 것입니다.
여기서, '이론도 존재한다 [출처]' 이 부분은 Pudmaker를 위해 남겨둔 것이며, 이 사람이 딴지를 걸어서 그러면 그 소수설의 소스를 이 문장에 첨부해라 라고 남겨둔 것입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58 (KST)
당신이 따져야 할 대상은 Pudmaker입니다. 내가 아니라.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10 (KST)

※ 위의 출처 요구 부분에 대해서도 아래에서 조목조목 코멘트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러나 기본적으로 중국 사서는 중국측에 유리하게 쓰여져 있으니까, 그것은 차지하고서라도, 연(燕), 진(秦), 한(漢)나라 시대에 흉노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군요.

→ Raisekept님의 편집 내용에는 연(燕), 진(秦), 한(漢)나라 시대에 흉노에 시달렸다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물론 저 역시 그러한 주장은 한 적이 없습니다. 제 질문은 ①만리장성이 효과가 없었다는 내용, ②진(秦)나라가 흉노를 무서워해서 만리장성을 쌓았다는 내용에 대하여 근거를 대라는 것입니다. 논점이탈을 하지 마시고 정확한 근거를 대시지요. 중국 사서는 중국측에 유리하게 쓰여져 있으니까라는 식의 말씀은 고작해야 독자연구라는 말 밖에는 듣지 못합니다.

흉노에 대비해서 만리 장성을 쌓았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죠? 만리 장성 건축 연도에 대해서는 명확한 오류이니까 인정합니다.
만리장성이 효과가 있었다는 효과를 보여주십시오. 만리장성이 있었는데, 왜 흉노에게 세폐를 바쳤나요? 이게 독자 연구입니까? 만리장성 건축 이후에도 있는데도, 흉노의 세력에 밀린 것은 사실이며 이것은 독자 연구가 아닙니다만,
진나라가 흉노에 대비해 만리장성을 건축한 것은 여기 위키백과 진나라에도 나오는 사실입니다.[23]
  • 최초의 선우는 두만선우지만,처음으로 관직명을 사용한 것은 두만이 아니다? 재미있는 논리군요. 일단 저도 알고 싶습니다. 소스 보여주세요. 최초로 선우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그럼 누구입니까?

→ 현존하는 사료에는 최초의 선우가 누구인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말한 것을 왜곡하지 마십시오. 저는 두만을 최초의 선우라 말한 바가 없습니다. 현존하는 사료에서 선우가 등장하는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당시 선우는 두만이라고 불렸다." 이외의 다른 정보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외에 흉노의 선우와 관련된 다른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①두만이 최초의 선우인가? ②선우의 칭호는 두만이 처음 사용한 것인가? 에 대하여 정확한 근거를 들어 증명하십시오.

그러니까 처음으로 관직명을 사용한 것은 누굽니까? 입증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 스스로 사기에도 두만이 선우였다고 기록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최초로 선우라는 관직을 사용한 것은 누구입니까?
  • 그것의 저의 주장이 아니며, 흉노 한민족설을 주장하는 학자의 주장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그 주장을 열거했을 뿐이고) 출처는 소스에 있습니다. 소스를 읽어 봤다면, 이런 소리는 안할텐데.

→해당 소스를 다시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귀하가 편집한 내용 속에서 해당 부분에 대한 어떠한 소스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흉노 한민족설을 주장하는 학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학자의 주장이 타당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그 학자의 주장이 신뢰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형태로 공개되었는지를 밝혀 주십시오.

해당 소스는 2004 년 01월호 신동아 기사입니다. 그리고 제 편집 판본을 보시면 출처 명기되어있습니다. 최소한 출처를 읽어 보시고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해당 부분에서 예맥이 언급되는 것은 예맥을 지배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맥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저 예맥이 동호라면, 흉노의 영역은 러허[熱河]가 아니라 북경 인근이 경계가 되어 버리죠. (제 추측이지만, 위에 말씀하신 학자는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른 채 "흉노가 예맥을 지배하다니! 말도 안된다. 이건 동호가 틀림없어!"라고 말한 것 같군요. 그런 주장을 하는 작자들의 사고방식은 뻔하거든요.) --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29 (KST)
그런설이 있다고 병기하면 될 듯합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40 (KST)

내용에 대한 반박은 별도의 서술을 통해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편집 안에다가 써 넣게 되면 내용에 혼란이 옵니다. 아래에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 만리장성이 효과가 있었다는 효과를 보여주십시오.

→이미 말씀드렸지만, 해당 문제에 대해서 입증 책임은 귀하에게 있습니다. 또한, 저는 기본 사료를 통하여 가장 객관적인 서술을 하였으며, 귀하는 이에 대하여 사료를 응용·해석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귀하는 그러한 응용 및 해석이 등장하는 신뢰성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것은 독자연구가 아니고 상식입니다.
만리장성은 언제 지어졌습니까? 진나라때
그런데 그 이후 한나라때 왜 흉노에 조공을 바쳤습니까?
전한 고조(高祖)는 왜 백등산에서 일주일 동안 포위되었다가 흉노와 굴욕적인 화친을 맺었다.
만리장성이 있었는데도 왜 포위됬습니까?
자, 입증하세요. 만리장성이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 만리장성이 있었는데, 왜 흉노에게 세폐를 바쳤나요? 이게 독자 연구입니까?

→네 독자연구입니다. 해당 내용에 대하여 신뢰성 있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독자연구? 흉노와 한이 맺은 화친 조약을 참고하세요.
  • 진나라가 흉노에 대비해 만리장성을 건축한 것

→해당 내용은 맞습니다. 그러나 귀하는 저러한 내용이 아니라 진나라가 흉노를 두려워하여 쌓았다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사료 어디에도 그와 같은 내용은 없습니다. 저러한 서술을 하는 신뢰성 있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같은 의미 아닙니까? 지금 말장난하자는 것입니까?
  • 처음으로 관직명을 사용한 것은 누굽니까?

→저는 처음으로 관직명을 사용한 것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료에서 말하는 그 자체입니다. 귀하는 사료라고 하는 절대적인 근거에 대항하여 반대되는 혹은 추측되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입증 책임은 귀하에게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신뢰성 있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보세요. 모돈 선우라는 명칭이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됬다고 말한 것은 당신입니다만, 모돈이 최초의 선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신입니다. 모돈선우가 최초의 선우 관직을 받지 않았다고 입증해야 하는 것은 당신이며, 당신은 입증에 실패했으므로 나에게 책임을 전가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조금 더 검토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귀하께서는 이번에도 제가 요구한 수준의 근거를 하나도 제시하시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논문과 같은 일부 학자의 주장이 아니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료를 근거로 하여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를 부정하시려면, 또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뢰성 있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내용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유추는 근거가 아닙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1:52 (KST)

그건 그렇고 위에 당신이 제시한 알타이어족 논문을 읽어 보시긴 했습니까? 그 내용 어디에 한민족이 알타이어족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있지요?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06 (KST)
신동아의 내용을 확인하였습니다. 해당 내용을 작성한 이종호 박사는 역사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아닙니다. 물론 해당 기사 또한 제가 요구한 신뢰성 있는 출처도 아닙니다. 게다가 해당 기사는 동호->예맥에 대하여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사마천은 동호를 예맥조선이라 적었다라고만 서술하고 있을 뿐,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 전혀 논증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근거가 아닙니다. 이런 것을 근거라고 가져올 것이라면, 귀하의 주장은 신뢰성을 담보받을 수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08 (KST)
그럼 심동아 이종호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이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당신은 그것이 나의 주장이 아니며, 나의 독자 연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최기호, 〈알타이어족설의 문제점〉, 《한글》 제227호, 1995. 3, pp. 71 ~ 106 / 김방한, 〈알타이 제어와 한국어 Korean and the Altaic Languages〉, 《동아문화》 제15호, 1978. 12, pp. 3 ~ 52
이 논문 정말 읽어 보셨습니까? 한민족이 알타이어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발췌해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12 (KST)
이 내용에 대해서는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알타이어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제시한 바 있으나 그것은 섣부른 명제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는 한국어=알타이어족이라는 명제가 여러가지 면에서 의심받기도 한다는 것이지, 아니다라는 견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해당 부분은 위와 같이 정정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시한 논문 속에는 이러한 언급도 보입니다.

김방한, 〈알타이 제어와 한국어 Korean and the Altaic Languages〉, 47페이지, "한국어와 알타이 제어 사이에는 공통성이 있으나 또 일면 현저한 차이도 보인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차이를 구명한다는 것은 동시에 보다 본질적인 공통점을 찾는 것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한국어와 알타이어의 문제는 흉노 문서와 전혀 무관한 것이므로 여기서 이야기할 성질의 내용이 아닙니다. 흉노 문서에서 한국어와 알타이어 문제에 대해서 3개나 되는 주석을 통해서 서술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인 것입니다. 제가 위의 토론문에서 지적한 것도 그러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그만 거론할 것을 제안합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32 (KST)

즉, 한민족이 알타이어족이다 라는 널리 알려진 통념을 반대할 만한 논문은 아니군요. 즉, 이 페이지에서 한민족 알타이설 편집에 어떤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45 (KST)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내용에 대한 반박은 별도의 서술을 통해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편집 안에다가 써 넣게 되면 내용에 혼란이 옵니다. 아래에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 이것은 독자연구가 아니고 상식입니다.

상식은 위키백과의 합당한 근거가 아닙니다. 상식 운운하실 생각이라면, 위키백과의 지침들을 자세히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왜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낳았는가 입증할 수 있습니까? 인과 관계가 뚜렷한 상식은 입증 필요가 없습니다.
  • 만리장성이 있었는데도 왜 포위됬습니까?

사료에 의하면, "진나라 말기의 혼란으로 약해진 틈을 타서 진나라의 몽염에게 빼앗겼던 흉노 땅을 모조리 되찾았다. (중략) 연과 대에까지 침입하게 되었다"라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한나라 초기에는 만리장성이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리장성이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군요.
  • 자, 입증하세요. 만리장성이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만리장성이 효과적이었는지, 효과적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의견이 없습니다. 만리장성은 효과적으로 흉노를 막았던 때도 있었고 전혀 기능을 하지 못했던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료 상으로는 만리장성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는 내용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사료의 여러 면면을 분석하여 나타나게 되는 결론에 해당하며, 귀하는 이 결론이 어떠한 출처에서 가져왔는지를 계속 회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추론을 보여준 논문이나 저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추론은 위키백과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참고하시지요.

만리장성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논문이나 저서를 요구하는 것이 웃기는 군요.
  • 같은 의미 아닙니까? 지금 말장난하자는 것입니까?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사료 상에는 두려워 하였다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학문이라는 것은 단어 하나, 글자 하나에도 정확한 추론과 출처를 요구받습니다. 귀하의 머리 속에서는 같은 의미일지 몰라도 학문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글자일 뿐입니다.

같은 의미인데 POV가 걱정되서요? 그럼 그 글자는 빼세요.
  • 모돈선우가 최초의 선우 관직을 받지 않았다고 입증해야 하는 것은 당신이며, 당신은 입증에 실패했으므로 나에게 책임을 전가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저는 최초의 선우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벌써 세번째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료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귀하는 사료에 없는 내용에 대하여 스스로의 주장을 증명할 책임이 생깁니다. 저는 귀하와 같은 자의적인 추론이 아니라, 사료 그 자체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돈이 최초의 선우인가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귀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료를 보여주세요. 제가 말씀드리잖습니까?
1. 두만 선우가 선우라는 관직을 쓰지 않았다는 증거는?
2. 그럼 최초의 선우 관직을 쓴 사람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식이나 귀하의 자의적인 추론 말고, 논문이나 저서와 같은 신뢰성을 보장 받는 근거를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슬슬 피곤해져 오고 있습니다. 밤이 깊었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말돌리기 하지 말고 제가 요구하는 근거를 제시해 주시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21 (KST)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는데 스스로 입증을 하나도 못하면서 말돌리기 상대 진빼기식으로 토론하면 당신이 이기는게 아닙니다. 현재까지 당신으로부터 만족할만한 근거 소스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26 (KST)

Xakyntos편집

남아있는 쟁점

  • 한민족 알타이족이 아니다?
〈알타이어족설의 문제점〉 : 이 논문에서는 몽골어와 유사성을 강조하고 있네요. 그렇다고 알타이어족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논문이 아님. (읽어 보시기는 했습니까?)
〈알타이 제어와 한국어 Korean and the Altaic Languages〉 : 이것은 한국어에 길리야크어의 요소가 있음을 지적하여 한국어에 있는 비알타이어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군요. 어느정도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완전히 벗어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타이어족이 아닌 요소가 있다"와 "알타이어족이 아니다"는 다릅니다. 한민족이 알타이어족이 아니다 라는 결정적인 해당 문장을 발췌해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논문의 발췌 내용이 없을시 기각하겠습니다.
  • 다른 내용은 대충 정리된 것 같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고 있는데, 두만 선우가 최초의 선우가 아니라는 기록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그 쪽입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32 (KST)

이 부분에 대한 것은 Xakyntos가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기각하셨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08 (KST)
온라인 자료가 아니면 아예 인정을 안하시네요. 제가 일본의 흉노 연구가 '사와다 이사오'의 '저서'를 근거로 대도 의심만 할 뿐이시고요. 영어 위백와 'Altaic Languages' 'Korean lanugage'항목 가보세요. 한국어가 명백한 알타이어족인지 아니면 논란이 있는 항목인지. 최소한 "일부 학자들이 알타이어로 주장하고 있는 한국어"라고 표현해야 정확하겠죠. 결론내려지지도 않은 알타이 어족설을 무조건 인정하는 것은 독자연구일 뿐입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34 (KST)
아울러 최초의 선우는 두만 선우죠. 그리고 두만 선우 이전에는 선우라는 명칭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흉노 제국이라고 불릴만한 세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잘 모르는데 섣불리 단정내리듯 하시면 곤란합니다. 최소한 사마천의 사기에는 두만선우가 흉노 제국을 '건국'했다라는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34 (KST)
사기의 해당 내용은 "당시는 동호가 강하고 월지도 세력이 왕성하였다. 당시 흉노의 선우는 두만이라고 불렀다. 두만은 진나라를 당해내지 못해서 북쪽으로 옮겨갔다." 이 이상 다른 설명은 없습니다. 오히려 흉노를 하후씨와 연관지으며 유래라 깊은 민족이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만 선우가 흉노 제국의 건국자, 1대 선우라는 결론은 역사왜곡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38 (KST)

착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모돈 선우가 최초의 선우가 아니라고 말한 바 없습니다. 제 말을 왜곡하지 마십시오. 저는 최초의 선우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록에 그렇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록에 대항해서 새로운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귀하입니다. 착각하지 마세요.--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35 (KST)

두만을 모돈이라고 쓴 것은 단순한 글자 실수였습니다.

사료의 기록을 그대로 제시하여 드리겠습니다.

흉노의 선우는 두만이라고 불렀다. 匈奴單於曰頭曼

이를 제외하고 선우가 어떠한 존재인지, 최초의 선우가 누구인지, 두만이 최초의 선우인지에 대하여 그 어떠한 정보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항하여 최초의 선우는 두만이다라고 주장하는 귀하는 그에 해당하는 근거를 제시하여야 합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40 (KST)

이보세요. 위키피디아에 선우[24] 를 보시면 알겠지만 두만이 최초의 선우로 등재되어 있으며, 당신의 주장은, 두만 선우 시절 당시에 선우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다는 처음 듣는 얘기를 하시는데, 이 처음 듣는 얘기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까? 예를들어 '소나타는 현대차 백과사전 목록'에 있는데, '소나타가 현대차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소나타가 현대차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 근거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만약 당신의 근거 제시 없을시 그 논쟁은 기각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42 (KST)
제 말을 왜곡하지 마십시오. 저는 두만 당시에 선우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다라고 단 한 번도 말한 바 없습니다. 그리고 귀하가 든 예는 전혀 무관한 예입니다. 제가 보여 드린 기록 속에서 최초의 선우는 두만이다라는 내용을 찾아서 보여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귀하의 주장은 입증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선우 문서가 그와 같이 되어 있다면, 그 문서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논문이나 기타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면 아닙니다만.)--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43 (KST)
두만 이전에도 선우라고 불렀다는 말씀입니까? 그러고보니 영어판 위키피디아에서는 두만 이전에도 선우로 등재된 인물이 있긴 하군요.[25]
raise님 글좀 제대로 읽고 의견 다세요. xakyn님의 의견은 "두만은 '기록된' 최초의 선우이다. 하지만 사마천의 기록에서 두만이 '최초의' 선우라는 입장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는 것 아닙니까. 저는 금방 이해가 되는데 왜 엉뚱하게 이해하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사마천의 사기는 읽어보셨는지?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44 (KST)
어느 나라를 봐도 건국 신화가 있죠? 흉노의 건국 신화는 사마천의 사기에 소개한대로 하후씨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흉노 자체가 중국식으로 특정 국호를 잡고, 특정인이 건국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45 (KST)
그렇다면 '역사서에 첫 등장한 선우' 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48 (KST)
네. 그렇게 표기하는 것이 가장 중립적이고 정확한 근거에 입각한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50 (KST)

남아 있는 쟁점편집

Xakyntos의 글 :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만리장성이 효과적이었는지, 효과적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의견이 없습니다. 만리장성은 효과적으로 흉노를 막았던 때도 있었고 전혀 기능을 하지 못했던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료 상으로는 만리장성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는 내용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사료의 여러 면면을 분석하여 나타나게 되는 결론에 해당하며, 귀하는 이 결론이 어떠한 출처에서 가져왔는지를 계속 회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추론을 보여준 논문이나 저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추론은 위키백과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참고하시지요.

Raisekept의 글 : 만리장성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논문이나 저서를 요구하는 것이 웃기는 군요.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저는 만리장성이 효과적으로 기능했던 것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하의 주장인 만리장성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라는 내용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 그러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논문, 저서 등을 출처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귀하는 계속해서 스스로의 추론과 상식에 의거하여 저의 근거 제시 요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2:56 (KST)

  • 중국을 통일한 한 고조 유방 때에는 만리장성을 방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흉노족의 침입으로 평성에서 포위당하는 수모를 겪었는데 이를 보면 만리장성은 군사적 의미 외에도 정치적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26]
  • 흉노는 한족의 그런 애절한 뜻을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툭하면 만리장성을 넘어와서 분탕질을 쳤다. 그들에게는 그 것이 오락이었고 스포츠였다. 그 흉노한테는 그 짓도 귀찮았다. 만리장성을 넘어와서 한족 땅에 아예 주저 앉았다. [27]

흉노에 대비한 만리장성이, 만리장성 이후에도 흉노에게 당한 것은 엄연한 사실로, 인과관계가 뚜렷하며(흉노 대비 만리 장성 건축 -> 이후에도 흉노에 굴복), 인과관계가 뚜렷한상식이며, 독자연구가 아닙니다. 최소한 그 문장을 논쟁으로 만들고 싶다면, 만리장성이 훌륭하게 기능했다는 근거를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런 것도 논문 저서등의 출처로 제시해야 한다면, 왜 당신의 어머니는 왜 당신을 낳았는가, 그것에 대해서 논문, 저서 등을 출처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06 (KST)

사기 '몽염열전'을 한번 읽고 오세요. 그래도 만리장성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고 주장하실 것인지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12 (KST)
흉노에 대비해서는 쓸모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기 '몽염열전'의 어떤 문장이 "흉노에 대비해서 만리장성이 훌륭하게 방비했다"라는(혹은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는지 발췌해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13 (KST)
"진나라는 천하를 합병한 후에, 몽염으로 하여금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북쪽으로 가서 융적을 내쫓고, 하남 지역을 점령하여 장성을 쌓게 하였다. 지형에 따라 험난한 곳을 이용하여 성채를 쌓으니, 임조(감숙 지역)에서부터 요동까지 길이가 만여 리나 되었다. (…) 이때 몽염의 위세가 흉노 땅에 떨쳐졌다." - 만리장성을 쌓은 이후부터 모돈 선우가 등장할 때까지는 흉노가 쳐들어왔다는 기록이 아예 없습니다. 이래도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인가요? 아울러 raise님은 왜 논문이나 저서를 근거로 안들고 대구일보같은 '지방일간지'를 예로 드시는거죠? xakyn님이 저서나 논문을 근거로 대면 오프라인 자료라면서 믿을 수가 없다고 하니 허참..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16 (KST)
제 말씀을 조금 더 정확하게 수행하여 주십시오. 귀하가 이번에 가져온 근거 역시 논문이나 저서가 아닙니다. 물론 해당 기사를 작성한 사람들도 전문적인 학자권위 있는 비전문가가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과관계가 아무리 뚜렷하다고 해도, 그것을 정확하게 명시한 출처가 없다면 그와 같은 인과 추론은 독자연구에 해당합니다. 위에서 귀하가 제시한 왜 어머니가 당신을 낳았는가와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매우 뚜렷한 인과관계를 증명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왜 어머니가 당신을 낳았는가는 당신의 그 주장을 풍자한 것입니다.
당신은 위키피디아의 "독자연구"를 자기식대로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국어판 도움말에는 독자연구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영어판 위키피디아의 독자 연구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만든 독특한 가이드라인에 제가 따라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28]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18 (KST)
그리고 아래에 만리장성이 기능했다는 근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미 위에 보여 드렸습니다만 너무 멀리 있으니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두만은 진나라를 당해내지 못해서 북쪽으로 옮겨갔다. 頭曼不勝秦,北徙" 이후 10여 년 동안 두만은 만리장성을 넘어오지 못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기능했다는 근거로 충분하다고 보여집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15 (KST)

그 내용 어디에 만리장성이 충분하게 기능했다는 내용이 있습니까? 두만이 북쪽에 갔다는 문장이지, 만리장성이 훌륭하게 기능했다는 문장은 아니잖습니까? 또, 사기 몽염열전의 어느 문장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 발췌해서 보여주십쇼. 지금 장난 하시는 것 아니죠?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18 (KST)

보여줬는데도 못읽으시면 어떻게 하죠?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21 (KST)
우기기로 일관하지 마십시오. 진나라를 당해내지 못하였다라고 명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아예 만리장성 아래로 내려온 역사가 없습니다. 여기서 만리장성의 기능을 문제삼는 것은 전혀 무관한 지적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22 (KST)
이보세요. 頭曼不勝秦,北徙 이 문장 어디에 만리장성이라는 글자가 있습니까? 이것은 또한 당신의 독자 연구 아닙니까?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24 (KST)
그리고 독자연구에 대해서는 이 문장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위키백과의 공동 설립자인 지미 웨일스의 말에 따르면, 이는 "소설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역사를 해석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25 (KST)

그리고 위의 말씀에 대해서는 저도 이렇게 말해드릴 수 있습니다. "흉노와 한의 전쟁에서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이었다는 직접적인 기록이 있습니까?" 저의 저 사료 제시에서 그와 같은 독자연구를 말씀하신다면, 저 역시 위와 같은 질문을 해드리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27 (KST)
참 답답하네,
엉뚱하게 말 돌리지 마시고,
1. 頭曼不勝秦,北徙 이 문장 어디에 만리장성이라는 글자가 있습니까?
2. 사기 몽염점의 해당 문장을 발췌해 보여 주십시오. (만리 장성과 매우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3. 위키피디아 가이드 라인에 '독자 연구'를 멋대로 해석해서 저에게 적용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만든 독특한 기준을 제가 준수할 의무는 없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28 (KST)

'역사' 클릭해서 직접 찾아보세요. 바로 위에 써놨는데 왜 못보시는건지. 그리고 영어판 '독자연구 가이드라인' 가져왔습니다. raisekept님 그동안 '독자연구'로 의심받아온 항목 해명하는데 참고하세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0 (KST)

그러니까 그 문장 내용중에 '만리 장성 때문에 흉노가 안 쳐들어왔다'라고 써져 있습니까? 아니지요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2 (KST)
인정합니다. 해당 부분에는 만리장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귀하 역시 나머지 사료 속에서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이었다라고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또한, 독자연구에 대해서는 지미 웨일스가 이렇게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해석하는 것 지금 귀하가 하고 있는 행위는 역사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거를 제시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5 (KST)
당신 스스로, 당신의 출처가 만리장성과 상관 없다것을 인정하고 있고, 다른 부분은 스스로의 독자 연구 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군요.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은,
만리 장성 건축 이후에도
한이 조공을 바친 것, 모돈에게 포위당한것
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4 (KST)
기본적인 사항인데, 모돈이 유방을 공격하고 포위한 것이 아니라 유방이 모돈을 공격하러 북쪽으로 나섰다고 포위당한 것입니다. 만리장성하고 무슨 상관이죠?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7 (KST)
또 추가 할게요 사기에서는 해당 내용을 다루는 중에 '만리장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리장성이 있었지만 막지 못했다 이런 표현 전혀 없어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9 (KST)
인정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현상을 통해서 원인을 추측한 것이며, 명백하게 독자 연구에 해당합니다. 사료에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이다라고 명시되어 있거나, 그렇게 명시하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하십시오. 아래에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대해서 잘 제시되어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7 (KST)
글자 그대로 아닙니까? 몽염이 장성을 쌓았고 그 장성은 길이가 만리고, 감숙성에서부터 요동까지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모돈 선우때까지 흉노가 쳐들어오지 않았고, 사기 본문에서도 몽염의 위세가 흉노 땅에 떨쳤다고 되어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직접적으로 "만리장성 덕분에 몽염이 흉노를 무찔렀다"라고 안되어 있으니 인정을 못하겠다고요? 그렇다면 님이야말로 역사서 등에서 "만리장성이 있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라고 '직접적'으로 쓰여있는 출처를 대시지요. 맨날 allempires와 같은 듣도보도 못한 사이트나 구글 검색, 언론 보도만 가져오지 마시고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5 (KST)
만리장성때문에 모돈 선우때까지 흉노가 쳐들어오지 않았다는 내용의 증명을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만리장성 건축 ~ 모돈 선우때까지 쳐들어온 기록이 없다. 그래서 만리장성이 완벽했다?? 그 사이의 공백은 아무 근거 없는 당신의 독자 연구로 판단하겠습니다.
또한 사기에 실려 있지 않다고 과연 그 사이에 실제 흉노가 쳐들어 오지 않았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역사서에 기록되 있지 않다'와, '실제 쳐들어 오지 않았다'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누락됬을 수 도 있고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9 (KST)
네. 귀하의 지적을 인정하고 저는 의견을 철회합니다. 그러니 귀하도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만리장성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증명하여 주십시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2 (KST)
당신이 이제까지 소스를 제시한 것이 한번도 없고, 전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있다는게 웃기지 않습니까? 저는 모돈 선우 시대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4 (KST)
그러니까 만리장성은 무용지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역사 기록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가져오시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6 (KST)
모돈 선우 시대에 만리장성은 무용지물 이었습니다만? 본문 페이지(당신이 편집한 판본)에도 분명히 언급되어 있고, 이런 확실한 인과 관계에도 출처를 명시해야 하며 출처를 명시하지 않으면 기각된다는 해당되는 위키피디아의 도움말 조문을 보여주십시오. 저는 당신이 만든 독특한 가이드 라인을 준수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50 (KST)
지미 웨일스가 이렇게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해석하는 것 지금 귀하가 하고 있는 행위는 역사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당 역사 기록에는 만리장성은 무용지물이다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53 (KST)
말 돌려봤자 통하지 않습니다.
모돈 선우 시대에 뚫렸다? Yes.
무용 지물이었습니까? Yes.
이런 확실한 인과 관계에도 출처를 명시해야 하며 출처를 명시하지 않으면 기각된다는 해당되는 위키피디아의 도움말 조문을 보여주십시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56 (KST)
이러한 조문이 독자연구 가장 첫머리에 있습니다. 공개 발표되지 않은 사실, 주장, 개념, 진술 또는 이론 귀하의 주장은 인과관계를 말하고 있을 뿐, 공개 발표된 출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독자연구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59 (KST)
만리장성을 넘어온 모돈 선우에게 한나라가 당한 역사적 사실과 기록이 공개 발표되지 않은 사실, 주장, 개념, 진술 또는 이론 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05 (KST)
해당 내용은 '흉노가 만리장성을 넘어왔다'는 것을 증명할 뿐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임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귀하의 저 주장은 공개발표되지 않는 것에 해당합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21 (KST)
흉노를 대비하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에 흉노가 넘어왔다는 것은 곧 무용지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독자연구가 아니고 국어학적 개념 차이일뿐입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30 (KST)

영어판 독자연구 가이드라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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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세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29 (KST)

맞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답변을 하셔야 합니다.
1. 頭曼不勝秦,北徙 이 문장 어디에 만리장성이라는 글자가 있습니까?
2. 사기 몽염점의 해당 문장을 발췌해 보여 주십시오. (만리 장성과 매우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3. 위키피디아 가이드 라인에 '독자 연구'를 멋대로 해석해서 저에게 적용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학술 논문만이 acceptable하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 일일이 논문 자료를 요구하는 가이드 라인은 없습니다. 당신이 만든 독특한 기준을 제가 준수할 의무는 없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28 (KST)

스스로 이해하기를 기다리는건 너무 바보짓 같아 정리해드릴게요. 독자연구 방지 = 출처 제시하기 = 신뢰할 만한 출처 이런 말입니다.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학술성' 항목을 보면

  • 자료들이 학술 단체에 의해 검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상호검토된 출처로 출판되었고, 대학의 기관지 등에 의해 검토되어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 학술적인 참고서적으로서 추천할 만한 내용이 선호됩니다.
  • 책이나 논문의 제목이 제시된(작성자가 명시된)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더욱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그 글을 전문가가 작성하였고, 그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xakyn님은 대체로 이 기준에 맞게 편집을 하시는데, raise님은 주로 구글 검색, 언론 검색, allempires와 같은 알 수 없는 '웹사이트'를 출처로 대시네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3 (KST)

제가 하려던 내용을 제시해 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4 (KST)

위키피디아의 신뢰할 수 있는 출처 항목에는

대체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와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입니다. 통상적으로, 사실의 확인, 법적인 문제의 검토, 특정한 일에 대한 증거와 논의를 세밀하게 검토를 한 출처일 수록 더욱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학술적이고 상호검토된 정기간행물은 높이 평가되며, 이를 찾아볼 수 있는 역사나 의학, 과학 같은 분야의 경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됩니다. 이러한 분야의 출처로는 신뢰할 수 있는 비학술적인 출처도 사용될 수 있는데, 특히 이들이 높이 평가되는 주류 출판물인 경우에 그러합니다. 출처의 적절성은 늘 문맥의 영향을 받습니다. 출처마다 서로 주장하는 내용이 다를 경우, 어느 쪽이 어느 견해를 가지는지 문서에서 명확히 다뤄야만 합니다.
사실 확인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거나 편집상의 감독이 없는 출처는 문서 스스로에 대한 근거로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출처에 대한 내용은 그 주장이 신뢰할 만한 출처에서도 출간되지 않는 한, 제3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주장을 되풀이하면 안 됩니다.

정기 간행문도 acceptable하다고 나와있습니다. 즉, 논문만 acceptable하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즉 신문 기사가 unacceptable하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6 (KST)

문장을 왜곡하지 마십시오. 학술적이고 상호검토된 정기간행물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해당 언론 기고문이나 기타 귀하가 제시하신 근거는 저것에 해당하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39 (KST)
대구일보나 구글 검색물, allempires와 같은 듣도보도 못한 사이트는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잡지, 정기간행물" 등에는 확실히 해당되지 않네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0 (KST)
명심하십시오. 지금까지 당신은 만리장성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할 출처 제시하 하나도 없습니다.
대구일보와 오마이 뉴스 기사가 부적절한 출처에 해당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모돈 선우 시대에 만리 장성이 뚫린 것은 사실이며, 인과 관계가 확실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주장일 뿐입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1 (KST)
대구일보와 오마이 뉴스의 기사가 학술적이고 상호검토된 정기간행물이라고는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만.--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4 (KST)
해당되는 위키피디아의 가이드라인 조문을 보여주십시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5 (KST)
귀하가 위에 퍼온 부분에 있습니다만.--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7 (KST)
신문과 뉴스가 부적절한 출처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다시 말하지만, 해당되는 위키피디아의 도움말 조문을 보여주십시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8 (KST)
신문과 뉴스가 학술적이고 상호검토된 정기간행물에 해당한다고는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는데요?? 그리고, 신문과 뉴스는 기자나 객원 위원에 의해서 쓰여지며, 신문과 뉴스를 학술적으로 상호검토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51 (KST)
저는 신문과 뉴스가 학술적이고 상호검토된 정기간행물 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신문과 뉴스가 위키피디아에서 acceptable한 출처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문과 뉴스가 부적절한 출처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다시 말하지만, 해당되는 위키피디아의 도움말 조문을 보여주십시오
한글판에서는 신문과 뉴스가 받아들일 수 없는 출처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영어판 위키피디아에서[29]는 신문과 뉴스가 받아들일 수 있는 출처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54 (KST)
영어판 위키피디아에는 신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Newspapers tend to misrepresent results, leaving out crucial details and reporting discoveries out of context.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학술적이고 상호검토된 정기간행물에 해당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57 (KST)
그 뉴스가 과연 misrepresent results였는지, 근거를 보여주십시오.
덧붙여 아래 문장을 생략하지 마십시오
Material from mainstream news organizations is welcomed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01 (KST)
이 정도의 내용만 해도 충분히 misrepresent results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것이 오락이었고 스포츠였다. 그 흉노한테는 그 짓도 귀찮았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해석도 아니고 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05 (KST)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이었다는 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른 작가의 관점으로 그런 문장의 뉘앙스 때문에 저 신문기사가 문학이라고 치부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흉노에게 당한 것은 역사적 사실로, 신문기사가 가짜로 꾸며낸 픽션이 아닙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07 (KST)
저는 당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하의 주장은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이다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해당 기사에조차 그러한 내용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리장성을 넘어와 공격-약탈을 하였다는 내용과 만리장성은 무용지물이라는 내용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09 (KST)
여기서는 국어학적 개념이 필요할 것 같군요.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이다만리장성을 넘어와 공격-약탈을 하였다는 다르다고 하셨는데 왜 둘의 표현이 다른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글자가 다르다. '무용지물'이라는 명백한 4개의 글자가 없다.' 이런식의 바보같은 해명이라면 기각합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13 (KST)
왜냐하면 만리장성을 넘나들었다는 것이 넘나드는데 만리장성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라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리장성을 넘나들기 위해 흉노가 치러야 했던 희생과 같은 것에 대한 고찰도 전혀 없습니다. 만리장성이 약간이라도 장애를 불러 일으켰다면, 무용지물에 해당하지 않으며, 만리장성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라는 언급은 불가능합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16 (KST)
그런데 흉노과 과연 만리장성 때문에 얼마나 희생을 당했을까 그런 기록이 있습니까? 현재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시절에 완성됬으며 그 시절에는 만리장성이 현재처럼 바다까지 완공된게 아니므로 다른 길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님의 주장은 만리장성이 철벽 경비라는 뉘앙스로 얘기하시는데, 과연 흉노가 만리장성만 침공 루트로 했었는가요? 기록이 있습니까?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21 (KST)
귀하의 이번 주장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진나라 때 쌓은 장성은 명나라 시절에 완성된 만리장성과 전혀 다른 별개의 장성입니다. 이를 무시한 채 완공되지 않은 만리장성이라 말씀하신다면, 이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역사 연구의 기본을 무시하지 마십시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23 (KST)
당시의 만리장성이 현재의 만리장성과 다르다는 것은 상식이고, 일단 이것은 넘어가더라도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이 될 정도로 흉노의 강대함을 강조하는 용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국어학적 개념입니다만.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25 (KST)
만리장성은 진나라 시대에 한꺼번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된 것이 아니고, 그 이후에도 조금씩 늘렸습니다. 즉, 만리장성 사이에 틈도 존재했습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29 (KST)

만리장성 추가편집

한왕 신이 흉노에 투항하고 한나라의 북방을 괴롭히는 장면입니다.

"이에 한나라에서는 번쾌를 파견하여 이를 치게 하였다. 번쾌는 대군, 안문, 운중의 여러 군현을 수복하였으나 요새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여기서 요새가 만리장성이죠. 대군, 운중 등은 만리장성에 쌓은 성들이고요. 왜 만리장성 밖으로 안나갔죠? 당연히 장성이 방어하는데 효과가 있어서 안나간 것이죠. 중국 사람들이 바보라서 쓸모도 없는 만리장성에 엄청난 돈과 인력을 사용했겠습니까? 흉노열전에는 흉노가 한나라를 공격한 기사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물론 한고조 전에는 몽염에게 공격받고 패하는 장면만 나옵니다. 즉, 한나라 전에는 만리장성의 무용성을 증명할 자료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나라는 대부분 장성을 의지해서 지켰고, 약탈은 당했더라도 국경선만큼은 장성을 중심으로 항상 지킬 수 있었죠. 흉노의 약탈마저도 한 무제 이후로는 힘들어지는 모습이고요. 위청과 곽거병이 장성 위쪽 수천리를 전진했기 때문이죠. 역사서에서 흉노가 만리장성을 무력화한 때를 찾자면 모돈 선우~ 군신선우(한 무제) 때에 불과합니다. 그마저도 만리장성이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가 월지 등 다른 국가들과 달리 흉노의 공격에서부터 버틸 수 있었고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6 (KST)

제발 부탁인데, 흑백논리,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세요. 만리장성이 뚫린 적이 있다 한들 완전 무용지물이라고 볼 수도 없고, 그 반대 기록도 많습니다. 반대로, 만리장성이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흉노의 공격을 죄다 막아낸 천하무적의 요새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게 적절하지 raise님처럼 이거다 아니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대체 왜 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raise님 정도의 식견이면 몽염은 당연히 알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만리장성이 죄다 무용지물이었다는 식으로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죠?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8 (KST)
직접 떠 먹여줘도 먹지 못하는 아이에게 일부러 밥을 줄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내일을 위해 이만 잠을 자도록 하겠습니다. raise님은 사기 본기에서 한고조랑 무제 부분, 몽염열전, 흉노열전이라도 읽고 오셨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49 (KST)

그것은 당신의 순수한 "독자 연구" 엉뚱하게 말 돌리지 마시고, 근거를 보여주십시오. 만리 장성과 매우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있다고 하는 기록과 신뢰할 수 있는 출처 혹은 학술 논문 혹은 신문 기사, 정기 간행물을 보여주십시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52 (KST)

알려 줘도 모르겠다고 하는데 뭐하러 알려주나요 위에 다 알려줬는데 ^^ 가서 흉노열전 읽어보고 오세요. 몽염이 흉노를 격퇴한 다음에 모돈 선우 때까지 흉노가 한나라 공격한 기록이 있나 없나. 흉노열전을 내가 다 쳐서 올려줄 수도 없고 알아서 찾아서 읽어보세요. 사마천의 사기를 신뢰 못하겠으면 뭘 신뢰하겠다는건지 알 수가 없군요 허허 완전 흑백논리와 이분법... 분명히 말하고 마지막으로 잡니다. 만리장성은 천하무적의 장벽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기능은 했다 따라서 연(燕), 진(秦), 한(漢)나라 시대가 계속되는 동안 이 만리장성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는 표현은 일개 개인의 '주장'일 뿐입니다. 정확히 하려면 "흉노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세웠으며, 몽염이 이를 대대적으로 개축했다. 그리고 실제로 몽염이 장성을 개축한 이후 모돈 선우 시절까지는 흉노가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돈 선우 이후 흉노는 만리장성을 넘어 자주 공격을 감행했다." 최소한 이정도는 되야죠. 원참. 이렇게 정확히 떠서 먹여주고 이빨로 씹어주고 식도까지 움직여줬으니 소화는 알아서 하세요 adida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56 (KST)

그러니까 장성때문에 흉노가 공격을 하지 않았었다는 역사 기록, 논문, 학술 자료, 정기 간행물, 신문 기사, 뉴스를 하나라도 보여주십시오. 없을 시에는 그 독자 연구를 기각하겠습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3:58 (KST)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위의 독자 연구를 기각하여도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귀하의 주장 역시 독자 연구에 해당하여 기각되어야 합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01 (KST)
저의 주장은 최소한 역사 기록, 논문, 학술 자료, 정기 간행물, 신문 기사, 뉴스중에 하나의 출처라도 걸려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독자연구가 아닙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02 (KST)
귀하가 출처로 걸어 놓은 뉴스 기사에는 어디에도 만리장성은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만리장성을 수시로 넘나들었다는 수준의 서술은 있을지 몰라도 말이죠. 그러므로 당연히 독자연구입니다. (수정합니다. 해당 표현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흉노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므로 역시 해당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06 (KST)
당신의 문장속에 무용지물이라고 인정하고 있군요. 뿐만 아니라, 만리장성이 있었는데도 흉노에게 당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 모돈 선우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주장하는 독자 연구는 역사 기록, 논문, 학술 자료, 정기 간행물, 신문 기사, 뉴스중에 어디 하나 출처 없는 내용입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09 (KST)
네. 저는 제 주장을 철회했습니다. 그러니 귀하의 주장에 대해서 명백하게 명시된 출처를 제시하십시오. 만리장성이 무용지물이었다라고 명백하게 명시된 출처를 보여 주시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10 (KST)
바로 위의 기사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당신 스스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11 (KST)
해당 내용은 흉노에 대한 내용이 아니므로 이 논쟁과 관련이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13 (KST)
  • 중국을 통일한 한 고조 유방 때에는 만리장성을 방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흉노족의 침입으로 평성에서 포위당하는 수모를 겪었는데 이를 보면 만리장성은 군사적 의미 외에도 정치적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 흉노는 한족의 그런 애절한 뜻을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툭하면 만리장성을 넘어와서 분탕질을 쳤다. 그들에게는 그 것이 오락이었고 스포츠였다. 그 흉노한테는 그 짓도 귀찮았다. 만리장성을 넘어와서 한족 땅에 아예 주저 앉았다.
이 문장에 명백한 '흉노'라는 2글자가 존재하는데 흉노와 관련이 없다? 당신의 주장은 기각합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16 (KST)
분명 만리장성을 방어하고 있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무용지물이라면 방어할 이유가 없으며, 또한 명백하게 군사적 의미 및 정치적 수단이라는 내용, 즉 만리장성의 효용성도 언급되어 있는데 어떻게 무용지물이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습니까???
또한 두번째 신문 기사는 아예 만리장성의 쓸모나 용도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툭하면 넘어와서 분탕질을 쳤다는 언급은, 방어 능력이 현저하게 낮음을 말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합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20 (KST)
이것은 국어학적 개념이며, "툭하면 넘어왔다"라는 뜻은 장성이 쓸모가 없었다는 뜻과 다름이 없습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22 (KST)
그것은 귀하의 독자연구일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24 (KST)
아니요. "툭하면 넘어왔다" 와 무용지물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귀하의 독자연구입니다. 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26 (KST)

만리장성 문제 정리편집

Raisekept 님의 주장이 무엇인지는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귀하는 현재까지 근거라고는 오로지 언론 기고문을 통해서, 그것도 기고문 안에 명시되지도 않은 내용을 유추하여서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독자연구 금지의 공개 발표된 자료를 토대로 이를 확대 재생산한 내용에 해당합니다. 귀하는 명백하게 만리장성은 무용지물이었다라고 명시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하십시오. 귀하의 언론 기고문은 참고자료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아니며, 또한 귀하가 근거로 제시한 언론 기고문에는 귀하의 주장 자체도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귀하의 지금까지의 주장은 모두 무용합니다.

이상이 저의 주장과 요구입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이 토론을 지켜본 다른 분들께서 내려주시리라고 봅니다.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며, 밤이 깊었으니 내일 다시 보도록 합시다. 일방적으로 토론을 중단하고 떠나게 된 점은 깊이 사과드립니다. 편히 잠드시고 내일 보도록 하지요.--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32 (KST)

아니요. 신문기사를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아니라고 하는 위키피디아 도움말 조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오용하지 마십시오. 최소한 저의 주장은 저만의 독자 연구가 아니며,공신력 있는 언론 매체를 통해 저와 같은 주장을 하는 기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주장은 하다못해 신문기사라도 어떤 출처도 찾을 수 없군요. 그것을 신뢰할 수 없는 독자연구라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독자연구라고 Pushing하는 내용도 따지고 보면 독자연구가 아니라 국어학적 개념 차이입니다.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픽션이나 거짓말이 아닙니다. 즉 지금 당신이 나에게 따지고 있는 내용은 국어학적 개념차이일뿐, 독자 연구와 상관 없습니다.Raisekept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04:34 (KST)
...우선 전 이 문서에는 큰 관심이 없으며, 위키백과의 시스템이 이 토론 과정에서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음을 밝혀둡니다.
한국어판의 정책과 지침을 기반으로 관료주의적으로 해석하면 님의 말씀도 틀린 건 아니군요. 하지만 백:독자연구 금지 문서에서는 1차 자료를 2차 자료보다 우선하는 암시가 있고, 백:확인 가능#수상한 출처 또는 그 아래 '개인이 출판한 출처 (인터넷 또는 서적)'의 자비 출판물에 오마이뉴스가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오마이뉴스는 시민기자 방식이기 때문에 스스로 출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가 않고, 왜곡된 관점이나 사실을 품은 기고도 (들키지 않으면 거짓말조차도) 기사로 올라올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시사적인 부분에서야 검증이 가능하고 사진자료나 인터뷰 등을 쓰려고 하는 것이니 2차 출처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쓰고 있습니다만...
'국어학적 개념'같은 것은 제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문서의 내용과 연관이 되어버리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Dus|Adrenalin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20:41 (KST)
일반적으로 신문기사의 내용을 위키백과에 올릴 수는 있지만, '논란'이 있거나 예상되는 경우는 출처가 서로 다른 여러 개의 기사 또는 상호 검토된 자료(저널, 논문 등)가 필요합니다. jtm71 (토론) 2009년 2월 24일 (화) 17:08 (KST)
신문기사 나와있으니 출처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반대로 사마천의 사기까지 인용해서 보여줬지만 부족하다고 하는 분에게 잘 설득이 될런지 adidas (토론) 2009년 2월 24일 (화) 17:09 (KST)
더 큰 문제는 신문기사를 출처라고 제시하는데, 정작 그 신문기사 속에 주장하는 내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해당 사용자는 신문기사 속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는 내용을 당연한 인과관계에 의해서 나타나는 당연한 결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죠. 이건 명백한 독자연구에 해당한다고 봅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24일 (화) 17:52 (KST)

흉노 문서를 보호합니다.편집

토론의 결론을 낼 때까지 본문을 잠그겠습니다. -- ChongDae (토론) 2009년 2월 24일 (화) 15:09 (KST)

논문편집

유라시아를 흔든 거대 제국 흉노. 여기에 흉노에 대한 중요한 논문이 있습니다. 혹시 이것을 분석할 수 있는 분 있습니까? Komitsuki (토론) 2010년 11월 28일 (일) 23:52 (KST)

2019년 6월 17일의 편집 요청편집

218.148.101.165 (토론) 2019년 6월 17일 (월) 12:51 (KST)

소위 '훈육'이라 불리는 흉노가 전국시대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국시대 문헌이자 사서로 더욱 유명한 맹자 양혜왕 장구하에는 '대(태)왕사훈육'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태왕께서 훈육을 섬겼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태왕은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증조할아버지인 고공단보를 뜻합니다.

즉 전국시대와 춘추시대, 그리고 주나라를 거슬러 은나라 시대에 이미 흉노의 국가가 있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입니다. 서두에 이 같은 내용이 덧붙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해당 내용은 이미 잘 알려진 것으로 구문의 출처가 맹자라는 것 외에 특별한 참조문헌을 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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