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자키 도모야

사토자키 도모야(일본어: 里崎 智也, 1976년 5월 20일 ~ )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다.

사토자키 도모야
里崎 智也

Tomoya Satozaki

사토자키 도모야
(2011년 8월 6일, 지바 마린 스타디움)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생년월일 1976년 5월 20일(1976-05-20)(47세)
출신지 도쿠시마현 나루토시
신장 175cm
체중 88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포수
프로 입단 연도 1998년
드래프트 순위 2순위
첫 출장 2000년 4월 6일
경력
일본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8년
WBC 2006년
사토자키 도모야
일본어식 한자里崎 智也
가나 표기さとざき ともや
국립국어원 표준사토자키 도모야
통용 표기사토자키 토모야
로마자Tomoya Satozaki

인물 편집

프로 입단 전 편집

도쿠시마현 나루토시 출신으로 데이쿄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로부터 2순위로 지명돼 입단했다.

프로 입단 후 편집

1999년 ~ 2001년 편집

입단 1년 차인 1999년 8월에는 왼쪽 손목에 골절상을 입어 두 차례 수술을 받은 후 약 2년 간의 재활 훈련을 경험하는 등 입단 이후부터 부상 슬럼프에 빠졌다. 2001년에는 2군 올스타전인 프레시 올스타 게임에서 1홈런 3타점을 기록하여 맹활약한 공로로 MVP에 선정되었다.

2002년 편집

시미즈 마사우미를 대신하는 주전 포수의 자리를 놓고 하시모토 다스쿠 등과 포지션 경쟁을 하여 개막 이후부터 잠시 포수를 맡아 기대되고 있었지만 그 해에도 뚜렷한 결과를 남길 수 없었다.

2003년 편집

이듬해 5월 4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연장 11회초에 3대 3 동점인 상황에서 지바 롯데 감독인 야마모토 고지는 시미즈 마사우미의 대타인 이노우에 준을 내보낸다. 그러나 이후 다이에 감독인 오 사다하루가 좌완 투수인 와타나베 마사카즈를 등판시켰으며, 야마모토 감독은 사토자키를 대타로 내보냈다. 여기서 사토자키는 훌륭한 기대에 부응해 결승 3루타를 때렸다. 경기 전날에는 조모가 사망하면서 조모의 영결식을 불참해서까지의 출전이었던(원래는 상고가 인정된다) 사토자키는 이 경기에 수훈 선수로 선정되면서 경기 직후에 가진 히어로 인터뷰 도중 끝내 눈물을 흘렸으며 그 후 위닝 볼은 조모의 묘소에다 바칠 수 있었다.[1] 그 이후 규정 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타율 3할 1푼 9리, 홈런 8개의 성적을 남기는 등 1군에서의 모든 활약을 완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5년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간판 포수로 군림하게 된다.

2004년 편집

지바 롯데의 신임 감독 바비 밸런타인이 취임한 2004년에는 주전 포수의 자리가 확실시되었지만 4월에는 왼쪽 무릎에 부상을 당하면서 수술했기 때문에 출전 경기 수는 61경기에 머물렀다.

2005년 편집

이듬 해인 하시모토 다스쿠와의 병용으로 활약하는 등 기본적으로 상대편 선발 투수가 좌완 투수일 경우에는 사토자키, 우완 투수가 등판할 경우에는 하시모토라고 하는 형태였지만 우완 투수가 선발인 경우에서도 출전하기도 했다. 4월 27일의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4번 타자로 발탁되었다. 10월 17일의 플레이오프(제2 스테이지)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5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에서 8회초에 1대 2의 1점 차로 뒤진 상황에서 역전 2루타를 때려내 팀을 31년 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 후 일본 시리즈에서도 센트럴 리그 우승 팀인 한신 타이거스와 상대하면서 활약을 하는 등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6년 편집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 대표팀 선수로 발탁돼 출전하여 포수로서 팀의 우승에 기여하는 등 22타수 9안타, 타율 4할 9리, 1홈런, 5타점을 기록해 럭키 보이로서 지명도를 올렸고 대회의 우수 선수(포수 부문)로 선정되는 활약을 했다. 4월 26일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그의 출신지인 도쿠시마 현으로부터 특별 공로상을 수상했다. 5월 2일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전에서는 전년도에 팀 동료였던 와타나베 슌스케가 기록한 일본 기록 타이인 5타석 연속 삼진을 기록했는데 여섯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는 등 불명예 기록 경신은 피할 수 있었다. 또 올스타전에서는 처음으로 팬 투표(포수 부문)에서 선정되어(2005년에는 감독 추천으로 출전) 고교 시절 단 한 개의 안타를 칠 수 없었던 같은 출신지의 선수인 가와카미 겐신으로부터 첫 안타가 되는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그 해에는 하시모토 다스쿠의 부상과 부진도 있어 정포수 자리를 차지했다. 구단으로서는 1985년의 하카마다 히데토시가 기록한 이후 21년 만에 규정 타석을 채웠고(구단 이름이 지바 롯데 마린스로 변경되고 나서는 처음) 골든 글러브상베스트 나인을 동시에 선정되었다.

2007년 편집

2007년부터는 밸런타인 감독에 의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해에도 규정 타석을 채우면서 팀내에서 가장 높은 75타점을 기록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활약을 했다. 그리고 2년 연속으로 골든 글러브상과 베스트 나인을 동시에 수상했고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타이완에서 열린 최종 예선전인 3차전 중화민국 대표팀과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다.

2008년 편집

전반기에서 이미 부상을 당해 팀 전력에서 이탈했고 정확히 같은 시기에 다른 포수들도 부진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사토자키가 없는 동안에 팀은 크게 침체되었다. 복귀 이후에도 부상의 영향 때문에 타격으로 완전 부활을 이룬 하시모토 다스쿠와는 대조적으로 타율도 급격히 떨어지는 등 규정 타석에는 채우지 못했다.

2009년 편집

타율은 떨어졌지만 하시모토의 부진도 있어 주전 포수 자리에 복귀하는 등 다시 규정 타석을 채워 리그 상위인 도루 저지율 3할 8푼 2리를 기록했다.

2010년 편집

본인의 타격 부진이나 마토바 나오키의 높은 평가도 있어 출전 기회가 전년도부터 줄어들었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의 세이부전에서는 10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도루 저지율이 전년도 38%에서 17%로 급락했다.

에피소드 편집

 
타석에서 스윙하고 있는 사토자키(2010년)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 시절의 사토자키
  • 성격은 항상 긍정적이며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한다.
  • 코의 바로 밑에 있는 큰 점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본인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긴장했을 때에는 그것에 손을 대는 등 침착함도 있다.
  • 교류전에서는 2005년부터 3년 연속 만루 홈런을 때려냈다. 그것도 2006년, 2007년에는 빗속에서 진행된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의 투 아웃 상황에 역전 만루 홈런이었다. 히어로 인터뷰에서도 이 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특히 비가 내리는 만루의 진구 구장은 재수가 좋은 것 같습니다”라고 발언했다. 2008년 인터 리그전에서는 만루 홈런이 없었지만 정규 시즌에서의 만루 홈런을 때린 경기가 있어 4년 연속으로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2008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현재 구단에서 4년 연속으로 만루 홈런을 때린 선수는 사토자키가 유일하다.

출신 학교 편집

선수 경력 편집

프로팀 경력
국가 대표 경력

수상·타이틀 경력 편집

개인 기록 편집

첫 기록 편집

기타 편집

  • 올스타전 출장 : 3회(2005년, 2006년, 2009년)

등번호 편집

  • 22(2000년 ~ 2014년)

통산 성적 편집

연도별 타격 성적 편집

연도 소속




2

3





도루
실패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

고의
사구









O
P
S
2000년 지바 롯데 4 7 7 2 3 2 0 0 5 1 0 0 0 0 0 0 0 2 1 .429 .429 .714 1.143
2001년 9 19 18 0 5 0 1 0 7 5 0 0 0 0 1 0 0 6 0 .278 .316 .389 .705
2002년 12 25 23 1 1 0 0 1 4 1 0 0 0 0 2 0 0 9 0 .043 .120 .174 .294
2003년 78 253 213 28 68 13 2 8 109 39 0 1 6 5 22 2 7 45 4 .319 .393 .512 .904
2004년 61 195 174 20 37 7 0 6 62 19 0 0 3 1 17 1 0 41 3 .213 .281 .356 .638
2005년 94 333 297 40 90 19 2 10 143 52 1 0 6 2 25 0 3 74 7 .303 .361 .481 .842
2006년 116 449 382 50 101 23 1 17 177 56 2 1 8 5 45 3 9 95 7 .264 .351 .463 .815
2007년 127 528 477 56 129 27 3 14 204 75 1 0 4 6 36 1 5 109 4 .270 .324 .428 .752
2008년 92 381 330 54 86 8 0 15 139 45 1 1 2 2 44 2 3 92 8 .261 .351 .421 .772
2009년 124 479 414 39 97 22 1 10 151 49 0 2 5 5 49 2 6 121 7 .234 .365 .321 .685
2010년 78 295 247 40 65 10 0 10 105 29 1 0 2 1 40 1 5 91 8 .263 .375 .425 .800
2011년 109 397 338 28 75 8 1 5 100 25 0 1 12 4 40 0 3 91 7 .222 .306 .296 .606
2012년 120 439 385 35 94 12 0 9 133 41 0 1 14 3 33 0 4 80 11 .244 .298 .345 .643
통산 : 13년 1024 3800 3305 393 851 151 11 105 1339 437 6 7 62 34 354 12 45 856 67 .257 .329 .405 .734
  • 2012년 기준.

연도별 수비 성적 편집

각주 편집

  1. 그 에피소드는 2004년 3월 20일 니혼 TV에서 방송되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루어졌다.
  2. 와타나베 슌스케와는 같은 연령에 수상했지만 배터리가 같은 연령에 수상자로 선정된 사례가 퍼시픽 리그에서는 처음이다.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