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흐 블로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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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블로힌은 [[디나모 키예프]]에서 총 19년 동안 몸담으면서, 8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77-78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또 다시 [[FC 바이에른 뮌헨|바이에른 뮌헨]]을 격파하고 4강까지 진출하였다. 4강에선 독일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나 홈 경기에선 승리를 거두었으나, 원정에선 패해 결승전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소련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433경기에 출전해 211골을 기록한 기록은 소련 리그 최다 기록으로 역사에 남아있다.
 
한편, 클럽에서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소련 국가대표로도 꾸준히 출장하면서 활약하였다. [[1972년 하계 올림픽]]과 [[1976년 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 [[1982년 FIFA 월드컵]]에서는 폴란드 대표팀에게 밀리면서 4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시간이 흘러 [[이고르이고리 벨라노프]]가 이끌던 시대의 소련은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연장 접전 끝에 16강에서 탈락하였다. 그러나, 블로힌은 1986년에 소련 국가대표팀 최초로 A매치 100경기를 돌파했으며, 은퇴까지 국가대표로 112경기에 출전하는 기록을 남겼다.
 
1990년에 선수에서 은퇴한 그는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그리스]]에서 여러 팀들의 감독을 맡았으며,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3년, 우크라이나가 유로 2004 예선에서 탈락하자 블로힌이 우크라이나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월드컵 유럽 예선을 조 1위로 통과하였다. 우크라이나는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월드컵 첫 출장임에도 8강까지 올랐는데, 블로힌은 스위스와의 16강전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차마 못봐서, 선수에게 지휘를 맡기고 라커룸에서 결과를 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