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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협만치가 「남쪽으로 떠났다」고 해서 그 「남쪽」을 굳이 왜국으로 지목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점(실제로 목협만치가 호종했던 문주왕은 왜가 아닌 신라에서 원병을 얻어 돌아왔다)
#. 소가노 마치의 손자는 소가노 고마(蘇我高麗)로서 고려(고구려)를 지칭하는 이름이었는데, 백제의 명문 씨족이 굳이 「고려」라는 단어를 손자의 이름으로 지을 이유가 없다는 점.<ref>또한 소가노 마치의 아들 이름인 가라코(韓子)나 손자 고마(즉 소가노 이나메稻目의 아버지) 등의 이름이 단순히 「이국풍」이라는 점에서 소가노 마치가 도래인이라는 설의 근거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소가 씨가 실은 도래인이었다, 고 말하는 설이 오히려 소가 씨를 「역적」으로 보았던 사관과도 맞아 떨어졌기에 넓게 퍼질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미즈타니 치아키(水谷千秋)의 지적도 있다. 또한 「가라코(韓子)」라는 이름은 《일본서기》게이타이 천황(繼體天皇) 24년 가을 9월조의 주에「대일본인이 도나리(蕃)의 여자를 얻어서 낳은 것을 가라코라고 한다(大日本人娶蕃女所生為韓子也)」라고 되어있는 것처럼 한반도인과 왜인 사이의 혼혈아를 통칭하는 용어였다는 점에서 실존했던 인물의 이름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ref>
 
== 가계 ==
* 아버지 : [[목라근자]]
** 대장군 : 목만치(木滿致, 403~475)
 
== 참고 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