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위병 (핀란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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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 제국]]의 식민지였던 [[핀란드 대공국]]에도 정치적 불온과 사회적 혼란이 닥쳐왔다. 핀란드 주민들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민병대를 조직했으나, 이들은 곧 정치성향에 따라 좌우로 분열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결과 핀란드는 독립함과 동시에 내부 투쟁이 시작되었다. 1918년 1월 27일 핀란드 정부는 백군을 동원해 그때까지 핀란드에 남아 있던 러시아 주둔군들의 무장해제를 명령했다. 같은 날 공산주의 적군은 혁명을 선포했고 유혈낭자한 내전이 뒤따랐다([[핀란드 내전]]).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남작이 이끄는 백위대는 이 내전 과정에서 백군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내전이 끝나자 [[핀란드 방위군]]과 경찰이 결성되었다. 백위대는 1934년까지 육군 내 민병대로서 취급되었고, 편성도 따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1934년 모든 전투원이 정규군으로 통합되고 백위대는 의용병 훈련조직으로만 남게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표방했지만 사실상 반좌파였고, 특히 반공주의였음은 확실하다. 때문에 노동계와 좌익들은 이들을 꺼려했다. 그러나 1932년 극우 반공주의 [[라푸아 운동]]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맨스탤래맨챌래 반란]]) 백위대는 정규군과 함께 정부에 대한 충성을 지켰고, 쿠데타 진압군의 주력을 이루었다.
 
백위대 출신병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 [[붉은 군대]]와의 싸움에서도 크게 활약했다. 2차대전 종전 이후 [[파리 조약 (1947년)|파리 조약]]에서 제시된 조건에 의해 백위대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