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1세 드 부르고뉴 공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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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474년까지는 승승장구하여 뻗어나갔다. 샤를은 자신의 소유지를 확장하여 하나의 주(州)로 편성하고 그것을 프랑스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도록 했다. 그러나 당시 부르고뉴는 루이 11세가 [[솜 강]] 연안(지금의 [[로렌]]지방 일대) 부르고뉴 영토를 장악하는 바람에 영토가 둘로 나뉘어버리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샤를은 당연히 이 지역을 합병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또한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요청하여 자신의 영지를 프랑스에서 독립된 하나의 왕국으로 승인 받으려는 움직임도 취하였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당연히 루이 11세의 심기를 건드렸고, 루이 11세는 경제 봉쇄령과 같은 다양한 채녈을 가동하여 샤를을 막았다. 샤를은 샤를대로 루이 11세에 대항하는 프랑스 내 유력자들의 동맹인 공익동맹[[공익 동맹]](共益 同盟)의 주요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됨으로써 루이 11세에 대한 평생에 걸친 투쟁에 나섰다.
 
루이 11세는 [[콩플랑스 조약]](1465. 10)으로 그에게 솜 강 연안의 영토를 돌려주었고 [[샹파뉴]]를 결혼 지참금으로 삼도록 해 자기 딸 안과 결혼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한편으로 루이 11세는 디낭과 리에주의 도시들을 계속 부추겨 부르고뉴에 반기를 들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