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양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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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역사: 고구려가 양평을 404년에 점령했다는 근거 없음. 점령 직후 요동부로 불렀다고 보기도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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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양(遼陽)은 양평(襄平)으로 불렸고, 이 지방 일대를 중국이 지배하던 중 중심지가 되었다. [[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요동부의 중심이 되었다. [[진나라]](秦)는 요동부의 군치(郡治)를 이곳에 두었고, [[전한]]과 [[후한]]의 시대에는 영토가 동으로 확대하여 [[현토군]](玄菟郡)에 속하였다.
 
404년 [[고구려]]가 양평(襄平)을 점령하고차지한 후 요동이란 요동부로이름으로 개명하였다불렸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하고 설치한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는 후에 소재지를 평양에서 이곳 양평으로 옮겼다.
 
[[요나라]] 시대에 요양으로 개명하여 요의 부도(副都,陪都)[[동경 요양부]](東京遼陽府)가 되었다. [[금나라]]도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를 부도(副都)로 하였다. 이 시기 동경에 있었던 황족 烏禄은 제 4대 황제 [[해릉왕]](海陵王)에 반항하는 세력에 의해 옹립되어 해릉왕을 멸하고 제5대 황제 [[금 세종]]으로 즉위하여 요양에 백탑(白塔)등을 건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