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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osQ (토론) 2008년 9월 18일 (목) 23:48 (KST)

출처편집

안녕하세요. 위키백과에 기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왕문서에 출처로 사용해주신 다음 카페 사이트는 적절한 출처라고는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위키백과에서는 출처로 카페나 블로그는 개인이 출판한 출처로 신뢰성의 문제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 서적과 같은 다른 출처를 제시해주셨으면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백:확인 가능, 백:독자연구 금지를 확인해주세요. --아들해 (토론) 2008년 9월 20일 (토) 11:24 (KST)

답변편집

좋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신뢰성의 문제 때문에 다음 카페를 출처로 쓰는 것이 고민이 되었으나 저자를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써 넣었습니다. 그 글의 저자는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1998년부터 고구려의 발견,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 새로쓰는 연개소문전, 지도로 보는 한국사 등 저서를 출간하였고 고구려사를 문명사적 입장에서 연구를 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태왕 문서에서 사용한 김용만 소장의 글은 책으로 출판된 바 없으나 좋은 글이고 김용만 소장에 대해 신뢰가 가능하기 때문에 써도 무방하다 여겨집니다. 다시 한번 좋은 충고 감사드립니다. --고구려인

태왕과 관련된 여러 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광개토대왕 이외에는 '태왕'의 용도는 보이지 않으며, 진흥왕이 '태왕'을 사용하였다는 것도 금시초문입니다. 태왕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분열기에 고구려가 상승하면서 중국의 '황제'에 대응하여 쓰여진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독립적으로 문서를 발전시킬 만한 알맹이가 거의 없습니다. 차라리 광개토대왕 항목에 간략하게 써 넣는 것이 낫다고 생각됩니다만. adidas (토론) 2008년 9월 23일 (화) 02:15 (KST)
안녕하세요. 태왕 문서의 출처나 근거 문제로 문의드립니다. 고구려인님께서는 "태왕이 중국의 황제에 대응하여 쓰여진 표현"이라고 하셨는데, 현존하는 어떠한 기록에도 그러한 내용은 없으며, 단지 정황을 통해서 유추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한 유추는 아직까지 학계에 공인을 받지 못한 부분이며, 그런 내용을 명백한 출처도 없이 서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심지어, 광개토왕릉비에서조차 태왕와 왕은 전혀 구분없이 혼용되고 있고, 더불어 태왕보다 왕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명확한 출처가 없다면 인정받기 어려운 내용입니다.--Xakyntos (토론) 2008년 9월 23일 (화) 09:47 (KST)
진흥왕이 '태왕'을 사용한 것은 북한산 순수비문에서 발견됩니다. 眞興王巡狩碑興太王及衆臣等巡狩管境之時記□... 참고로 신라에서 태왕이 사용된 것은 법흥왕 시대까지로 올라갑니다. 여기에는 저의 착오가 있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왜 독립적으로 문서를 발전시킬 만한 알맹이가 거의 없다고 하시는지 의문이 듭니다. 천일, 지일, 태일에 관한 이야기는 사기 봉선서와 회남자 등 중국 고기록에 빈번히 나타난다고 하였고, 천, 지, 태는 도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태왕이 황제에 대응하여 쓰인 표현'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고구려가 중국을 의식해서 일부러 태왕을 칭하였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천지태와 고구려의 천하관으로 태왕이란 용어가 쓰이게 되었고, 태왕이 가지는 위상을 굳이 말하자면 중국의 황제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왕이 황제와 대응됨은 태왕 밑에 제후가 있었음을 통해 뒷받침 됩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다물후, 안국군, 양국군과 같은 후(侯)와 군(君)이 보이는데, 이는 태왕 밑에 제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어느 사서에 '고구려 태왕은 중국의 황제와 같다.'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더라도 고구려에도 제후가 있기 때문에 태왕과 황제는 서로 대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태왕릉비에서 태왕과 왕이 구분 없이 혼용되는 것은 제가 쓴 이 위키백과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꼼꼼히 읽어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동방 지역에서는 여전히 왕이 최고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왕이 더 많이 쓰인 것도 있지만 '태왕'의 줄임말로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광개토태왕 외에 태왕 칭호가 쓰인 예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고구려 관련 자료가 그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졌고 동방지역, 백제 신라와 중국과의 교류를 막을 정도로 통제력을 발휘했던 고구려가 광개토태왕 이후로 태왕 칭호를 쓰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까?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학계에 깊게 뿌리 박혀 있는 실증주의 사학의 폐해입니다. 고구려인
역사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실증주의 사관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교과서포럼하는 사람들도 19세기적인 낡은 실증주의를 다시 가지고 오고 있고요. 저는 태왕이 중국 쪽에서 쓰이지 않는 한반도 고유의 군주 호칭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점은 문서나 황제 문서에 간략하게 언급하면 그만입니다. 증거가 없다고 다 안된다고 보는 것은 무리겠지만, 정황상 '태왕'이라는 호칭이 고구려에서 일반적으로 쓰였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현재 한국사 연구의 성과 만큼만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사학계에서 전혀 인정되지 않는 주장을 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독자연구 금지의 정신과 맞지 않습니다.
추가로 태왕에 대한 저의 시각을 말씀드리자면, 1. 태왕은 한반도 고유의 군주 호칭이다.(다른 지역의 예를 알지 못합니다) 2. 태왕은 고구려가 세력을 팽창할 때 중국의 황제에 대응하기 위한 표현으로 일시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즉, 왕=태왕의 줄임말로 보기는 어려우며, 문헌증거, 정황증거, 고고학 증거 아무 것도 뒷받침되지 않는 이론이다) 입니다. 아울러 중국식 서열질서에서도 왕이 후, 군보다는 높은 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태왕=왕의 줄임말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adidas (토론) 2008년 9월 24일 (수) 23:46 (KST)
아울러 출처 제시를 요구한 곳에 적절한 주석을 달지 않은 채 출처 틀을 지우시면 안됩니다. 또한 요동, 만주, 연해주, 한반도를 아우르는 '동방 문명권'이라는 표현이 현재 사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지 의심이 됩니다 adidas (토론) 2008년 9월 24일 (수) 23:49 (KST)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처음에 출처 요구 표시가 달렸을 때 기분이 나빠서 그랬습니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글쓰는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해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더 말씀드리고 싶고, 출처로 삼을 자료도 갖고 있음에도 요즘 학교 공부에 밀려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태왕에 대해 위키백과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기 때문에 필요한 절차와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유가 생길 시에 틈틈이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인
사실 저도 태왕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라 성급하게 삭제 요청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위에 Xakyntos님도 태왕 문서가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신 바 있고, 근거가 명확히 잘 제시된다면 좋은 문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8년 9월 25일 (목) 01:27 (KST)

한국사 프로젝트편집

한국사 프로젝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편집을 부탁드리고, 광개토왕릉비 문서에 비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부분은 인용집에 옮겨 주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Ph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19:11 (KST)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 위키 문법에 익숙하지 못하여 사용 및 편집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고구려인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19:52 (KST)

고구려에 관심이 있나요?편집

저와 관심이 비슷하네요. 저는 북한과 해외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구려와 발해에 관심이 많습니다. 발해사에도 관심을 갖고 있나요? --61.99.166.193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19:56 (KST)

반갑습니다. 발해사에도 물론 관심이 있지만 고구려만큼은 아닙니다 ^^ --고구려인 (토론) 2009년 2월 22일 (일) 19:58 (KST)

파일:웰치.jpg의 저작권과 출처를 알 수 없습니다편집

  안녕하세요. 파일:웰치.jpg을 위키백과에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올리신 그림 파일의 내용에 누가 이 내용물을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셨거나, 저작권 라이선스에 대해 명시하지 않아 저작권을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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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yun.jpg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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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점이 있다면 질문방으로 오셔서 질문하시면 되고, 급하시다면 지금 접속중인 것 같은 기존 사용자의 사용자 토론 문서에 도움을 요청하셔도 괜찮습니다. 길라잡이사용법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추모 홈페이지 관리인 분에게 사진을 올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으셨나요?Yknok29 (토론) 2009년 8월 3일 (월) 22:31 (KST)

김용옥(신학자)편집

위키백과 띄어쓰기 정책에 따라 내용을 김용옥 (신학자)로 이동하였습니다. 관련 내용은 여기 덧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행유 (Hoetzyl) ☆1 (토론) 2010년 10월 9일 (토) 16:00 (KST)

토론:광개토왕에 의견을 남겼습니다.편집

확인하시고 반박할 것이 있으면 토론을 통해서 먼저 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2월 16일 (목) 22:53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