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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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날짜=2011-12-7|일본은 진주만의 수심이 15~30m밖에 되지않아 그정도 수심에서 어뢰공격을 하기위해 91타입 롱 랜스어뢰를 개조하여 어뢰머리에 충격완화장치와 수평안정장치를 장착하여 99식 함폭과 m5n기로 뇌격하여 30기의 어뢰중 27기가 적함에 명중하였다(2기 고장, 1기 불명중). 당시의 미국 어뢰 기술로는 67%가 고장이었다고 한다.}}
 
== 진주만 공격 직전상황 ==
[[파일:Battleship row.jpg|right|250px]]
일본군의 공격 임박설에 대한 사전 정보들은 많았으나, 아무도 이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941년 1월 주일대사 조셉 그류는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계획 정보를 입수했다. 공격개시 수시간 전에 진주만 외곽에서 한 대의 잠수함이 발견되고 다른 한 대는 원인 불명인 채 침몰되었으며, 오아우 북쪽 해안 레이다 기지에서는 거대한 비행물체가 포착되었다. 많은 관리들은 일본군의 공격임박설을 알고 있었으나, 그 대상이 일본으로부터 5,000 마일 떨어진 진주만이 아닌 필리핀이라고 생각했다. 1941년 진주만의 일요일 아침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의 일과가 진행되었지만, 진주만 북쪽 200마일에서는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항진하는 항모 위에서 항공기들이 발진하고 있었다. 일본군 항공기의 라디오에는 하와이 방송국에서 흘러 나오는 달콤한 음악이 들려 오고,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어서 공격 목표물을 훤히 볼 수가 있었다고 그 당시 공격에 참가했던 일본제국 해군 소좌 미쯔오 후지다(Mitsuo Fuchida)는 회고했다.
심지어, 레이더에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당일 아침녘에 오기로 한 B-17 폭격편대로 오인하게 된다.(이 문장은 <ref>전쟁영화로 마스터하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따옴)세계대전</ref>
 
== 미국의 피해 현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