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발레리 폰 외스터라이히 여대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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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 [[합스부르크로트링겐가]]
|아버지 = [[프란츠 요제프 1세]]
|어머니 = [[엘리자베트 폰 외스터라이히웅가른 황후|엘리자베트 황후]]
|배우자 = [[오스트리아 대공 프란츠 살바토르살바토어]]
|자녀 = 엘리자베트<br />카를 살바토르살바토어<br />후베르투스 살바토르살바토어<br />헤드비히헤트비히<br />테오도르테오도어 살바토르살바토어<br />거트루드게르트루트<br />마리아 엘리자베트<br />클레멘스 살바토르살바토어<br />마틸데<br />아그네스
|친인척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마리 발레리 마틸데 아말리에외스터라이히'''({{llang|de|Marie Valerie Mathildevon AmalieÖsterreich}}, 본명: '''마리 발레리 마틸데 아말리에'''(Marie Valerie Mathilde Amalie), [[1868년]] [[4월 22일]] ~ [[1924년]] [[9월 6일]])는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이다.
 
그녀는[[헝가리]] [[부더]]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와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트 폰 외스터라이히웅가른 황후|엘리자베트 황후]]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남매들 중 유일하게 어머니 [[엘리자베트 황후가 외스터라이히웅가른 황후|엘리자베트 황후]]가직접 키운 아이였다.아이였기 [[신성로마제국]]때문에 황제신하들 [[레오폴트사이에서는 2세"하나뿐인 (신성아이"라는 로마별칭으로 제국)|레오폴트 2세]](1747 ~ 1792)의 고손자 [[오스트리아 대공불렀으며 프란츠 살바토르|프란츠요제프 살바토르]](18661세 ~황제가 1939)와헝가리와의 결혼해서화해를 10명의추진하던 자녀를과정에서 낳았다.태어난 연애결혼이었으나아이였기 남편이 외도로 낳은 자식이 아버지의 이름인 프란츠때문에 요제프로"헝가리인 지어지는아이"라는 등의별칭으로 수모를부르기도 겪었다했다.
 
[[1890년]] [[7월 30일]]에는 오스트리아 [[바트이슐]]에서 오스트리아 대공 프란츠 살바토어와의 결혼식을 올렸고 [[1895년]] [[6월 11일]]에는 남편과 함께 [[도나우 강]]과 접한 발제궁(Schloss Wallsee)을 구입했다. 과거에 발제궁을 소유했던 [[알프레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발제궁 보수 공사 과정에 참여했고 마리 발레리와 프란츠 살바토어 대공 부부는 [[1897년]] [[9월 4일]]부터 발제궁으로 이주했다.
 
[[1900년]]부터 [[적십자]] 후원에 참여하면서 빈곤층을 위한 병원을 설립하는 등 자선 활동에 참여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 막사를 설립했다. [[1918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소유했던 재산에 관한 권한을 포기하는 내용이 담긴 문서에 서명했다. [[1924년]] [[9월 6일]] [[림프종]]으로 인해 사망했다.
 
{{토막글}}
{{오스트리아 여대공}}
 
[[분류:1868년 태어남]]
[[분류:1924년 죽음]]
[[분류:오스트리아 여대공]]
[[분류:합스부르크로트링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