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구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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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검관구 검'''(毌丘儉<ref>毌의 음을 '무'로 보아 '''무구검'''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진서』의 교감기에 따르면 관구검의 성인 '毌'이 貫(꿸 관)과 같은 자이며, 毋(말 무)와 母(어미 모)자와 혼동하기 쉬우나 다른 글자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진서』의 주석서인 『진서음의(晋書音義)』에는 毌를 毋와 같다고 보아 독음을 무로 읽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 중국의 연구에 따르면 본래의 '''관구검'''이 바른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내용은 《晉書》, 中華書局, 1974판을 참조</ref><ref>일본학자 다나카 도시아키(田中俊明)는 2008년 중국에서 발견된 무구씨조상비(毋丘氏造像碑)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의 고고학』 2008년 가을호에서 관구검이 아니라 '''무구검'''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297405|제목=고구려 공략 유주자사는 '무구검'|날짜=2008-10-05|출판사=연합뉴스|확인일자=2015-06-23}}</ref>, ? ~ [[255년]])은 [[중국]] [[후한]] 말기 ~ [[삼국시대]] [[위 (삼국)|조위]]나라의 무장(武將)으로군인으로, [[자 (이름)|자]]는 '''중공'''(仲恭)이다이며 [[하동군 (중국)|하동군]] 문희현(聞喜縣) 사람이다. 조위의 [[장작대장]] 관구흥(毌丘興)의 아들이다.
[[파일:Guanqiu Jian commemoration stele.jpg|thumb|관구검기공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