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멜리에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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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Méliès, Escamotage d'une dame chez Robert-Houdin (Star Film 70, 1896).jpg|thumb|200px|left|영화 <사라지는 여인>에서 멜리에스가 마술을 선보이는 장면]]
학업을 마친 멜리에스는 형들을 따라 가업에 동참하게 되었고
그렇게 가업을 이어가던 멜리에스는 마술사 [[장 외젠 로베르우댕]]이 지은 로베르우댕 극장의 공연을 보러가면서 마술에 대한 관심를 계속해서 키워 나갔다. 한편으로 에밀 부아쟁이라는 사람에게서 마술 강습을 받았고, 부아쟁은 멜리에스에게 난생 처음으로 공개무대에 나설 기회를 주었다. 그 결과 멜리에스는 [[그레뱅 박물관|그레뱅 밀랍박물관]]의 환상 캐비닛실에서 첫 마술쇼를 진행하였고 이후로는 [[갈레리 비비엔]]로 무대를 옮겼다.{{sfn|Rosen|1987|p=748}}
1888년 아버지가 은퇴하자 멜리에스는 가업 중 자신의 상속분을 두 형에게 팔아넘겼다. 그렇게 얻은 목돈에 아내의 지참금을 더해 로베르우댕 극장을 매입했다. 로베르우댕 극장은 '최고급' 극장으로 무대조명, 지레, 낙하문, [[오토마타]] 등의 설비를 갖췄다고는 하나, 당장 할 수 있는 마술들은 대부분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멜리에스가 신장개업을 하고 나서도 관람객은 저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9년 동안 멜리에스는 혼자서 30가지가 넘는 마술을 새로 고안해, 공연에 희극적이고 멜로틱한 볼거리를 더해 런던에서 보았던 것처럼 꾸며가면서 손님 수를 크게 늘렸다. 이때 선보인 유명한 마술 중 하나로는 '고집센 목잘린 남자'가 있는데, 어느 교수가 연설하던 도중 머리가 잘리지만 아랑곳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고 결국 그 머리가 다시 자기 몸을 찾아 되돌아오는 마술이었다. 로베르우댕 극장을 매입할 당시 극장에 소속되어 있던 기술책임자 외젠 칼멜과 무대 연기자인 [[주안 달시]] (훗날 멜리에스의 정부이자 둘째 아내가 됨) 등도 같이 합류하였다. 극장을 운영하던 중에는 멜리에스의 사촌인 아돌프 멜리에스가 편집장으로 있던 진보 성향의 일간지 <라 그리프> (La Griffe)에 만평을 기고하기도 하였다.{{sfn|Rosen|1987|p=748}}
멜리에스는 로베르우댕 극장의 주인으로서 무대보다는 무대 뒤에서의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본업인 마술 고안 외에도 감독, 기획, 작가, 무대설치, 의상 등을 직접 맡았다. 극장의 인기가 높아지자 [[뷔아티에 드 콜타]], 뒤페레, 레날리 등의 마술사를 극장으로 초빙하였다. 마술 외에도 거짓 무언극, 막간을 이용한 오토마타 공연, [[환등기]] 쇼, 눈과 빛을 이용한 특수효과 등의 공연도 선보였다. 1895년 멜리에스는 환상예술가조합회 (Chambre Syndicale des Artistes Illusionistes)의 회장으로 선출되기에 이르렀다.{{sfn|Rosen|1987|p=748}}
==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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