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루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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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는 [[시칠리아의 군주|시칠리아 왕위]]에 오른 지 1년도 안 되어 [[코르푸 섬]]과 [[에피루스]] 해안일부를 점령하여 [[비잔티움 제국]]령 침략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1265년]] 그는 교황 클레멘스와 아카이아의 기욤 공작, [[라틴 제국]]의 폐위된 황제 [[보두앵 2세 (라틴 제국)|보두앵 2세]]와 조약을 맺고 [[라틴 제국]]과 그 주변 국가에 대한 영토확장을 꾀했다. 즉, 라틴 제국의 부활을 돕는 대가로 영토의 3분의 1을 약속받은 것이다. 샤를은 이로써 [[지중해]]의 강자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제위를 향하여 야심을 불태웠다.
 
카를로는 또한 중부 유럽의 군주들과 다방면으로 동맹을 구축하였다. [[헝가리 왕국]]의 [[헝가리의 군주|국왕]] [[벨러 4세]], 세르비아의 스테판 우로슈우로시 1세, [[제2차 불가리아 제국|불가리아제2제국]] 동맹을 맺어 그리스 제국을 압박했고 셀주크 술탄, 아르메니아, 심지어 몽골까지도 접근했다. [[1269년]] 8월에는 그는 제노바와 통상조약을 맺고 비잔티움의 [[미카일 8세|황제 미카일 팔리이올로구스]]를 고립시켰다.
 
[[1270년]] 카를로는 형 루이 9세가 참가한 [[제8차 십자군|8차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였다. 그해 8월 형 루이가 죽고 십자군의 수장이 되어 튀니스의 아미르와 평화조약을 맺고 시칠리아로 귀환했다. 그러나 귀환길에 유례없는 폭풍우를 만나 18척의 대형선박을 잃고 몇시간만에 시칠리아의 육군과 해군은 괴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