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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간첩이라는 이유로 29년 동안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서옥력은 출소한 뒤 북한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가려했으나 정부가 전향수라며 북송을 제한했다. 이에 대해 서옥력은 "박정희 정권 말기 정보 기관이 깡패들을 동원해 준서약서에 직인을 찍게 했다"며 억울해 했다.
 
전남 신안군 안좌면에서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에 수학 중이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북한 인민군에 편입돼 참전했다가 정전협정으로 그해 11월 제대했다. 이후 북한 내 강원도의 중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며 여성 교원과 결혼하고 19955년1955년 12월부터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수학했다. 졸업 후 평양의 간부양성소에서 일했다.그러다

1961년 8월 남쪽의 고향으로 홀로 내려왔다가 월북할 때 동생들을 포섭하고 정보 수집 등 첩보 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돼 1심에서 사형, 2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990년까지 29년 동안 복역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 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압과 고문에 의한 전향은 무효’라는 판단을 내리고 2017년 7월 25일‘장기구금양심수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를 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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