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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디오니시우스는 현재의 달력에만 서력기원을 활용하였을 뿐이었다. 옛 사건에 대해서도 서력기원을 쓰게 된 것은 그로부터 200여년 후인 잉글랜드의 성직자 [[베다 베네라빌리스|베다]]가 731년 《잉글랜드인 교회사》 (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를 집필하면서 처음으로 활용한 것이 시초로, 이때부터 서력기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베다는 예수 탄생 이전, 즉 [[기원전]]이란 표기도 고안해 잠시 쓰기도 하였으나 이쪽은 세월이 조금 지난 뒤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또 베다는 날짜를 표기할 때 몇째 날, 몇째 주, 몇째 달을 연달아 표기하지는 않았지만 [[교회 라틴어]]에서 쓰던 달력기원을 기반으로 일주일의 무슨 날인지는 숫자로 표기하였다. 베다 이전의 기독교 사학자들은 [[창조 신화|천지 창조]] 첫날을 기준으로 삼은 [[안노 문디]] (anno mundi, 세계 기원)를 쓰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또 아프리카누스는 천지창조로부터 그로부터 닷새 후 [[아담]]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날을 기준으로 삼는 안노 아다미 (anno Adami, 아담 기원)를, [[에우세비우스]]는 [[칠십인역]]에 나온 대로 천지창조로부터 3,412년 뒤를 기준으로 하는 안노 아브라하미 (anno Abrahami, [[아브라함]] 기원)을 사용하였다. 즉 예수탄생 기원을 과거연도 표기의 기준으로 삼기 전에는 각각 천지창조, 아담 창조, 아브라함 탄생을 기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널리 쓰이는 '기원후' (anno Domini, AD)란 표기법은 9세기부터 서유럽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또 연도 뒤에 몇월 며칠을 나열하는 표기법도 1752년이 되어서야 통일 표기법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기원전 (BC)란 표기를 처음으로 수백번에 걸쳐 널리 쓴 사람은 1474년 베르너 로레빙크란 인물로, 《Fasciculus Temporum》를 집필하면서 세계기원 표기와 함께 사용하였다.<ref>Werner Rolevinck, ''[http://www.cervantesvirtual.com/servlet/SirveObras/80248064097793506388868/index.htm Fasciculus temporum]''.</ref> 이후 [[르네상스]] 대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는 '기원후'는 물론 '디오니소스 기원' (Dionysian era), '그리스도 기원' (Christian era), '저속기원' (vulgar era), '보통기원' (common era) 등의 표기가 계속해서 바꿔 쓰였다.<ref>다만 '저속기원'이란 표현은 원래 영어에서 보통스럽고 보편적이란 느낌에서 쓰이던 '저속' (vulgar)이 좀 더 거친 말로 취급되면서 20세기를 전후로 사용을 자제하게 되었다.</ref> 이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이들 표기를 모두 똑같은 기원으로 취급하고 있다.
 
한편으로 베다가 '0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유추해볼 수 있다. 베다는 《잉글랜드인 교회사》 1권의 제2장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가 세워진 뒤 693년, 주님이 오시기 60년 전"에 영국을 침공했다고 밝혀두었다. 또 제3장에서는 "로마기원 798년 [[클라우디우스]]" 대에도 영국을 침공하였으며 이 시기를 "주님이 오시고 46년 뒤...불과 며칠 만에...전쟁을 마쳤다"고 적고 있다.<ref>{{cite web|url=http://www.fordham.edu/halsall/basis/bede-book1.html|title=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English Nation|publisher=}}</ref> 두 연도 모두 실제로는 틀렸지만 여기서 밝힌 대로만 본다면, 로마력을 기준으로 798 - 693 = 107년인데 반해 예수기원을 기준으로 60 + 46 = 106년으로 중간의 한 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되므로, 베다가 예수탄생을 기원으로 한 '기원전'과 '기원후' 사이에 '0년'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충분히 내릴 수 있다. 여기서 베다가 사용한 라틴어 표현은 '주님이 오실 때가 되기 전' (ante incarnationis dominicae tempus)으로 그 자체를 지금처럼 줄여서 쓰지는 않았으며, '그리스도 이전' (Before Christ)이라는 말은 베다의 표현과 대략 뜻만 통할 뿐 정확히 옮겨쓴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베다가 도입한 기원전이라는 말은 [[중세]]를 거치며 산발적으로 계속 쓰이게 되었다.
 
사실 고대 [[로마 숫자]] 체계에서는 '[[0]]'이라는 개념도, 표시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 [[바빌로니아]] 숫자에서는 '무' (無)란 개념을 쓰긴 하였으나 숫자로 취급하지는 않았고, 고대 로마인들도 거의 똑같은 개념을 열거하는 식으로 썼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베다나 디오니시우스는 [[라틴어]]로 숫자를 쓰거나 로마 숫자에 '눌라' (nulla {{해석|무}})란 단어를 병기하는 식으로 표현하였다.<ref name=Dionysius/><ref>Faith Wallis, trans. ''Bede: The Reckoning of Time'' (725), Liverpool: Liverpool Univ. Pr., 2004. {{ISBN|0-85323-693-3}}.</ref><ref>''Byrhtferth's Enchiridion'' (1016). Edited by Peter S. Baker and Michael Lapidge. Early English Text Society 1995. {{ISBN|978-0-19-722416-8}}.</ref> 지금의 숫자 0이 발명된 것은 6세기 인도로, 그로부터 200여년 후인 8세기가 되어서야 아랍 지역에 전파되었으며 이것이 유럽에까지 전해진 것은 다시 세월이 흘러 13세기의 일이었다. 심지어 처음 전해질 당시에도 숫자 0을 이해한 사람은 소수에 그쳤으며 17세기가 되어서야 널리 사용될 수 있었다.
 
지금은 널리 쓰이는 '기원후' (anno Domini, AD)란 표기법은 9세기부터 서유럽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또 연도 뒤에 몇월 며칠을 나열하는 표기법도 1752년이 되어서야 통일 표기법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기원전 (BC)란 표기를 처음으로 수백번에 걸쳐 널리 쓴 사람은 1474년 베르너 로레빙크란 인물로, 《Fasciculus Temporum》를 집필하면서 세계기원 표기와 함께 사용하였다.<ref>Werner Rolevinck, ''[http://www.cervantesvirtual.com/servlet/SirveObras/80248064097793506388868/index.htm Fasciculus temporum]''.</ref> 이후 [[르네상스]] 대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는 '기원후'는 물론 '디오니소스 기원' (Dionysian era), '그리스도 기원' (Christian era), '저속기원' (vulgar era), '보통기원' (common era) 등의 표기가 계속해서 바꿔 쓰였다.<ref>다만 '저속기원'이란 표현은 원래 영어에서 보통스럽고 보편적이란 느낌에서 쓰이던 '저속' (vulgar)이 좀 더 거친 말로 취급되면서 20세기를 전후로 사용을 자제하게 되었다.</ref> 이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이들 표기를 모두 똑같은 기원으로 취급하고 있다.
 
결론은 [[그레고리력]]이든 [[율리우스력]]이든 [[서력기원]]이든 0년이라는 개념 자체가 형성될 환경이 아니었으므로 자연스레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역사학자들도 0년을 존재하지 않는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예컨대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의 기간은 기원전의 500년, 기원후의 499년을 합해 총 999년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1년 다음의 해는 기원후 1년으로 보며, 이 사이에 0년은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본다. 만약 어느 문헌에서 이 같은 기존 관례를 따르지 않겠다고 한다면, 독자들이 그 연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0년이 들어간 연도인지 아닌지를 처음부터 분명히 밝혀야 한다. <ref>V. Grumel, ''La chronologie'' (1958), page 30.</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