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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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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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John of Gaunt, 1st Duke of Lancaster, [[1340년]] [[3월 6일]] ~ [[1399년]] [[2월 3일]])은 [[잉글랜드]]의 왕족이자 [[랭커스터 공작]]이었다. 헨트(Ghent) 출신으로 헨트(Ghent)의 변형인 '''곤트'''(Gaunt) 출신 '''존''' 으로 불리게 되었다.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3세]]와 에노 출신 [[필리파]]의 넷째 아들로, [[흑태자 에드워드]], [[라이오넬 플랜태저넷]]의 동생이자 [[요크의 에드먼드 1세]]의 형이다. 먼 친척이자 [[에드먼드 (랭커스터)|에드먼드]]의 증손녀 블랑쉬와 결혼하여 [[랭커스터 왕가|랭커스터 가]]의 상속권을 획득하였다. 내연녀인 캐서린과의캐서린 스윈포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뷰포트 백작위를 내려 뷰포트 가문을 형성하게 했다.
 
[[랭커스터 왕가]]의 시조였으나, 혼인관계를 통해 [[요크 왕가]]와 [[튜더 왕가]]에게도 조상이 되는 복잡한 인척관계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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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년]]부터 [[1374년]]까지 그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 참전하여 지휘관으로 복무했고, 귀국 후에는 처가인 [[랭커스터 왕가]]의 영지를 상속했다. 조카인 [[리처드 2세]]가 즉위한 뒤에는 섭정 겸 왕의 유력한 조언자로 활약하였으나, [[리처드 2세]]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1399년]] [[리처드 2세]]는 그의 영지를 몰수하려다가 실패했다.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4세]]는 그의첫부인 블랑쉬가 낳은 아들이었고, [[헨리 5세]], [[헨리 6세]], [[에드워드 랭커스터]]는 각각 그의 손자, 증손, 고손이 된다.
 
== 요크 왕가와의 관계 ==
[[요크 왕가]]는 곤트의 존의 동생이었던 [[요크의 에드먼드 1세]]의 후손이었다. [[코니스버러의 리처드]]는 [[요크의 에드먼드 1세]]의 아들로 그의 조카였으나, 곤트의 존의 형이었던 [[라이오넬 플랜태저넷]]의 유일한 상속자인 [[필리파 플랜태저넷]]의 손녀 [[앤 모티머]]와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곤트의 존보다 서열이 낮았던 [[요크의 에드먼드 1세]]의 후손들은 모계를 통해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여 [[랭커스터 왕가]]와 갈등했다.
 
[[캐서린 스윈포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는 그의 둘째 부인이 사망하자 1394년에 캐서린 스윈포드와 정식으로 결혼하면서 적자가 되었다. 존은 그들에게 보퍼트뷰포트 백작위를 내렸고 이들은 보퍼트뷰포트 가를 형성하였다. 곤트의 존의 딸 [[조앤 보퍼트]]는 랄프 네빌과 결혼했는데, 이 결혼으로 태어난 외손자 [[리처드 네빌]]의 딸 [[세실리 네빌]]은 [[요크 왕가]]의 [[제3대 요크 공작 요크의 리처드|요크의 리처드]]와 결혼했다. [[제3대 요크 공작 요크의 리처드|요크의 리처드]]는 그의 동생 [[요크의 에드먼드 1세]]의 손자이며 [[코니스버러의 리처드]]의 아들이었다.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는 그의 동생 [[에드먼드]]의 증손자이면서, 곤트의 존에게는 외증손녀 [[세실리 네빌]]과 [[제3대 요크 공작 요크의 리처드|요크의 리처드]](존의 종손자)의 아들이므로 그의 고손자가 된다.
 
== 헨리 7세와의 관계 ==
곤트의 존은 [[헨리 7세]]에게도 선조가 되는데, 장미전쟁을 종식시키면서 튜터왕조의 [[헨리 7세]]로 즉위하는 [[헨리 튜더]]가 바로 그의 증손녀 [[마거릿 보퍼트|마거릿 뷰포트]]의 아들이었다. 즉 곤트의 존은 헨리 7세의 외고조 할아버지가 된다.
 
뷰포트 가문은 랭커스터 가문에서 분파된 방계가문으로 헨리 7세의 외고조 할아버지인 '곤트의 존'이 그의 정부(情婦)였던 캐서린 스윈포드와의 사이에 낳은 자식들이 바로 뷰포트(Beaufort) 가문이다. 따라서 뷰포트 가문은 본래 서자 가문이였다. 그러나 콘트의 존(1340-1399)이 1394년에 그의 두번째 부인(카스티아의 콘스턴스)이 죽은후 1396년에 정부였던 캐서린 스윈포드와 정식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리처드 2세(재위 1377-1399)때 의회에 의해서 뷰포트 가문은 정통성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왕족대우를 받고 있었다. 단, 왕위 계승 서열에는 이름을 올릴수 없었다.
[[헨리 5세]]의 부인인 프랑스의 카트린은 그의 총신이었던 [[오언 튜더]]와 재혼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에드먼드 튜더]]가 태어난다. [[헨리 6세]]는 자신의 씨다른 동생을 배려하여 그에게 리치먼드 백작위를 수여함과 동시에 보퍼트 가문의 [[마거릿 보퍼트]]와 결혼시킨다. [[마거릿 보퍼트]]는 [[서머싯 백작]] [[존 보퍼트 1세]]의 손녀이자 [[서머싯 백작]]인 [[존 보퍼트 2세]]의 딸이었다. [[서머싯 백작]] [[존 보퍼트 1세]]는 곤트의 존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아들이었다.
 
[[헨리 5세]] 부인인1422년에 프랑스의갑자기 카트린은죽자 그의 왕비였던 프랑스의 캐서린은 그녀의 총신이었던 [[오언 튜더]]와 재혼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에드먼드 튜더]]가 태어난다. [[헨리 6세]]는 자신의 씨다른 동생을동생인 에드먼드 튜터을 배려하여 그에게 리치먼드 백작위를 수여함과 동시에 보퍼트뷰포트 가문의 [[마거릿 보퍼트|마거릿 뷰포트]]와 결혼시킨다. [[마거릿 보퍼트|마거릿 뷰포트]]는 [[서머싯 백작]] [[존 보퍼트 1세|존 뷰포트 1세]]의 손녀이자 [[서머싯 백작]]인 [[존 보퍼트 2세|존 뷰포트 2세]]의 딸이었다. [[서머싯 백작]] [[존 보퍼트 1세|존 뷰포트 1세]]는 곤트의 존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아들이었다아들이다.
 
헨리 튜터(훗날 헨리 7세)는 마거릿 뷰포트는 리치먼드 백작인 에드먼드 튜터 사이에서 1457년에 태어났지만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 에드먼드는 사망하였고 어머니 마거릿 뷰포트는 어린 헨리 튜터를 두고 재혼해버리는 바람에 사생아가 되고 만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