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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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의 코뭄(현재의 [[코모]])에서 태어났다. 플리니우스는 사상적으로 [[스토아 학파]]의 논리와 자연철학과 윤리학을 신봉하고 있었다. 스토아 학파의 첫 번째 목적은 자연법칙에 따라 덕이 높은 삶을 것이며, 자연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했다. 조카인 [[소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플리니우스는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독서를 멈추는 것은 욕조에 들어가있는 시간 뿐이었다 한다.<ref>[[로버트 헉슬리]]의 우에마츠 야스오 역 "서양 자연주의 열전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다윈까지" 悠書館 2009년</ref>
 
23살 때 군대에 들어가 [[게르마니아]] 원정에 종군했다. 50년대에 로마로 돌아 [[법학]]을 공부했지만 [[수사학]]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학문 연구와 저작에 전념했다. 70년경부터 72년에 걸쳐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스페인 북부)에 황제 대관으로 부임했다. 이때 현재는 [[세계 유산]]이 된 [[라스메두라스]]에서 채광 작업을 접했다. 마지막은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직접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를 섬기는 요직에 올랐다. 이 업무는 하루의 대부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플리니우스는 적극적으로 펜을 들고, 로마 역사 31권을 정리해 [[네로 황제]]의 시대에서 자료를 정리 계속해 《박물지》 37권의 대부분 분량을 다 썼다고 한다.
 
[[베수비오 화산|베스비우스 화산 폭발]] 때 [[미세눔]]의 함대 [[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중에 [[베수비오 화산]]이 뿜어낸 [[유독 가스]]에 질식하여 순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