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강화 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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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식민지 문제 ==
[[파일:WWI-re.png|섬네일|300px|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연합국 및 동맹국 지도. 연합국 및 그 식민지는 초록색으로, 동맹국 및 그 식민지는 회색으로, 기타 비참전국 및 중립국은 회색으로 나타나 있다.]]
[[파일:WWI-re.png|섬네일|300px|이 지도는 세계 제1차 대전 참가자들을 그린 세계 지도이다. 협상국들 (승전 연합군 )과 그들의 식민지 소유물들은 녹색, 패전한 동맹국과 그들의 식민지 소유물들은 주황색, 중립국들은 회색으로 표현하였다. 이 지도를 보면 승전국들이 엄청난 식민지들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회담으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베르사유 평화 회담이라고도 알려진 파리 평화 회담은 연합 승리군들의 만남이었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패전 동맹국가들을 위한 평화 협정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파리 강화 회담의 중심 이슈는 독일의 해외 식민지들의 배치였다. (오스트리아는 식민지가 없었고, 오스만 제국은 별개의 문제를 제시했다.) 영국의 지배자들은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그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원했다. 호주는 뉴기니를 원했고 뉴질랜드는 사모아를 원했다. 그리고 윌슨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패전국에 적용되는 민족 자결주의를 원했다. 독립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을 때까지 모든 독일 식민지들이 그들의 나라를 스스로 통치하길 원했다. 결국에는, 승전국들이 독일의 식민지를 비롯해 엄청난 영토를 가져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