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조지 다카노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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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584년]] [[5월 4일]]
|사망지 = 오키타나와테
|개명 =엔게쓰 (법명) →류조지 다네노부 → 다카타네 → 다카노부
|별명 = 야마시로노카미(통칭), 히젠의 곰
|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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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
|씨족 = [[류조지 씨]]
|부모 = 아버지: [[류조지 지카이에]], 어머니: [[
|형제 =노부치카, 나바노부
|아내 =
|자녀 =마사이에, 에가미 이에타네, 고토 이에노부
}}
'''류조지 다카노부'''({{llang|ja|龍造寺隆信}}, [[1529년]] [[3월 24일]] ~ [[1584년]] [[5월 4일]])는 [[기타큐슈]] [[다이묘]] 류조지 가의 19대 당주이자 '''5주 태수'''(五州太守), '''히젠의 곰'''(肥前の熊)의 별명을 가진 기타큐슈의 유력 다이묘이다. 오토모 가를 물리치고 [[미나미큐슈]]의 유력다이묘 시마즈 가와 자웅을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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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소년기 ===
[[교로쿠]](享禄) 2년([[1529년]]) [[음력 2월 15일]], 류조지씨의 당주인 [[류조지 지카이에]](龍造寺周家-미즈가에 성주)의 장남으로서 태어났다. 유년기는
=== 류조지 가 당주상속 ===
덴분 16년([[1547년]]),
=== 히젠 통일 ===
덴분 20년([[1551년]]), [[오우치 요시타카]]가 가신의 모반에 의해 사망하자, 후원자를 잃은
그 후 에가미씨(江上氏) 등을 제압하고 에이로쿠 5년(1562년)까지 동 히젠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이러한 급속한 세력 확대는 근접한 아리마싸(有馬氏)나 오무라씨(大村氏) 등의 불안을 사 에이로쿠 6년(1563년)에 양 가는 연합하여 동 히젠에 침공하지만, 다카노부는 지바씨(千葉氏)와 동맹을 맺어 이 연합군을 물리쳤다. 이로 인해 남 히젠에도 위세가 미치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은 [[분고 국|분고]](豊後)의 [[오토모 소린]](大友宗麟)이 다카노부를 경계하여, 에이로쿠 12년(1569년)에는 소린이 직접 대군을 인솔해 히젠을 침공하지만,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가 [[부젠 국|부젠]](豊前)에 침공해 왔기 때문에 소린은 히젠에서 철퇴했다. 이후 소린은 [[겐키]] 원년(1570년)에 남동생 [[오토모 지카사다]](大友親貞)을 총대장으로 하는 6만 대군을 히젠으로 보낸다. 그러나 다카노부는
다카노부는 이마야마에서 오토모 가와 싸워 이겼지만, 그 후도 오토모 씨에게 종속하고 있었지만 결국 영토를 인정받아 미미가와의 싸움 전까지 영토를 확실히 인정받아 힘을 기르고 있었다. [[덴쇼 (1573년)|덴쇼]](天正) 원년(1573년) 서 히젠을 평정, 덴쇼 3년(1575년)에는 북 히젠을 평정한다. 덴쇼 4년(1576년)에는 남 히젠에 침공해, 덴쇼 5년(1577년)까지 [[오무라 스미타다]](大村純忠)를 굴복시키고, 덴쇼 6년(1578년)에는 [[아리마 하루노부|아리마 시게즈미]](有馬鎮純)를 굴복시켜 히젠의 통일을 완성했다. 이때 적장자 [[류조지 마사이에]](龍造寺政家)에게 가독을 양보하고 은거하였지만, 그러나 정치·군사적 실권은 여전히 다카노부가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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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쇼 6년(1578년) [[오토모 소린]]이 미미가와의 싸움으로 [[시마즈 요시히사]]에게 대패하면서, 다카노부는 오토모 씨의 혼란을 타 오토모 씨의 세력권의 탈취에 박차를 가해 덴쇼 8년(1580년)까지 [[지쿠젠 국|지쿠젠]](筑前)이나 지쿠고(筑後), [[히고]](肥後), 부젠(豊前) 등을 세력하에 두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덴쇼 8년(1580년) 자신과 가문을 도와준 지쿠고의 가마치 아키모리의 아들 [[가마치 시게나미]](蒲池鎭漣)를 모살하고 야나가와 성의 가마치 일족을 몰살하고 인질로 맡고 있던 [[아카호시 무네이에]](赤星統家)의 아들을 죽이는 등 가신단에게 실망을 안긴다.
덴쇼 9년(1581년)에는 사가라씨(
===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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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 선교사가 남긴 기록에는, 히젠의 다이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를 닮은 것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 젊은 무렵부터 몇 번이나 히젠을 쫓긴 경위 때문인지 모든 것에 의심을 품는 냉혹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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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즈 측에 돌아온 목은 다카노부에 인연이 있던 아카호시 친가의 미망인에게 인도해지고 놀림감으로 되었다고도 하고, [[시마즈 이에히사]]에 의해 매장해졌다고도 하며, [[시마바라 반도]]의 강에 흘러갔다고도 한다.
* 다카노부는 [[스루가 국|스루가]]의 센고쿠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와의 공통점을 많이 볼 수 있다. 「한 번은 불가에 입문했지만 환속하고 상속하였다」 「비만 체구로 말을 타지 못하고, 전장에서는 가마를 타고 있었다」 「대군을 인솔하고 있었음에도 관련되지 않고 적은 병력에 참패해 전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임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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