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이 단다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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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는 규슈를 통치하기 위해 진제이 단다이를 본딴 [[규슈 단다이]](九州探題)를 설치한다. 훗날의 [[에도 막부]](江戸幕府)도 규슈 지역의 번(藩)들을 감시하고 현지의 천령(天領)이라 불린 쇼군 직할령 통치를 위해 사이고쿠스지분다이(西国筋郡代)를 설치하였다. 다만 대관소(代官所)는 [[분고 국]](豊後国) 히타(日田)에 있었으며, 그 분다이(郡代)를 「규슈 단다이」(九州探題)라고도 불렀다.
 
== 진제이 단다이의 위치 ==
진제이 단다이의 중심 관사였던 단다이칸(探題館)은 단다이 성(探題城)、메이노하마 성(姪浜城) 또는 와시오 성(鷲尾城)이라고도 불렸다. 그 위치는 지쿠젠 국 사와라 군(早良郡)의 아타고 산(愛宕山)으로 오늘날의 일본 [[후쿠오카 현]](福岡県) [[후쿠오카 시]](福岡市) [[니시 구 (후쿠오카 시)|니시 구]](西区) 아타고(愛宕)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일본 중세 도시의 유적인 하카타 유적군(博多遺跡群)에서 후쿠오카 시 [[하카타 구]](博多区) 기온 정(祇園町)을 중심으로 호조 집안의 문장이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었다. 또한 14세기 전반에 매몰된 도랑 위에서 110구 정도의 화장된 인골이 발굴되고, 일부는 칼에 맞은 상처도 보이고 있는 것에서 실제로는 하카타 정 안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2]
 
== 특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