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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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정책 ===
[[파일:Elizabeth1England.jpg|섬네일|왼쪽오른쪽|200px|여왕 엘리자베스 1세]]
대내적으로는 [[추밀원]]을 중심으로 유능한 [[정치가]]들을 등용했으며 [[정치]]는 [[성실청]]을 통해, [[종교]]는 [[특설고등법원]]을 통해 통제하였다. [[모직물]] 공업을 육성하고 장려하였기 때문에 농촌을 중심으로 급속히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지만 [[양]]을 키우기 위해 목초지를 확대한 [[인클로저]]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이 전국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치안에 문제가 생겼다. 당시 농지를 잃은 농민들의 방황은 심각해서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자 엘리자베스 1세는 구빈법 또는 튜더구빈법으로 불리는 사회복지정책을 제정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근로의욕을 꺾을 수 있는 구걸과 개인적인 자선행위를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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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가 실시한 정치 방식의 핵심은 [[민중]]의 소리를 듣는 애민정치였다. 그녀는 1년에 두 번은 순시를 하면서 민중들의 여론을 들었는데, 이는 다른 [[유럽]]의 왕들에 비해 비교적 많은 횟수이다.
 
 
[[파일:Elizabeth1England.jpg|섬네일|왼쪽|200px|여왕 엘리자베스 1세]]
=== 반(反)에스파냐 정책 ===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의 국력이 [[프랑스]]나 [[에스파냐]]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 알고, 표면적으로는 세력 균형 정책을 펴면서도 뒤로는 [[프랜시스 드레이크]] 등 해적들을 지원하여 에스파냐를 견제하였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네덜란드]]의 [[네덜란드 독립 전쟁|독립 전쟁]]에서는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를 지원했다. 그 결과 가톨릭을 국교로 한 에스파냐와의 관계가 금이 가게 되었고, 그 이래로 두 나라는 숙명의 라이벌이 되었다.